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배우 최민식 [3] - 김지운 감독이 귀띔하는 최민식
2001-05-18

사람의 탈을 쓴 배우

그는 나를 볼 때마다 히죽 웃는다. 내가 우스갯소릴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먼저 웃음을 짓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나를 볼 때마다 히죽 웃는다. 카페에서든 술집에서든 한쪽 구석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 나를 보고 그렇게 웃음을 짓는다. 그렇지만 한번도 왜 웃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그도 왜 웃는지 한번도 말한 적이 없다. 그냥 나를 보고 히죽 웃거나 빙그레 웃어주는 게 기분이 좋았다. 왜 웃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고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그래서 설명할 순 없지만 그래도 알 만하니까 서로 그러고 있는다.

최민식 선배는 그런 사람이다.<조용한 가족> 때, 그가 나오는 신을 준비하며 모니터 앞에 앉아 있으면, 배우가 왔는데도 감독이 배우에게 다음 찍을 장면에 대해 멘트도 안 하고 별다른 주문도 안 하고 그저 모니터 앞에 앉아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거나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있는데도 그런 나를 보고 그냥 히죽 웃거나 낄낄거리기만 한다(또는 송강호와 같이). “여기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또는 이 사람이 여기서 왜 이래야 하는 거야?” 하고 따지지 않아서 좋고 그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돼니까 좋다. 모니터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나를 보고 혼자 킥킥거리다가 그냥 연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 생각없이 모니터만 멍청하게 쳐다보는 것은 아니다.그가 없는 빈 공간을 쳐다보며 내내 ‘이 감각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고민고민한다. 머리 속에서 벌이 날아다닌다. 그러다가 그가 그 빈 공간 안으로, 빈 앵글 안으로 쑥 들어온다. 그러면 그때부터 놀라운 마술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내가 할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그가 준비되면 나는 액션만 외친다. 그것으로 끝이다. 빈 공간이, 빈 앵글이 완벽하게 채워진다. 내가 할 거라곤 감동과 행복에 젖어 있다가 정신차리고 시간에 맞춰 컷만 외치면 그것으로 만사쾌조다. 속으로 난 참 복도 많다, 이렇게 생각한다.

보통 배우가 앵글 안으로 들어오면 뒤로 가라거나 앞으로 들어오라거나 하는데 그가 앵글 안으로 들어와 탁 버티고 끙하고 힘주고 있으면 카메라가 앞으로 들어가거나 뒤로 물러나게 된다. 한국에 최민식 같은 배우가- 스타말고 배우!-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그를 보라! 그러면 그가 공간을 지배하는 것을 보게 된다.

관련인물

김지운 | <조용한 가족>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