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 이후, 일본영화계가 세계무대에 자신있게 내세우는 선두주자는 구로사와 기요시와 아오야마 신지다.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하게
지켜온 아오야마 신지에 비해, 구로사와 기요시는 장르영화의 언저리에서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83년 로망 포르노 <간다천 음란전쟁>으로
데뷔한 구로사와 기요시는 주로 공포영화를 만들었다가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은 <큐어> 이후 <인간합격>이나 <거대한
환영>처럼 다양한 장르로 폭을 넓혀가고 있다. 신작인 <회로>는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출품됐다.
전주영화제에서 열린 구로사와 기요시 특별전에서 상영된 작품은 <카리스마> <강령> <인간합격> <지옥의
경비원> 4편. 구로사와 기요시의 ‘장르 감각’을 보여주는 <지옥의 경비원>부터,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우화적인 수법으로
풀어낸 <카리스마>까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세계’를 거칠게 훑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사회의 시스템에서 분리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는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구로사와 기요시(이하 기요시) 서울은 처음이다. 이렇게 번화한 곳인지 몰랐다.
놀랍다.
김봉석(이하 김) 지난번에 일본에서 만났을 때는 미처 <회로>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뒤 봤는데 당신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당신의 필모그래피를 집대성한, 한 단락이 맺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구로사와 <회로>를 내 작품의 집대성으로 보았다니 기쁘다.
처음에 <회로>를 만들 때에는, 그저 호러영화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요소를 넣으려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귀신을 만나는 이야기였는데, 나가다보니 모든 것을 담게 됐다. 지금은 내가 무슨 영화를 만든 건지 정확히 감이 오지 않을 정도다. 그간의
제작방식과는 달리 도호라는 메이저 영화사에서 제작하는 큰 영화라 개인적으로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다.
죽음에게 말 걸기, 그 뒤
김 <회로>는 도시, 세계 전체가 멸망하는것으로 끝난다. 인터넷에서 귀신이 나타나는 작은 일에서 출발하여 주변사람들이 사라지고 종말로 향하는 걸 보고 있자니 조지 로메로의 데드
3부작, 특히 <죽음의 날>이 떠올랐다. 그런데 <카리스마>의 마지막 장면도 불타는 도시다. <카리스마>에서
보이는 멸망의 이미지는 제작연도가 99년이고 세기말의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보겠지만 2001년에 만든 <회로>도 여전히
그러한 느낌을 유지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구로사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나는 이야기를 시작할 때
늘 사회와 주인공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사회 밖으로 점점 멀어져, 떨어져 나가는 걸 생각하게 된다. 사회에서 주인공이 떨어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주인공이 죽거나 사회가 불타거나 멸망하는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는, 지금 일본사회에는 확실한 가치관이 부재한다.
어떻게 해도 버릴 수 없는 가치관이야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제로’부터 새로 시작하는 욕망, 사회 기성의 것들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욕구가 여전하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김 일본인들은 특히 종말에 대해 각별한 관심 혹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고지라>가 나왔을 때 다른 나라 관객에게 충격을 준 것은, 그 견고해 보이는 현대도시가 한순간에 쑥대밭으로 변해버리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원자폭탄의 경험을 가진 일본인들의 가슴속에 늘 담고 있었던 이미지가 아닐까. 마침 <회로>의 제작사는 <고지라>의
도호다.
구로사와 동의한다. 일본인들은 원폭이라든지 지진을 통해서, 인간이 만든
것은 언제라도 무너지고 망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고지라>를 보면서 도시와 사람들이 한순간에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며 끔찍해했다. 어쩌면 상관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김 <회로>에서 비행기가 건물에 부딪히는 장면에서 나는 <고지라>가
떠올랐다.
구로사와 그럴 수도 있겠다. 찍을 때 ‘이 신은 <고지라>의
그 신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찍지는 않았다. 돈도 시간도 많이 들었던 장면이지만 꼭 찍어야 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프로듀서가 하루는 ‘이걸
왜 힘들여 찍지? 꼭 찍어야 하겠어?’라고 물어왔다. 물론 돈이 없으면 찍을 수 없는 장면이다. 하지만 ‘영화에 돈을 쓴다는 건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장면이기도 하다.
