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이주한 북아프리카인 공동체를 가리키는 제목의 <리틀 세네갈>(Little Senegal)은 알렉스 헤일리가 쓴 <뿌리>의 정반대 방향에서 노예제의 역사와 그 여진을 그려낸 영화다. 올해 베를린 경쟁부문에서 인종갈등이나 서구사회의 소수민족이 느끼는 현기증을 소재로 삼은 영화는 스파이크 리의 <뱀부즐드>와 필리포스 치토스의 <마이 스위트 홈>이 있었으나, <리틀 세네갈>의 어법은 나머지 두편의 영화에 비해 나직하면서도 한결 신선했다.
알제리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라시드 부샤레브(48) 감독은, 노예 박물관에서 은퇴한 60대 세네갈 남성 알론이 노예로 팔려간 조상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미국 여행을 통해, 역사의 흉터와 그것을 아물리는 가족애, 그리고 아프리카인과 아프로-아메리칸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의식을 포착했다.
이런 스토리를 왜 다큐멘터리로 찍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은 알론이 탄 배가 캘리포니아에 다다르면서 서서히 사라진다. 현자의 눈빛을 지닌 왜소한 체구의 알론은 이리저리 팔려갔던 조상의 고단한 발자국을 뒤쫓아 뉴욕 할렘의 리틀 세네갈에 도착하지만, 그곳에는 흑-백 갈등 못지않은 흑-흑 분열이 도사리고 있고, 어렵사리 찾아낸 미국인 아이다는 미혼모가 된 어린 손녀에 대한 걱정과 생활고로 메말라 있다. 아이다의 노점에 취직한 알론은 혈연을 밝히지 않은 채 사촌과 근친애와 가까운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다시 세네갈의 노예선 부두로 돌아와 바다로 시선을 보낸다. 첨예한 이슈에 성실히 매달리면서도 진정성이 깃든 캐릭터와 독창적인 리듬과 여백의 미까지 갖춘 <리틀 세네갈>은 어느 순간 마이크 리의 <비밀과 거짓말>을 연상시키는 잘 숙성된 드라마다.
어떻게 이 스토리에 착안했나.
라시드 부샤레브 감독
지금까지 나는 프랑스 이민을 소재로 몇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리틀 세네갈>을 위해 부르키나 파소, 알제리에서 정보를 수집했다. 노예였던 조상을 찾아 아프리카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스토리 자체에 다이너미즘이 있었다. 경제적으로만 해석돼온 노예제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려 했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미국 흑인과 아프리카계 이민이 빚는 충돌의 에피소드는 실제 사건이다. 이 영화는 독일, 프랑스, 알제리가 공동으로 제작했고 독일은 주로 후반작업에 기여했는데 지금까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결과를 선사했다.
남자주인공 알론은 매우 전통적이면서도 모던한 인물이다.
부샤레브
알론은 혈연의 중요성에 무게를 두는 인물이면서도 역동성을 갖고 있다. 드라마를 지탱하는 ‘닻’이 되는 캐릭터다.
아프리카 흑인과 아프로-아메리칸 사이의 갈등에 대해 더 설명한다면.
샤론 호프(배우)
노예제는 남미, 미국, 유럽에 널리 존재했다. 경험한 노예제의 성격에 따라 해방 이후의 삶도 달랐다. 글을 배웠던 노예들은 좀더 적극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고 미국처럼 문맹상태였던 노예들은 해방 뒤에도 생활 기반이 없었다. 미국에는 완전히 뿌리뽑혀 자기 배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아프리카에 있는 기원을 부정하는 세대의 흑인들이 있다. 내가 연기한 아이다가 아프리카인을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그녀가 스스로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노예제도는 현대 미국 흑인들의 자기 이미지와 깊은 관계가 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노예제에 관한 문건을 연구했을 줄 안다. 미국과 아프리카가 각각 노예제를 보는 관점이 어떻게 다른가.
부샤레브
남북전쟁 이후 너무 많은 다큐멘트가 노예제를 기억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사라져 리서치는 쉽지 않았다. 나는 편향되지 않은 접근을 원했다. 아프리카의 노예선 출항지였던 고레의 노예제 박물관 디렉터를 인터뷰하고 자료를 읽었다. 아프리카에서는 7, 8년 전부터 노예제도의 기록과 유물을 모아놓은 기관이 설립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견학시키기 시작했다. 얼마 뒤면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좀더 정리된 입장을 갖게 될 것이다.
나치의 예처럼 노예제에 대한 사과와 최소한의 상징적 보상을 위한 움직임이 있나.
부샤레브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유럽의 지식인들이 모여 보상을 요구하는 모임을 결성하고 프랑스 언론도 가담한 것으로 안다. 이같은 상황 진전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움직임에 시동이 걸린 것만큼은 사실이다.
호프
매우 민감한 문제이지만 다른 미국 내의 소수 문화 집단이 그랬듯이 미국과 아프리카 흑인이 노예제와 그 역사적 영향이라는 이슈에 대해 단결해서 발언하려고 하고 있다. 소송도 제기된 것으로 안다.
시네마스코프로 촬영했는데.
부샤레브
예전에 아시아에서 영화를 찍을 때 시네마스코프를 시도한 뒤 다시 한번 시도하고 싶었다. 시네마스코프 촬영을 통해 이 영화가 요구하는 감수성과 민감함을 영화 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또 TV가 아닌 극장을 위한 작품임이 처음부터 분명했음으로 시네마스코프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아프리카 작곡가 사피 부텔라에게 음악을 맡겼다. 그가 아프리카인이라서 택했나.
부샤레브
부텔라의 음악을 듣고 영화음악이 그에게도 흥미로운 작업일 거라고 느껴서였다. 그는 열정적인 재즈광으로 본인의 곡과 재즈음악을 섞어냈다.
아프리카 배우, 감독과 일한 경험이 어땠나. 영화를 찍으며 몰랐던 조상의 역사에 대해 발견한 점이 있나.
호프
몰랐던 사실을 발견한 것은 없지만 모로코, 알제리, 부르키나 파소, 세네갈, 칠레에서 태어나 스웨덴에서 살던 사람과 어울린 이 영화의 세트는 마치 유엔군 캠프 같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미국인들뿐인 영화찍기도 괜찮았지만 <리틀 세네갈>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사귀며 새로운 것들을 배웠다. 우선 불어부터. (웃음)
국적이 서로 다른 배우들을 지휘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부샤레브
전혀. 물론 미국 배우들은 표현과 태도가 다르므로 아프리카 배우들과 작업할 때와는 다른 접근법을 써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상이한 문화에서 가꾸어진 생활방식을 다루는 이 영화 전체의 포인트이기도 했다. 어려웠던 건 앙상블 연기를 매일 조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매혹적인 ‘칵테일’을 즐길 수 있었다. 세트에서 각국 배우들이 몸에 밴 서로 다른 리듬으로 느리게 혹은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은 재미난 대조였고 나는 그 두 리듬을 종합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베를린=글 김혜리 기자사진 이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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