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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도 산양들 하고 싶어” - <산양들> 배우 박혜진, 이승연, 박효은, 최수인
정재현 2026-07-30

이승연, 최수인, 박효은, 박혜진(왼쪽부터).

- 네 배우 모두 캐스팅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진과 미팅을 가졌다고 들었다.

박혜진 리딩날 내 말투, 성격 그대로 인혜를 연기했고, 감독님, PD님으로부터 인혜와 어울린다는 평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연기할 때 인혜의 말투나 표정을 만드는 데에 큰 난관이 없더라. 사실 처음엔 (이)승연 언니가 연기한 서희를 연기하고 싶었다. 서희의 히스테리나 혼자만의 세계에 사는 듯한 모습이 도전 욕구를 불렀다.

이승연 정작 나는 인혜가 되고 싶었다. (웃음) 인혜의 이야기가 잘 읽혔거든. 그런데 인혜 대사를 읽을 땐 큰 반응이 없던 감독님, PD님이 내가 서희 대사를 읽자 박장대소했다.

박효은 대본을 받던 당시 다른 작품을 촬영 중이었다. <산양들>을 먼저 읽은 아빠가 눈물이 났다고 했다. 궁금해서 바로 대본을 집어들었고 이 작품이 정말 하고 싶어졌다. 그간 침울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는데 정애는 슬픈 일이 있어도 통통 튀는 매력이 커서 색달랐다. 내가 정애를 연기할 때도 감독님, PD님이 엄청 웃으셨다.

최수인 왜 내가 연기할 땐 아무도 웃지 않은 거야! 나는 네명의 캐릭터를 모두 분석해갔다. A4 용지 각 1장 분량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심 인혜와 수민이 가장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감독님은 내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수민이 걸어온다고 생각하셨더라.

박효은 의상 피팅날 언니들을 처음 만났다. 그저 신기했는데 수인 언니의 얼굴이 유독 눈에 익어 뒤에서 계속 쳐다봤다. 언니도 시선을 느꼈을 텐데 차마 말은 못 붙이겠더라.

최수인 인사라도 하지. 그저 바라만 보길래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 얼굴에 뭐가 묻었나 한참을 고민했다. (웃음)

박혜진 정작 우리는 피팅날 한번 만난 후 거의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아, 이후 학교에 가야 하는 효은이 없이 우리 셋이 감독님의 미션을 받아 동물농장에 가긴 했다.

- 동물농장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오늘 인터뷰에 오리 ‘희선’까지 함께여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 영화 초반 삽입되는 “본 영화 속 동물들은 동물 전문가의 관리 감독하에 안전하게 보호되었습니다”라는 디스클레이머가 미덥게 다가왔다. 수많은 동물들이 한데 뒤섞인 현장을 어떻게 기억하나.

박혜진 오리뿐만이 아니다. 토끼는 또 얼마나 귀여웠다고. 와중에 닭들은 현장에서 줄곧 자고 프레임도 자주 벗어났다. (웃음) 동물농장에 간 날 오리가 누군가의 팔에 실례를 했는데?

최수인 내 팔이다. 사람들과 계속 부대끼다 보니 오리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아 미안했다.

이승연 원래 동물을 무서워했다. 전문가의 동반하에 동물이 겁을 먹지 않는 방향으로 안는 법, 먹이 주는 법 등을 배웠고 점차 두려움을 줄여나갔다. 앞서 이야기가 나온 감독님의 미션도 큰 도움이 됐다. 토끼를 안고 농장 한 바퀴 돌기, 닭장 속에서 5분 머물기…. 그 미션을 완수해야 퇴근할 수 있었다. 혜진이가 언제나 제일 잘했다.

박효은 확실히 혜진 언니가 사육장을 담당하는 인혜라니까. 나는 친해질 시간이 없어서 걱정이 많았다. 현장에서 쉬는 시간마다 동물들에게 괜히 말도 걸고 먹이도 주며 가까워졌다.

이승연

- 영화 속 ‘산양들’은 인적 드문 숲속에 동물들을 위한 셸터를 짓는다. 영화 메이킹 영상을 보니 네 배우가 셸터의 비닐하우스를 제작진과 협력해 직접 짓고 또 철거했더라. 셸터에서 네 친구가 좌충우돌하는 서사가 작품의 골자를 이루는 만큼 야외 촬영의 비중이 높은 현장이었겠다.

