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욕구는 자주 부모의 모습을 확인하려는 시도로 발현한다. 감독 또한 유년 시절 아버지로 인해 겪은 혼란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노력으로 아버지를 관찰하는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밝힌다. 감독의 아버지이자 30여년간 물방울만 그려온 이른바 ‘물방울 작가’로 알려진 김창열 화백은, 감독의 말처럼 산타클로스보다 스핑크스에 어울리는 불가해한 존재였다. 어린 자식에게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여느 부모와 달리 감독의 아버지는 달마 대사에 관한 잔혹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잊지 못할 단 한번의 폭력을 행사한 일이 있으며, 말년에는 대개 침묵으로 일관해 답답함을 자아냈다. 또 노자나 도덕경에 심취한 채 구도자연하면서도 세상이 주는 환대와 혜택을 거부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했다. 애증과 온갖 의문을 품은 채 찬찬히 아버지를 탐구해 들어가던 감독은 아버지의 작품 세계와 행동의 이면에는 일제 식민지부터 한국전쟁 이후까지 근현대사의 아픔이 서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영화는 화백의 작품뿐 아니라 방대한 시청각 자료를 제시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화백의 일생을 톺아보는 만큼 영화는 화백의 작품 변천사를 스크린에 펼쳐놓은 화랑 같다. 또 내레이션의 내용과 부분적으로만 교집하는 이미지와 음성을 창의적으로 배치해 진지함과 유머러스함을 오가는 편집은 그 기지가 돋보일 뿐 아니라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무엇보다 화백의 물방울 연작을 보여주는 장면은 손꼽을 만하다. 한개의 물방울을 그리는 건 쉬운 일이지만 만개의 물방울을 그리는 건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인데, 연속하는 화백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변화무쌍한 물방울의 모습이야말로 곧 삼라만상을 가리킨다는 점을 알게 되고 절로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