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세계가 바라본 한국영화의 얼굴
지금까지 일본에서 수많은 한국영화가 개봉돼 왔지만 2000년 1월22일 개봉한 <쉬리>는 그때까지 나온 어느 영화도 준 적 없는 충격을 일본영화계에 던져줬다.
관객동원 수도 100만명을 넘어섰고 당시까지 아시아영화의 한 분야 정도로 생각됐던 한국영화의 범위도 넓어진 것으로 보여, 일본관객은 할리우드 메이저와 어깨를 겨누는 작품이 이웃나라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화정보지인 <피아>가 매년 실시하는 독자 인기투표 영화부문에서 <그린마일> <미션 임파서블2> <화이트 아웃> 다음으로 4위에 올랐던 것을 봐도 이 작품이 일본의 아시아 영화팬을 넘어서 폭넓은 관객의 지지를 모은 것은 분명하다. 한국영화를 한번도 본 적 없는 많은 관객이 극장으로 발길을 옮겼던 것이다.
이같은 성공을 목격한 배급사들이 차례로 한국영화를 공개한 2000년 가을에는 ‘한국영화 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한국영화가 개봉됐고, 여러 잡지들이 연이어 특집기사를 실었다. 11월4일에는 도쿄에서 한국영화 5편이 동시 개봉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의 배경에는 일본영화의 오랜 부진으로 관객들이 할리우드영화에 몰려 있던 차에 그 할리우드 영화조차 정체를 보였다는 점도 자리잡고 있다. 최근 멀티플렉스의 증가로 스크린 수가 크게 늘어났지만 영화관람객 수는 불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한정된 관객을 많은 영화가 나누어 갖는 상황에서 일본영화와 할리우드영화가 부진할 때는 그 자리를 보충하는 영화가 나온다. 몇년 전 인도영화 붐이 그런 경우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한국영화 붐 뒤에는 타이영화가 인기를 얻을지 모른다고 예측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쉬리> 이후 개봉한 한국영화 중 흥행에 크게 성공한 작품이 없기 때문에 올해 개봉할 <공동경비구역 JSA>가 어느 정도 관객을 동원할지가 이후 한국영화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일본의 많은 영화 관계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한편 질좋은 작품을 양산하는 한국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으로 미뤄볼 때, 한국영화 붐이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주장도 있다. <쉬리>를 배급한 시네콰논 대표 이봉우씨는 일본에 비해 한국에선 영화가 산업으로 확고한 기반을 쌓고 있다며 “기획, 감독, 배우, 배급이라는 각 부문이 원활하게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기획을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다. 영화를 만족스럽게 본 관객은 다음 작품을 기대하고, 또 영화계는 이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만든 영화는 일본뿐만 아니라 홍콩이나 대만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시오타 도키토시도 한국영화의 힘에 관해 “한국판 <분노의 역류>라고 할 수 있는 <리베라 메>와 <싸이렌>이 동시에 나온다는 점에서 그 위세를 느낀다. 일본에는 지금 이런 기획을 영화화한다는 발상 자체가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폭넓고 다채로운 작품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한국영화의 큰 강점으로 보인다. 시오타는 “오락 대작과 예술영화라는 구별뿐만 아니라 각각의 장르 안에도 다양한 작품이 있어 ‘한국영화’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각각의 작품이 그에 맞는 관객을 잡을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겠다”고 전망했다.
관객을 잡기 위해서는 배급 방법도 중요하다. 이봉우씨는 “작품에 맞는 배급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관객이 잘못된 기대를 갖고 극장에 와서 낙담할지도 모른다. 새 영화 중에는 <쉬리>와 비교하는 선전문구도 눈에 띄는데, 좀더 각 작품의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는 광고를 해야 한다. 앞으로는 한국영화라는 것만으로는 화제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배급사 역시 작가나 배우, 제작사 등을 고려해서 작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극장쪽 관계자들은 작품의 질을 확인하면서 상영하면 어느 정도 상업적 성공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11월 <미술관 옆 동물원>을 상영한 시네마카리테 지배인 가네코 야스아키는 “한 장르로 고정된 홍콩영화보다 상업성이 적다고 생각해, 그 절반 정도의 관객을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70∼80% 정도 동원했다. 이로 인해 한국영화가 어느 정도 흥행성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하지만 앞으로 질좋은 작품을 선택해 공개하지 않으면 한번 한국영화를 재미있다고 생각한 관객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신중한 태도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영화잡지 <키네마순보> 편집장 세키구치 유코는 “스타, 특히 여성잡지의 사진집에 나올 만한 남성스타가 등장하면 더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겠다”고 말한다. 안성기나 한석규 등 인지도가 높은 배우는 있지만 일본관객이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그 배우 때문에 극장에 가겠다고 할 정도의 인물은 아직 없다. 이런 상태라면 멜로영화의 히트는 어려울 것 같다. 여배우는 일반 주간지 표지에 등장한 심은하를 필두로 남성팬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 히트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여성관객이다. 앞으로 새로운 남성스타가 등장하면 상황은 크게 바뀔 수 있을 듯하다.
도쿄=사토 유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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