이승연 그땐 촬영장까지 직접 운전해 다녔다. 운전에 서툴다보니 혹시 늦을까 분주히 움직이느라 자주 콜 타임보다 일찍, 스태프들보다 먼저 숲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어 적막한 숲속에 서 있으면 꿈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감정 잡기도 쉬웠고 공간과 금방 친숙해졌다. 화장실이 없다는 점 빼곤 낭만 그 자체인 장소였다.

박효은 아빠가 운전하는 차에서 내내 졸다가 비몽사몽한 채 나서면 절경이 펼쳐졌다. 아름다운 햇빛이 숲을 채우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덕분에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깨끗해져 진짜 산양들이 됐다.

최수인 늘 숲으로 들어가면 아늑하다는 인상이 밀려왔다. 마치 우리가 가족이 된 느낌이랄까. 들를 때마다 여기는 우리만의 공간이라는 의식을 공유할 수 있어 좋았다. 어차피 내일도 장면을 연결해 찍어야 하니 그냥 여기서 야영하겠다는 이야기도 여러 번 했다. (웃음) 실은 한달 전엔가 직접 차를 몰고 숲에 가봤다. (일동 탄식) 갑자기 그 숲이 생각이 나서 무작정 향했다. 촬영을 위해 한시적으로 개방이 허용된 곳이라 그런지 입구가 막혀 있더라. 아쉬운 김에 <산양들>이 5만 관객을 돌파하면 셸터에서 우리 넷이 춤을 추는 공약이라도 걸어야겠다.

박효은 릴스를 찍어야지! 셸터를 다시 지으면 어떨까?

이승연 요새 원터치 텐트도 많으니까 임의로 세워도 되지 않을까.

최수인 비닐하우스가 아니면 또 낭만이 없지 않나.

박혜진 한번 우리끼리 머리를 맞대봐야겠다. (웃음)

- 웃자고 하는 소리인데 영화엔 액션 시퀀스가 두 차례 있다. 한번은 인혜와 서희가 난투극을 벌이고, 이후 인혜와 수민이 서로를 공격하자 서희와 정애가 둘의 싸움을 막는다.

박혜진 인혜와 서희의 몸싸움은 액션의 합이 중요했다. 서로 몸으로 말할 때의 호흡을 맞추는 데에 유념했다.

이승연 안무 연습하듯이 움직이는 발걸음 수나 회전 지점 등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여기서 네가 날 돌리면 다음엔 내가 널 돌릴게, 이러면서 말이다. 인혜와 수민의 결투 신에선 감독님이 “이번엔 그냥 싸워볼까요? 둘은 싸우고 둘은 막아볼까요?”라며 즉흥적으로 대본에 없는 장면을 제안했다.

최수인 내가 얼마나 억울했는지 모른다. (웃음) 배우들과 친해진 지 얼마 안됐을 때 싸우는 장면을 즉석에서 만들려니 괜히 어색하더라. 원래는 수민이가 뭘 저렇게까지 틱틱대나 싶은 분위기에서 넘어가는 장면이었는데, 갑자기 몸싸움으로 번지는 장면을 찍게 된 거다. 감독님과 충분히 논의를 거쳤다. 인혜가 언성을 높이니까 수민이도 공격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논리를 만들어갔다.

최수인

- 네 캐릭터의 성격이 각각 외양으로도 드러나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한 공간에 있어도 수민은 단정히 교복을 입고, 인혜는 체육복 위에 후디까지 걸쳐 입는다. 정애는 체육복 상의를 반쯤 풀어헤치고, 서희는 체육복 상의의 지퍼를 턱끝까지 채운다. 각자 연구한 디테일인가.

이승연 감독님과 써본 전사로는, 서희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 어려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친구라 살아남는 일에 누구보다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서희가 항상 주머니에 생존 도구를 구비하는 친구다 보니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면 어떨까 싶었다. 서희에겐 그 도구가 안전장치다. 카메라 앞에서 슬쩍 시도해봤는데 감독님이 바로 의도를 알아봐주어 뿌듯했다. 서희의 불안이나 경계심을 보여주는 모션이라고 설정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퍼를 끝까지 올린 이유는 안에 받쳐 입은 티셔츠의 목이 너무 늘어나서…. (일동 웃음) 현실적인 이유였는데 의상감독님이 그래도 좋다고 허락해주었다.

