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톨, 알트린챔, 맨체스터=황혜림 기자
<월레스와 그로밋>의 고향, 아드만 스튜디오
영국의 아담한 항구도시 브리스톨에서 아드만 스튜디오를 찾아가려면 잠시 고민을 해야 한다. <동물원 인터뷰> 등 아드만 초기작의 산실인클리프턴의 옛 스튜디오로 갈 것인지, <월레스와 그로밋>의 두 에피소드, <전자바지 소동> <양털 도둑>을
만들었던 가스 페리가의 스튜디오로 갈 것인지, 아니면 <치킨 런>을 제작했던 브리스톨 북부의 장편용 스튜디오로 갈 것인지. 그렇다.
한때 영화를 좋아하는 두 청년의 부엌에서 출발한 점토 인형들의 왕국 아드만은 이제 브리스톨에만 세개의 스튜디오를 둘 만큼 메이저로 발돋움했다.
사업에 관한 주요업무를 처리한다는 장편용 스튜디오는 신작 준비가 한창인 때문인지, 방문이 허락된 곳은 <월레스와 그로밋>의 고향인
가스 페리의 스튜디오였다. 클리프턴의 스튜디오가 너무 좁아서 93년에 옮겨왔다는 이곳은 아드만의 모든 광고작업과 단편작업이 이뤄지는 곳이다.
부두 하역장에서 가까운 붉은 벽돌 건물은, 창고를 개조한 듯한 다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에 비하면 크고 깔끔해 보였다.
전체 건물 크기에 비해 좁은 1층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월레스와 그로밋, 꼬마 렉스 등 진열장 속 아드만의 앙증맞은 캐릭터들이 웃고있고, 앞과 옆의 하늘색 벽에 걸린 <앵그리 키드>의 악동 같은 마스크가 방문객을 반긴다. 하지만 다른 스튜디오들과 달리 접수처
같은 안내 데스크가 있는 그곳에서 방문객은 일단 정지다. 일행을 맞은 아드만의 페스티벌 및 전시담당자 키에란 아르고는 방문객용 명찰을 달아달라며,
캐릭터를 만드는 모델 메이킹 공간은 절대 촬영 금지라고 거듭 강조해 스튜디오의 유명세만큼 조심스러워진 듯한 인상을 줬다.
작업공간의 대부분은 2층과 지하에 있다. 2층은 프로듀서들이 주로 일하는 프로덕션 오피스와 감독들이 일하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직원들의
휴게실 겸 식당으로 나뉘어 있다. 프로덕션 오피스는 현재 개발중이라는 아드만의 새 로고가 벽에 붙어 있고, 책장 곳곳에 <동물원 인터뷰>와
닉 파크가 광고 작업에 사용해온 곰과 펭귄 같은 캐릭터들이 놓여 있지 않다면 그저 책상과 컴퓨터가 많은 사무실 분위기다. <그랜드 데이
아웃>에 나오는 치즈처럼 샛노란 벽이 인상적인 식당에는, 유리도 없는 장식장에 닉 파크의 아카데미 트로피 3개를 포함해 영국 아카데미상
등 상패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복도에도 넘쳐나는 각종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받은 상장들까지, 곳곳에서 아드만이 20여년간 다져온 명성의
인증을 확인할 수 있다. 감독들이 각자의 책상을 가지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는 말이 스튜디오지 그냥 넓은 사무실 공간이다. 그 한편에는
아드만의 CGI 파트가 공간을 나눠 쓰고 있다.
천정으로 파이프가 지나다니는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면 광고를 위한 모델 등 인형을 만드는 여러 공정의 작업실이 있다. 유리판 위에 초록색 플라스티신을올려놓고 꼼꼼하게 뭔가를 다듬고 있는 사람, 주형을 만들고 있는 사람 등 모델 메이킹 작업장은 점토 인형을 빚어내는 스튜디오의 심장부답게 가장
분주하다. 매키넌 앤 손더스에서 봤던 철제 뼈대도 보이고, 주형을 위한 틀도 보이지만 인형제작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보다는 확실히 소규모다.
