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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익숙한 슬픔을 우회하는 초록의 방식 '초록밤'
김예솔비 2022-07-27

한 가족의 삶에 예기치 못한 죽음의 잔영이 드리운다. 영화는 이 죽음을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이 세계에서 밤은 언제나 초록으로 빛나고 자신의 초록을 유일한 진실처럼 내보일 뿐이다. 아파트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버지(이태훈)는 지쳐 있고 무력하다. 장애인 활동 보조인으로 일하는 아들 원형(강길우)은 오래된 연인이 있지만 생활고 탓에 결혼하지 못하고 부모 집에 얹혀살고 있다. 집안의 실질적인 뒤치다꺼리를 도맡는 사람은 어머니(김민경)다. 그녀는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그건 활력이라기보다는 더이상 몸과 떼어낼 수 없게 된 가사노동의 인장과도 같다. <초록밤>에서는 이 세 사람이 오래된 아파트에 함께 살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헐겁게 묶인다. 발걸음이 유독 느리고 무거운 사람들.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밤은 알고 있다.

영화는 세 인물의 수심 가득한 얼굴을 빌려 알 수 없는 삶의 중량에 짓눌려 사는 침침한 현대인의 초상을 그려낸다. “삶을 애도하는 모두의 시간”이라는 영화의 캐치프레이즈가 말해주듯이 영화는 죽음이 헛디딘 자리에 살고 있는 듯한 예감, 따라서 죽음과 삶이 서로 멀지 않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말없이 공유하고 있는 감각을 시공간의 장으로 펼쳐 보인다. 외면했던 가족간의 불화가 죽음 앞에서 터져버리는 장례식장의 풍경과 이를 응시하기만 하는 무기력한 주인공, 먹는 일과 배설이 한데 공존하는 비속한 삶은 한국영화에서 그다지 낯선 묘사는 아니다. 일견 범속해 보이는 장면들에 이상한 힘을 부여하는 것은 초록빛이다. 원형이 거실 소파에 무심하게 기대어 있을 때, 가족이 서로를 향해 등을 돌린 채 잠자리에 든 밤에, 이들을 비추는 초록빛은 독특한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완전히 밝지도, 지나치게 음울하지도 않은, 그 사이에서 미묘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영화의 초록은 바로 그러한 사이의 정서를 증폭시키면서 화면을 채운다. 그러므로 영화는 섬 하면서도 어딘가 위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색채만이 <초록밤>의 전부는 아니다. 반복되는 죽음의 모티프가 강렬하게 번뜩이고, 프레임의 가장자리까지 세공하는 정교한 구성이 돋보인다. 초록색 밤의 신비로움은 느리고 섬세한 화면의 몰입 속에서만 작동하는 것이다.

윤서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초록밤>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에 오르며 평단의 이목을 끌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 하마구치 류스케와 작업해온 음악감독 나가시마 히로유키와의 협업도 주목해볼 만하다. 잠 못 드는 여름밤의 시간이 초록으로 물든다.

“우리 언제 결혼하는데? 내일 할까? 금요일날 할까?”(축의금 낸 것을 아까워하지 말라는 연인 은혜의 책망에 원형이 농담조로 답하는 말. 두 사람은 잠시간 웃음을 나누지만, 그 웃음에는 눅눅한 그늘이 있다.)

CHECK POINT

<거긴 지금 몇시니?>(2001)

어머니와 함께 사는 샤오강이 머무는 집은 원형의 집과 닮아 있다. 가족 구성원의 죽음이 집 안의 공기를 침잠시킨다는 점까지. <초록밤>의 심상은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고독을 키워가는 인물들을 다루는 차이밍량의 영화 세계와 통하는 점이 있다. 교차하면서도 서로의 깊은 곳에는 닿을 수 없는 이들은 유난히 길고 외로운 밤을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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