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5월3일 막내려, <이것은 나의 달> <정오의
낯선> 등 수상
대안영화, 급진영화를 내세워 영화의 새로운 영토를 향했던 ‘전주국제영화제 2001’의 영화 탐사가 지난 5월3일 막을내렸다. 일주일 동안 30여개국 200여편의 영화 풍경을 펼쳐보인 제2회 전주영화제는, 3일 저녁 7시 전북대문화관에서 열린 폐막식 및
아시아인디영화포럼 수상작인 <이것은 나의 달>의 폐막 상영을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춤과 생명’을 주제로 한 채향순 무용단의
화려한 공연으로 문을 연 폐막식은 영화배우 김갑수, 염정아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김홍준 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심광현 원장 등 국내 인사들과 지아장커, 존 아캄프라 등 해외 게스트들이 참가했다.
이날 폐막식에서는 영화제의 경쟁부문인 아시아인디영화포럼의 ‘우석상’, 디지털영화 부문인 N비전상 등 4개 부문 시상식도 진행됐다. 우석상은
스리랑카영화 <이것은 나의 달>과 타이영화 <정오의 낯선>이, N비전상은 미국의 <언제나 변함없는 여왕>과
벨기에의 <쾌락과 히스테리에 관하여>가 공동 수상했다. 그 밖에 왕샤오슈아이 감독의 <북경 자전거>가 인기상인 ‘전주시민상’을,
장명숙 감독의 <오후>가 단편영화상인 ‘온고을 단편상’을 차지했다. 시상식에 이어 최민 조직위원장은, “대안, 디지털, 급진을
모토로 한 이번 영화제 작품들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잘 끝나서 다행이다. 전주시민의 헌신, 관객의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폐막 인사로 내년을 기약했다.
프로그래머 교체라는 파행을 겪은 전주영화제에 대해 우려의 시선도 적잖았지만, 불안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은 기대보다 풍성했다는 게
중평. 개막작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비롯해 <북경 자전거> <햄릿 2000>
등 초반에 매진된 작품들 외에도 깔끔한 중국산 멜로드라마 <국화차>가 관객에게 발견의 기쁨을 선사했고, 일본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특별전 등 메인 섹션의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다. 영화제쪽 집계에 따르면 시네마스케이프, 아시아인디영화포럼, N비전 등 메인 섹션 3개 부문에서
17편이 전회 매진됐고, 모두 40여편이 매진에 가까운 성황리에 상영됐다고. 하지만 메인 섹션 외에 영화제가 아니면 만나기 힘든 영화의
낯선 지평을 보여주는 특별 프로그램들의 좌석점유율은 10∼20%로 매우 저조했다. 파스빈더와 오가와 신스케의 ‘오마주’와 다큐멘터리 비엔날레,
올해 영화제가 새롭게 내건 ‘급진영화’의 기치 아래 야심차게 마련한 ‘포스트68’ 등은 일부 학구적인 영화광들을 제외하면 관객의 발길을
끌지 못했다. 주최쪽은 영화제의 색깔이 더 선명해져서 거부감을 사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일반적 관객의 호응이 줄어들지는 않았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았다. 프로그래밍 어드바이저 서동진씨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관객을 더 끌어들인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인 장벽이 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편 관객과 언론매체의 기대를 모았던 지아장커, 차이밍량, 존 아캄프라의 디지털 삼인삼색은 엇갈린 반응을 얻었다. 오랫동안디지털 매체를 다뤄온 아캄프라의 <디지토피아>는 인터넷과 폰섹스로 만난 여성에 대한 집착적인 사랑을 담은 탐미적인 영상과 색채로
무난한 점수를 받았지만, 기차역과 버스 정류장 등의 사람들을 그대로 화면에 옮긴 지아장커의 <공공장소>는 상반된 반응을, 죽어가는
물고기나 지하도 같은 이미지의 편린을 연결한 차이밍량의 <신과의 대화>는 너무 난해하고 자족적이라는 실망을 샀다. 감독들의 지명도에
비해 전반적으로 기대 이하라는 평가와 함께, 제작비 5천만원을 주고 맡겨두기만 할 게 아니라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도 많았다.
해외 게스트들은 “사업이 없을 만큼” 작은 영화제답게 오밀조밀한 프로그램에 호의를 표했다. 그러나 한국영화 섭렵을 기대한 이들은 섭섭한
기색을 애써 감춰야했다. 해외 영화제 출품을 겨냥하는 작품들이 많아 한국영화 수급에 어려움을 겪은 영화제 측은, 한국영화 장편부문을 아예
없애고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라이방> 등 2편만을 시네마스케이프에서 상영했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영화제 개막부터 관객과 행복하게 만나 영화제의 분위기를 끌어갔고, 장현수 감독의 <라이방>도 기대 이상이라는 호평을 들었다.
영화제 조직위에 따르면 올해 전주를 다녀간 관객은 약 9만5천여명. 전체 좌석 수 8만석에 평균 60% 이상의 점유율을 보였으며, 지난해에비해 전체 관객 수는 줄었지만 유료 관객은 오히려 늘었다는 게 조직위의 분석이다. “어린이날을 전후로 무료상영에 관객이 몰렸고, 아이디
카드 소지자와 초대권이 좀더 많았던” 지난해보다 실제 유료 관객 수가 지난해 4만9천명에서 5만4천명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관객이 몰리는
주말뿐 아니라 공휴일인 5월1일을 전후로 평일에도 관객 수가 크게 줄지 않고 꾸준해 영화제 분위기를 고무시키는 데 기여했다. 수십차례의
관객과의 대화, 영화의 거리 메인 무대를 밤낮없이 메웠던 공연 및 각종 이벤트도.
하지만 빈번한 상영 사고와 자막문제, 느린 입장권 발매 시스템 등 진행상의 문제점은 여전히 심각한 과제로 남았다. 준비과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 크지만, 특히 상영시설 낙후로 여러 차례 상영이 중단되거나 취소되는 상황이 잦아 관객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극장의 영사 조건과 프린트 사이즈가 맞지 않아 상영 취소됐으며, <벤자멘타 연구소> <데드 오어 얼라이브>
등 서너 차례 이상 상영이 중단된 작품들도 다수. 영화제쪽은 입장료 환불과 급조한 무료상영으로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영화제의 존속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개선이 시급하다는 영화제 안팎의 목소리가 높다. “규모있는 국제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영화제 조직위는
물론 지역 차원에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는 게 조직위 관계자의 말이다. 올해 영화제 기간 동안, 전주지역의 영화촬영 유치를 기본으로
전주지역 영상문화 활성화를 위한 전주영상위원회의 창설도 하나의 가능성으로 비치고 있다.
그밖에도 전주의 지역성, 아직도 전주영화제의 영화들이 어렵다는 전주 시민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나아가 대안과 급진이라는 영화제의 정체성을
굳혀가면서 관객에게 다가갈 것인가 등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들은 산재해있다. 쉽지 않은 두 번째 항해를 마쳤지만, 더 멀리
가기 위한 영화제의 고민은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글 황혜림 기자·최수임 기자 사진 이혜정 기자
▶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 감독,
감독을 만나다 - 임순례와 지아장커
▶ 평론가,
평론가를 만나다 - 임재철과 샤를 테송
▶ 평론가,
감독을 만나다 - 김봉석과 구로사와 기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