김 당신의 영화는 액션과 리액션이 충실하게 이어지기보다는, 난데없는 장면들이
불쑥불쑥 돌출하며 흘러간다. 영화의 전개에 꼭 필요없는 장면들. 그럴 때 묘하게도 ‘저 장면은 감독이 정말 찍고 싶어 했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그건 <강령> 같은 장르영화를 찍건, <인간합격>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건 마찬가지다.
구로사와 맞다. 실제로 찍고싶으니 찍는 거다. 이야기나 줄거리만 전달하고
싶다면 영화를 찍을 이유가 없다. 관객이 어떤 리액션을 보이는가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여전히 영화계의 아웃사이더이고 내 영화가 히트
못하는 이유일는지 모르겠지만. (웃음) 모든 영화는 스토리로 시작하지만 내 관심은 ‘무엇이 일어나는가’이다. 어떤 영상, 어떤 화면은 나중에
생각한다. 눈앞에 발생하는 많은 일을 담아내면, 그것이 현실과 가장 많이 닯아 있다. 영화는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 실험적이 아니라고 하지만, <강령>도 장르영화로서는 충분히
실험적이다. 하지만 <강령>의 초반에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은 관객의 반응까지 정확하게 계산했다고 본다. 당신의 영화는 한 인간을,
세계를 아주 정밀하게 파고든다. 당신의 작품은 차갑다기보다는 냉정하다. 흔들리지 않고. 리액션에 관심이 없다기보다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닌가?
구로사와 보는 사람의 반응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다. 나는 영화를 만들기
전 ‘관객이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세계의 모든 사람이 관객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관객이라면’ 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든다.
내가 관객으로 ‘멋지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을 찍을 뿐이다.
김 <카리스마>는 나무를 벨 것인가 말 것인가에서 확대되어
결국 ‘산다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둘 중 하나가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인간합격>도
결국 주인공이 죽는다. 당신은 시스템과 개인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구로사와 나의 관심은 늘 시스템과 개인에 대한 것이다. 나 역시 도쿄란
도시에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개인이 시스템 밖으로 나가는 방법은 세 가지다. 죽는 것, 범죄자가 되는 것, 그리고 미치는
것. 나는 감히 시스템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는 사람이고 평범한 인간이라 영화라는 픽션을 통해 이런 식으로 푸는 것 같다. 시스템과 개인이
별개의 관계를 가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명확한 답이 없지만 알고 싶어서 영화를 만든다. <큐어>에서는 범죄자가 되고
<카리스마>에서는 미치고 <인간합격>에서는 죽는다. 그러나 <회로>에서는 죽지 않는다. 죽어도 이 시스템
안에서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살 수밖에 없다. 왜 그런 생각에까지 도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 <강령>의 한없이 착한 부부가 여자의 ‘기프트’ 때문에
파멸로 치닫고 <큐어>에서는 단 한번도 싸우지 않았던 부부가 마음속의 무언가를 끄집어내면서 상대방을 죽인다. 당신 작품에서는
순수한 사람들이 파멸돼가고, 망가져간다. 그것이 당신이 생각하는 현실인가.
구로사와 원래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존재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구분들이 어느 날 갑자기 파괴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들이 선과 악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이 표면으로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의 차이는 시스템 속에서의 상반된 반응일 뿐이다. 갑자기 시스템이 변하게 되면 그간 보여지지 않았던 좋은 면이나 나쁜
면이 갑자기 돌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시스템의 변화가 평범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기도 하니까.
김 <큐어>는 다르지만, 당신의 공포영화는 장르의 공식을 원용하며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냈다. 그 정점인 <회로>에서 완전히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회로>에서
귀신은 단지 인간에게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고, 그걸 본 인간은 죽는다. 인간에게 본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단지 그것만으로
인간은 죽어가고, 세계는 멸망한다. 인간과 귀신, 아니 죽음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구로사와 <회로>를 이렇게 열심히, 그리고 제대로 본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다. 그 점에 먼저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 사실 지금도 <회로>라는 작품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앞서 말했듯이 처음엔 그냥 호러영화 한편을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결국 내 느낌으로만 똘똘 뭉친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간 유령이
나오는 TV프로그램이나, 호러영화를 많이 찍었는데 그때마다 “유령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풀어낼 기회가
없었다. 죽음이 어떤 것인지, 죽음이 눈에 보인다면 어떤 느낌인지, 죽음이 나를 쳐다보면 어떨까? 어느 날 죽음과 내가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몇천년 동안 종교인들과 철학자들이 수없이 고민하는 부분이지만. 언젠가 죽음과 커뮤니케이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을때, 결국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 것 같다.
