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창조 마지막날. GOD는 남녀의 형상을 뜬 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영혼을 불어넣기 전 잠시 휴식을 갖기로 한 GOD는 천사다방에 연락을 한다. 배달온 섹시걸 미스 천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끼는 GOD. 급기야 미스 천을 유혹하고 사랑을 나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여자 인간의 입술에 떨어지고, 인간의 형상에 순수한 영혼을 불어넣으려 했던 GOD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간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을 때 과연 최선을 다했던가?” <`GOD`>는 발상부터 튀는 영화다. 인류탄생, 천지창조의 마침표를 찍는 대사(大事)를 앞두고, 멜빵바지를 입은 코믹한 차림새의 GOD가 벌이는 행각은 진지함이라곤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다. 사과를 골프공 삼아 필드를 누비고, 사이버틱한 패션으로 섹시함을 과시하는 천사다방 종업원을 꼬시는 걸 보고 있노라면, 인간은 신의 나태가 빚어낸 ‘불량품’ 이상은 아니다. 이 황당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설정의 프로젝트는 지난해 인디포럼 사전제작지원을 받
아 만든 이진우(30) 감독의 작품. 독립영화집단 파적 회원이기도 한 그는 “이번 영화는 순전히 뒤풀이 술자리에서 흘러나온 ‘농담’을 요리조리 주물러 만든 결과”라고 말한다. “그 자리에서 서로 보면서 왜 인간들은 술먹고 깽판치고 망가지고 추한 걸까, 혹시 신이 있다면, 혹시 그 중요한 순간에 통제시스템이 문제된 건 아닐까라는 추론을 했다.” 신 역시 불완전한 존재이며, 결국 그가 만들고 싶어했던 건 자신보다 더 나은 인간형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통제불가능한 오류의 상황이 발생했고, 결국 인간은 더 열등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 등이 터져나왔고, 얼마 뒤 한층 업그레이드된 ‘신성모독론’이 완성됐다. “인간복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중에 덧붙이려고 했다. 너무 방대해지는 것 같아, 결국엔 지금의 마지막 결말처럼 만든 이가 피조물에 종속된다는 여운만을 남겼다.” 올 누드로 촬영을 강행해야 했기 때문에 창조 직전의 남과 여를 맡아줄 배우를 섭외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처음으로 35mm 카메라로 촬영한 작품이라 화면 구성에도 애를 먹었다. 콘티야 사이즈대로 16:9로 그린 뒤 이를 바탕으로 찍었는데도, 정작 인물 클로즈업의 경우 양쪽 공간이 남아도는 느낌이 든다는 것.대학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이진우 감독은 오락영화광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007 시리즈, 중·고등학교 때는 홍콩영화와 성인영화를 ‘독파’한 그가 진지함을 겸비하게 된 것은 독문학을 전공하면서부터.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독일문화원에서 빌려다 본 테이프 개수가 늘어나면서 프리츠 랑과 파스빈더와 빔 벤더스라는 이름이 저절로 입력됐다. 그렇게 보내던 94년 무렵, 그는 부모님께 독일로 유학가서 공부를 더 하겠다는 전언을 남기고 떠났지만, 비자문제로 뮌헨대학 독문학부에 학적만 걸쳐놓은 채 몇 차례 영화과에 시험을 보았다. 결과는 두 차례 낙방. 빔 벤더스도 그러했다지만 어찌나 억울했던지, 담당교수를 쫓아다니며 “내가 왜 떨어졌는지” 이유를 말해달라고 했고, 결국 “어차피 공부한 뒤 결국 돌아갈 것 아니냐”는 답만 얻어들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그 돈으로 단편영화를 찍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귀국했고, 워크숍에서 강의하던 파적의 윤영호 감독을 만나 99년 파적에 합류했다. 당시 파적은 전방위 예술 지향 단체에서 독립영화제작소로 탈바꿈할 무렵. 이곳에서 16mm 카메라로 <돼지꿈>을 만들었다. 당시 복권에 관한 시나리오를 몇편 써두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흔한 소재라는 이유만으로 접어두고 있던 차에 돼지꿈이 떠올랐고, 한 여인의 돼지꿈을 표현하되 돼지의 시점으로 바라본 세상과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상상을 버무려 넣었다. 올 여름 독일에서 미술 공부하는 여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그곳에서 단편 1편을 찍을 계획이라는 그는 돌아오는 대로 외로움에 관한 영화를 “눈 내리기 직전, 그 배경, 그 느낌”으로 찍었으면 한다. 사람냄새 나는 작품이 하고 싶은 걸 보면 영화하면서 늦게나마 철이 드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러면서도 여전히 카메라를 들면 장난끼가 발동하는 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는 게 그의 하소연.
글 이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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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날아가고… 너는 마법에 걸려 있으니까>의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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