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되기까지
육상효(38) 감독은 첫 장편영화를 만들기까지 꽤 멀다면 먼길을 돌아온 셈이다. 몇개의 직장을 전전하다 스포츠 신문의 연예부 기자로 활동했고, 서른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직장 문을 걷어차고 나와 단편영화 <슬픈열대>를 만들어 자신의 ‘영청’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몇년의 세월이 흐르고 유학까지 감행한 끝에 <아이언 팜>이라는 첫 장편작품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그가 기억하기로 그에게 지울 수 없이 강렬한 인상을 준 첫 영화는 고등학교 때 TV에서 본 <새벽의 7인>(Operation Daybreak)이었다. 그는 이 영화를 봤을 때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고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는 등 예술적 감동의 최고치, 그러니까 그 스스로 ‘예술적 공포’라 부르는 세계를 느꼈다. 대학에 들어가 임권택, 이장호, 배창호의 영화와 안성기, 김명곤이 출연하는 작품들을 보면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고 시나리오를 써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 내기도 했다. “당연히 1등은 내 차지라고 생각했으나 본선 20등에도 못 올라 자신의 재능없음에 절망하다가” 군대에 갔고, 제대 무렵 ‘내가 인생에서 할 일은 영화’라는 결론을 예비역 병장 계급장과 함께 가지고 나왔다.
그의 영화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은 임씨 성을 가진 두명이다. 한명은 임권택 감독. 그는 임 감독의 <축제>에서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하고 연출부 일도 함께하는 ‘시나리오 담당 연출부’로 활동하며 한 감독이 실제로 어떤 고통과 힘, 집념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가는지를 직접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다른 한명의 임씨는 <필름컬처> 임재철 편집장이다. 영화계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당시 <중앙일보> 기자였던 임재철 편집장은 “방대한 지식과 자료, 그리고 명쾌한 해석으로” 그의 초기 영화관을 결정적으로 규정했다. 그는 이외에도 김홍준 감독의 <장미빛 인생>에서 시나리오 작가 겸 의상담당 연출부로, 김유진 감독의 <금홍아 금홍아>에서도 시나리오 작가로 충무로 경력을 쌓았다.
그가 데뷔작 <아이언 팜>을 만들게 된 것은 행운에 가깝다. 영화 준비를 나름대로 했지만 성공적이지 않았고 마침 유학 기회가 생겨 그는 LA의 USC에 입학했다. 한데 1999년 가을 무렵 홍지용 프로듀서가 LA로 갑작스레 찾아와 “영화를 하자”는 말과 함께 자료조사비 1500달러를 놓고 갔다. ‘없는 살림에 웬 떡이냐’ 싶어 그 돈으로 후배들에게 술도 사고 CD도 샀고, 결국 그 죄책감에 그동안 써오던 시나리오 아이디어를 놓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아이언 팜>은 현재 시나리오 마무리 단계다.
▒어떤 영화를 만들것인가
그가 지향하는 영화는 한마디로 재밌는 영화. 그는 영화계에 들어온 이래 스스로 코미디가 맞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단편 데뷔작 <슬픈열대> 역시 코미디적인 성향이 강했다.<아이언 팜>은 한국판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를 지향하는 캐릭터 중심의 코미디. 한국에서는 그동안 많이 시도되지 않은 새롭고 재미있는 코미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잘하면 좀 아름다울 수 있는 코미디’를 만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영화를 미술로 보는 사람이기보다는 이야기로 보는 경향이 강하며, 다만 그것을 하나의 비주얼 내러티브로 고려하는 점에서 시각적 가능성을 보는 편”이라 얘기한다. 사석에서도 좌중을 압도하는 재담꾼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이다보니 영화에서 이야기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예술영화보다는 대중영화를 추구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또한 “고전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3막구조 안에서도 관객에게 상당한 ‘예술적 공포’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아이언 팜>이 단순한 코미디는 아닐 듯하다. 특히 자신의 영화를 통해 “전통적 드라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고, 대사가 갖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고” 시각적으로는 10년 전이건 10분 전이건 기억을 복원해 다른 맥락 속에 위치시켜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는 관객과 소통하는 것을 ‘영화적 야심’으로 꿈꾸는 그이기에 그의 코미디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다.
▒<아이언 팜>은 어떤 영화
5년 전 자신을 떠난 여인 지니를 찾기 위해 아이언 팜이 LA공항에 발을 내딛는다. 하루도 소주없이 견디지 못하는 지니를 수소문하는 아이언 팜. 택시운전사 동석 등의 도움으로 마침내 그녀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알고보니 지니에겐 애드머럴이라는 남자친구가 있다. 지니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이언 팜과 애드머럴은 경쟁을 벌이지만 애꿎은 지니만 사고를 당하게 된다. 둘은 번갈아 병실을 지키며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애걸복걸하지만 결국 애드머럴은 지니와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야반도주를 감행하고 아이언은 동석과 함께 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과연 이들의 삼각관계는 어떻게 끝이 날까? 주인공의 이름 ‘아이언 팜’은 매일 뜨거운 밥통에 손을 담그며 철사장을 단련하는 캐릭터를 표현한 것. 아이언 역으로 차인표, 동석 역으로는 조재현이 확정됐다.
문석 기자 ssoo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