시스템 불태우면, 희망
김 나는 개인적으로도 공포영화를 아주 좋아하는데, 특히당신의 작품은 독특한 공포영화이며 아주 매력적이다. 그런데 서구의 공포영화에서도 귀신이나 유령이 존재하지만 주로 다른 곳에서 습격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인은 유령이나 귀신이 우리와 함께, 바로 곁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민족 아닌가?
구로사와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사람들이 비슷할 것이다. 특이하다면
일본에는 괴담영화가 예전부터 아주 많다. 그 괴담들은 서구영화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무섭고 다양하다. 일본 호러의 특징이라면 이런 옛 괴담영화의
영향을 받아서일 것이다. 서구의 몬스터나 에일리언은 무섭고 두려운 존재인 동시에 맞서 싸울 수도 있는 존재다. 그러나 일본의 귀신은 싸울
수도 없고 나온 순간 끝이 나버린다. 그게 다른 거고, 그게 더 두려운 거다.
김 일본이란 사회는 전세계에서도 가장 첨단 문명에 길들여진 곳이지만,
<카리스마>의 나무 숭배처럼 애니미즘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카리스마>는 시스템을 빠져나온 사람이 애니미즘에
경도되고 <회로>는 시스템 내에서 첨단의 인터넷을 통해 그 내부로 더 깊게 들어간다. 그런데 결말은 마찬가지다. 당신이 생각하는
미래는 비관적인가.
구로사와 일본은 애니미즘이 강한 민족이긴 하지만 그건 서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먼저 단언컨대 미래는 희망적이다. 그러나 희망이 오기 위해서는 문명은 큰 혼란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이나
문명이 최고조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런 발전이 계속되진 않을 것이다. 그 끝엔 희망이 없다. 사회나 시스템을 뒤집어 엎어 불태운
다음, 그 다음에 희망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일본영화산업이 갈수록 사양산업화돼가고 일본 애니메이션은 돈도
많이 벌어들이는데 일본영화는 그렇지 못하는 게 분하고 기분나빠서 그럴 수도 있다. (웃음)
김 냉전이 해체된 90년대 이후, 하나의 문명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나라가
멸망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지옥의 경비원>에 등장하는 살인자는 <제도물어>의 악당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그건 제국주의 시대의 군인의 옷이다. 경비원은 보호자의 역할을 해야 하지만 오히려 그들을 죽인다. 경찰이나 군대, 정부는 시민을
보호하고 봉사해야 하지만 오히려 그들을 억압하고 고통을 준다. <지옥의 경비원>은 구체적인 적이 등장한다. 반면 요즘은 일본이나
서구나 구체적인 적보다 거대한 적을 이야기한다. 근사해 보일 수도 있지만 반면 허황하지도 않을까.
구로사와 <지옥의 경비원>은 10년 전 작품이다. 그때의 느낌과
생각이 지금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다. 당시는 거품경제시대였고 지금과는 경제적인 태도부터가 달랐다. 그때 생각했던 적은 자본주의였고 ‘돈이
최고’라는 사람들의 의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히 자본주의가 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지옥의 경비원>은
정치, 경제적 메시지가 그렇게 컸던 작품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재미 위주로 만들었고 너나 할 것 없이 ‘돈, 돈’ 하니까 그것에 대한 반감을
담은 것이다.
구로사와 굉장히 흥미로운 대담이었다. <지옥의 경비원> 같은 10년 전 영화까지 관심을 가지고 정확히 평해주니
부끄러울 뿐이다.
정리 백은하 기자 사진 손홍주 기자 통역 강민하
▶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 감독,
감독을 만나다 - 임순례와 지아장커
▶ 평론가,
평론가를 만나다 - 임재철과 샤를 테송
▶ 평론가,
감독을 만나다 - 김봉석과 구로사와 기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