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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싸울 땐 묵묵히”
2001-03-15

심사위원대상 수상한 <베이징 자전거>와 왕샤오슈아이 감독

TV 뉴스에서 중국 특파원이 호출받을 때면 그뒤를 어김없이 가로질러가는 자전거 대열. 페기 차오가 제작하는 ‘중국 3부작’의 한편인 왕샤오슈아이의 <베이징 자전거>는 바로 그 자전거를 타고 현대 베이징 젊은이들의 힘겨운 청춘 속으로 들어간다. 지나치게 명백한 상징의 선택이긴 하지만 맑고 투명한 촬영과 많지도 적지도 않은 대사로 앳된 주인공들이 맞닥뜨린 생존과 자존의 고민을 한 매듭씩 더듬어가는 감독의 화술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

장위안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나날들> <극도한냉> <머나먼 낙원> 등으로 알려진 왕샤오슈아이 감독은 <베이징 자전거>에서도 운명과 가장 묵묵한 방식으로 싸우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희망은 아주 모호한 말줄임표로만 암시될 뿐이다. 시골에서 상경해 자전거 택배 서비스회사 배달원이 된 구에이. 그의 그을린 얼굴은 너무 무감동해서 한 가닥 설렘도 욕망도 읽어내기 어렵다. 그는 요지경 같은 도시의 골목을 누비며 열심히 일해 자전거를 자기 소유로 만들지만 이내 도둑맞고 만다. <귀주 이야기>에서 걸어나온 것 같은 청년 구에이는 갖은 고생 끝에, 자기 자전거를 타고 데이트중인 한 소년을 발견하지만, 소년에게도 자전거는 절실하다. 그에게 자전거는 또래집단과 좋아하는 여학생에게로 가는 열쇠. 배다른 여동생의 학비를 훔쳐 중고가게에서 구에이의 자전거를 산 그는 자전거를 돌려주길 거절한다. 뺏고 뺏기는 피멍든 싸움을 벌이던 두 소년은 결국 번갈아 자전거를 쓰기로 합의를 본다. 그리고 골목길에서 말없는 자전거 교환이 반복되던 어느 날, 소년은 문득 구에이에게 묻는다. “네 이름이 뭐야?”

자전거는 매우 중국적인 소재다.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과 상황이 유사하다. 그의 영화를 보았는가.

영화를 시작하면서 그런 질문을 꼭 받게 되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첫 번째 질문이 될 줄은 몰랐다.(웃음) 물론 <자전거 도둑>은 매우 깊은 인상을 받은 걸작이다. 제작자 페기 차오와 의논해서 아예 제목도 그 영화를 상기하도록 짓기로 했다. 그러나 <베이징 자전거>는 중국인의 멘털리티와 특수한 상황이라는 개성이 충분한 영화다. 사회 변화의 시기에는 거리의 보통사람들이 훨씬 흥미로워진다. 50년 전 이탈리아나 지금의 중국이나 마찬가지다.

카메라워크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공간을 제시하는 방식이 유난히 투명하고 생생하다. 베이징을 아는 사람이면 영화처럼 맑은 날이 드물다는 것을 알 것인데 어떤 의도였나.

촬영감독 리우 지 감독과 나는 중국 젊은이들이 모든 문제와 긴장, 갈등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와 생기가 가득 찬 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태극권을 하는 모퉁이의 노인, 건축물의 사인 등 상징처럼 보이는 요소가 많았다.

내 자신도 중국의 실체가 무엇인가,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없다. 한 외국인은 왜 그렇게 자전거를 소도구로 많이 모으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의도가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의 일상이다. 베이징 어디를 가도 이만큼의 자전거는 있다. 태극권이나 탑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겹쳐놓는 편이 없애는 것보다 훨씬 쉽다.

어떤 시점에는 폭력과 오해에 전혀 저항도 변명도 않는 주인공 구에이를 참을 수 없다. 이것도 의도된 스타일의 일부인가. 아니면 현재 중국 젊은이들의 성격인가.

저항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구에이에겐 별로 가능한 방식이 없다. 한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직접적 액션을 취하지 않는 것은 매우 진정하고 숭고하고 효과적인 형태의 저항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태도는 그는 당장 힘을 써서 조그만 이익을 여기저기서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그가 이 도시에서 살아남을 권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두 젊은이의 관계가 중요해 보인다. 당면한 문제에 대해 그들은 왜 서로를 돕거나 부모나 선생님에게 의논하려 들지 않는가.

<베이징 자전거>의 각본은 내 개인적 기억에 의한 것이다. 젊은 시절에 나는 겁에 질려 있었고 우유부단했다. 또 내성적인 행동은 중국적 전통이기도 하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다른 가족구성원과 동등한 지위를 갖지 못하고 부모들 자신은 굳어진 교육 혹은 교육의 부재로 인해 공감과 대화가 어렵다. 그래서 아이들은 점점 울타리를 치게 된다. 게다가 구에이는 10대치고 성숙하긴 해도 시골 소년으로서 베이징이라는 도시 자체에 질려 있는 상태다. 그는 사물을 다루고 갈등을 풀고 도움을 구하기 위해 사람에게 다가서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의 문제는 거대하고 역동적인 도시의 움직임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다. 그래서 도움을 구하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베를린=글 김혜리 기자사진 이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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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연기상 수상한 <트래픽>(Traffic)과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 심사위원상 수상한 <초급자를 위한 이태리어>와 로네 셔픽감독

▶ <리틀 세네갈>과 라시드 부샤레브 감독

▶ <슈퍼 8 스토리>와 에미르 쿠스투리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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