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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은 지금, 쿵짝 쿵짝!”
2001-03-15

<슈퍼 8 스토리>와 에미르 쿠스투리차 감독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밸런타인 데이 해질녘에 멀티플렉스 극장 씨네맥스에서 비경쟁 특별상영된 쿠스투리차의 세미 다큐멘터리 <슈퍼 8 스토리>를 보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와 비슷한 것이었다. 1986년 쿠스투리차가 기타리스트로 합류한 밴드 ‘노 스모킹’ 의 공연 실황과 감독의 홈비디오 그리고 무대 뒤의 사연들을 흥겹게 엮은 이 영화는 언제나 한판의 굿, 한바탕 퍼포먼스 같았던 쿠스투리차 영화의 ‘정령’처럼 보였다. 1980년대 초 결성된 ‘노 스모킹’은 보통의 록밴드 편성에 세르비아 트럼펫, 집시 음악 등 모든 발칸 음악의 얼굴을 뭉뚱그린 음악- 쿠스투리차가 ‘운짜운짜 음악’이라고 부르는- 을 마을 결혼식장부터 파리 콘서트장까지 연주하고 다니는 밴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의 음악도 맡았던 이 밴드에 대해 쿠스투리차는 “발칸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음악을 한다”고 소개했다. 공연 실황과 함께 사춘기 소년 같은 유치한 무대 뒤 다툼, 포탄에 상처입은 벨그라드의 풍경과 아들과의 정겨운 한때가 강물처럼 흘러가는 이 분방한 영화에서 음악과 영화는 어떤 뮤직비디오보다 깊숙하게 상대의 팔에 안겨들었다.

예의 거위가 퍼덕이고 멱살을 잡고 쿵짝거리는 소란에 객석을 꽉 채운 관객 중 일부는 도중에 자리를 떴지만 끝까지 쿠스투리차와 밴드 멤버들의 자기만족에 찬 음악과 유랑을 따라간 관객은 휘파람이라도 불 태세였다. 액터즈 스튜디오에서 수학했지만 요즘 모든 영화가 시큰둥하다고 불평하던 옆자리 이탈리아 청년은 영화가 끝나기 무섭게 쿠스투리차를 꼭 봐야겠다며 신바람나게 기자회견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픽션과 다큐멘터리 경계가 얼마나 희박한지 보여줬다.

우리가 대체로 오용하는 테크놀로지 덕택에 개인적 기억과 1년 반 동안 음악을 하며 겪은 일을 녹여 섞을 수 있었다. 엊저녁에 아이처럼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 영화를 시작할 무렵의 기억을 새롭게 했다.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대사, 아름다운 우정의 시작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오늘 <스크린 인터내셔널>을 보니 영화를 ‘프로덕트’라 칭하더라. 아마 <타이타닉>을 기대하는 사람에게 이 작은 영화는 말도 안 되겠지만 내게는 말이 된다. 다큐멘터리와 허구의 보이지 않는 접촉은 <언더그라운드> 이후 나를 가장 강하게 사로잡는 강박이다.

(밴드 리더에게) 쿠스투리차와 같이 밴드를 하는 것이 어떤가.

넬레 카라일릭 에미르는 영화를 찍을 때는 스스로를 뮤지션으로 생각하고 음악을 연주하고 작곡할 때는 감독처럼 생각한다. 그의 영화에는 음악적 구조가 있다 있다. <언더그라운드>는 심포니였고 <애리조나 드림>은 로맨틱한 쇼팽이었고 이번의 <슈퍼 8 스토리>는 ‘운짜운짜’ 뮤직이다. 그는 로커처럼 촬영하고 영화감독처럼 작곡하고 연주한다. 감독처럼 행동하는 에미르 덕분에 우리 노래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전에는 곡이 모두 10분이 넘었는데.(폭소)

음악하는 것이 집시의 삶에 더 가깝나, 영화만들기가 집시의 삶에 더 가깝나

20년 전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았을 때(<돌리벨을 아시나요?>) <타임>은 “아무 곳도 아닌 곳에서 온 아무도 아닌 사람이 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렇게 머물고 싶다. 세상 모든 곳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영화를 만드는, 아무 데도 아닌 곳에서 온 아무도 아닌 사람으로.(박수)

어제 당신의 제작자가 당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음,사실이다.(웃음)그러나 이 영화는 아니다. 별로 돈이 안 들었으니까. 나는 대개 너무 많은 시간을 영화에 쏟아붓고 언제 멈춰야 좋을지 모른다. 이번에는 70시간쯤 찍어 편집했다.

사라예보에서 이 영화가 개봉될 수 있나.

그곳에는 갈 필요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다. 보스니아 종전 협정 이후 그곳 사람들은 단지 나와 의견이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내 집 두채를 부수고 약탈했다.

파트리스 르콩트의 <생 피에르의 미망인> 출연 뒤 세자르 노미네이션을 받았는데 배우로서 섭외를 많이 받나.

지난주에도 닐 조던에게 연락이 와서 놀랐다. 연기는 오늘날 가장 어려운 예술이다. 완벽한 영혼과 몸이 필요하고 가끔은 스스로를 내주어야 하니까. 내게는 이야기를 만들고 음악을 만드는 편이 쉽다. 세자르 노미네이션 건은 글쎄, 인간사가 다 그렇다. 한쪽을 밀면 다른 쪽이 열린다. 평생 배우만 한 사람도 후보에 못 오르는데 내가 오르다니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영화제는 정치이기도 하다. 로맨티스트들은 영화제가 미학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믿지만 후보 지명과 수상에는 정치적 요소가 작동한다.

홈비디오 속 아들과 어울린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만드는 동안은 아들을 자주 보기 힘들었다. 음악하면서 훨씬 아들과 가까워졌다. 아들과 나는 계속 사랑하고 싸우며 환상적인 1년을 보냈다. 어떤 면에서는 아들이 나보다 훨씬 성숙하다.

자전적인 요소들이 늘 영화 속에 보인다.

감독으로서 늘 무엇이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슬라브 감수성의 최대 무기는 블랙 유머라고 생각한다. 선악에 모호하고 민담 같은 색깔을 지닌. 또 영화에서 최고의 스토리는 역사라고 믿는다.

베를린=글 김혜리 기자사진 이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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