아드만의 인형들은 섬세한 표정 연기가 필요한 얼굴과 귀 등은 플라스티신으로, 그외 몸체는 실리콘과 폼라텍스로 만든다고. <치킨 런>의
닭들도 얼굴과 날개, 발은 플라스티신이지만, 몸은 실리콘 고무다. 기본적으로 점토인 플라스티신은 손상되기 쉽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촬영이 아니라
전시 전용으로 단단한 재질의 모델을 만드는 공간도 있다. 세계 각지의 전시에 돌아다니기 바쁜 월레스와 그로밋도 여기서 새로 만든 모형이다.
지하에는 또 3개의 스튜디오가 있는데, 마침 촬영이 없다는 제일 큰 스튜디오에는 모션 컨트롤 카메라와 돌 리, 촬영용 에어콘만 있었다. 전체적으로
폐쇄적인 스튜디오는 한여름에 푹푹 찌기 때문에, 애니메이터들은 땀을 흘리게 해도 플라스티신 인형들은 녹지 않도록 에어콘을 틀어준다. 중간 크기
스튜디오에서는 미국 정유회사 ‘셰브론’ 광고를 촬영하고 있었고, 가끔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작업공간으로 빌려준다는 작은 스튜디오에는
마침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온 학생이 세트를 지어놓고 있었다.
꼭 <월레스와 그로밋>의 아기자기한 풍경의 실사판을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그로밋이 살았던 자취는 간 데 없고, 작업중인 이들에게개인적으로 말을 걸지 말아달라는 안내자의 설명에 귀기울인 견학은 어쩐지 아쉬움이 남았다. 마침 월레스와 그로밋 인형을 들고 병원에 있는 아이들을
위로하러 갔다는 닉 파크라도 만났더라면, 깔끔하고 현대화된 아드만의 작업실에서 <월레스와 그로밋>의 장편이 어떻게 나올 지 궁금하다고
물어보기라도 했을 텐데 말이다.
그밖의 제작사,코스그로브홀과핫애니메이션.
아드만의 깔끔함에 대한 실망(?)은 맨체스터의 코스그로브홀에 이르자 어느 정도 상쇄됐다. 코스그로브홀은 76년 두명의 애니메이터 브라이언 코스그로브와
마크 홀에 의해 설립된 이래 영국 애니메이션의 중추 역할을 해온 영국 최대 규모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모델링 작업공간과 여러 개의 스튜디오
공간은 물론, 컴퓨터 특수효과팀, 녹음실, 사운드믹싱 파트 등 애니메이션 전체 공정을 거의 소화할 수 있도록 설비를 갖추고 있다. <데인저
마우스> 같은 전통적인 애니메이션과 <안녕 노디> 같은 인형애니메이션을 함께 해온 코스그로브홀은 현재 2D와 3D의 합성은
물론,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인형, 종이 그림을 합한 다양한 애니메이션 실험을 병행하고 있다.
코스그로브홀에서 작업하다가 독립한 감독 브라이언 리틀 등 3인이 98년에 설립한 핫애니메이션은 신생이라 역사는 짧지만 주목도가 높은 모델 애니메이션제작사다.알트린챔, 매키넌 앤 손더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핫애니메이션은 현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는 TV시리즈 <밥 더 빌더>의
산실. <가시덤불 울타리>의 두 번째 시리즈와 곧이어 시작한 <밥 더 빌더>로 ‘잘 나간다’(Hot)는 뜻의 이름에 걸맞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현재 4번째 시리즈를 방영중인 <밥 더 빌더>는 아담한 마을을 무대로, 집안팎의 고장난 부분을 수리하고 개조하는
밥과 이웃들을 그린 다룬 교육적인 내용의 애니메이션. 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밥 더 빌더>는 곳곳에서 장난감 인형이나
사탕을 볼 수 있을 만큼 캐릭터의 인기가 대단했다.
▶ 인형의
집, 영국 애니메이션 명가를 가다
▶ 공동대표
이안 매키넌, 피터 손더스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