박혜진 나는 몇 장면을 제외하면 매번 머리를 올백으로 묶었다. 또 교복 치마 아래 무조건 체육복 바지를 입었다. 인혜가 얼굴에 닿는 잔머리나 기동성에 방해가 되는 옷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 다른 배우에게도 배역의 디테일을 추가로 묻고 싶다.왜 정애는 타인의 애정을 갈구하는 무조건적 수단으로 칭찬을 택했을까.

박효은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 나 역시 그 점이 의문이었다. 왜 정애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상대를 칭찬할까. 그래서 시나리오 전체를 다시 정독했다. 엄마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즈음 떠나며 곧 돌아온다고 했지만, 정애는 엄마가 가족을 떠났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걸 인정하면 너무 슬프니 그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방어기제처럼 키웠을 거다. 반 친구들도 정애가 다문화가정 출신이라고 차별하니 외로웠을 테고.

박효은

- 수민은 다른 캐릭터에 비해 서사에 늦게 합류한다.수민의 까칠하고 직설적인 태도로 영화가 제시하지 않는 시간을 짐작할 뿐이다. 배우는 그 공백을 어떻게 채웠나.

최수인 수민이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몸이 약하고 한쪽 귀도 안 들리지만 이를 숨기지 않는다. 첫 등장에서부터 급식 대신 엄마가 싸준 도시락도 거리낌 없이 먹지 않나. “나도 산양들 하고 싶어”라고 말하면 될 걸 굳이 한번 튕기고 “나 그런 거 안 궁금해. 그런데 뭐라고?”라며 은근히 관심을 보이는 모습도 매력적이다. 그래놓고 모임에 합류하면 행동대장처럼 최대한 친구들에게 일조하며 최선을 다한다.

- 대입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고민하고 행동으로 착수하는 학생들을 연기했다. 아직 고2인 박효은 배우를 제외하면 다들촬영 중 각자의 입시생 시절이 떠올랐을 법한데.

박효은 그땐 중3이었다. 고3이 먼 일처럼 느껴지다가도 내 앞에 대입 면접 도서가 던져질 땐 괜히 미래가 막막하고 그랬다. 지금도 누군가가 목표 대학과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막막하다. 입시를 마친 후 <산양들>을 돌아보면 또 기분이 이상할 것 같다.

이승연 예체능 입시를 준비했던 사람으로서 김아테 선생님(김시은)의 대사가 아프게 다가왔다. “자기가 특별하지도 않으면서 혹시나 내가 특별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하나도 안 특별한 애들”이라는 꾸지람을 듣는데 고3 때의 내가 자연히 떠올랐다.

박혜진 그 대사가 불필요한 직언은 아니라고 본다.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나의 경우 장수생이었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연기 입시에 도전했다. 오히려 내 존재가 특별하지 않다고 마인드 세팅을 하면 더 열심히 노력할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다.

박혜진

- <산양들>로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등을 순회했다. 공유하고픈 추억이 있나.

박혜진 아무래도 영화를 처음 선보였던 부산국제영화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수인이 같이할 수 없어 너무 아쉬웠지만.

이승연 수인 없이 레드카펫에 서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긴장도 엄청 했다. 대기실에서 감독님에게 “너무 떨려서 레드카펫 위에서 넘어지면 어떡하냐”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때 감독님이 그랬다. 누구 한명 고꾸라지면 다같이 넘어지자고. 그 말이 큰 힘이 됐다.

박효은 GV도 매번 감동이었다. <산양들>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응원하고 싶다는 말을 관객들에게 들을 때마다 울컥했다.

최수인 지난해에 부산에 못 간 나는 올해 다른 영화제를 이유로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에서 <우리들>을 상영하고 관객들을 만났는데, 영화제 당시 개봉도 안 한 <산양들> 칭찬을 정말 많이 건네더라. <우리들> <산양들>처럼 왜 ‘-들’로 끝나는 영화만 찍느냐는 말도 듣고. (웃음)

- 네 배우가 <산양들>을 계기로 절친이 된 듯하다. 끝으로 서로의 명장면을 추천해주면 어떨까.

이승연 혜진이, 그러니까 인혜가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찬영(이효제)에게 쳐들어가는 장면! 그 신에서 이 친구가 정말 행복하고 편안해 보였다. 웬만하면 내 촬영이 없는 날도 출근했는데 딱 그 신 찍을 때 현장에 없어 아쉬웠다.

박혜진 그렇다면 나는 승연 언니. 내가 같이 나온 장면이긴 하지만(웃음) 서희가 건강식이라며 가축용 사료를 인혜에게 건넬 때의 표정에 주목해달라. 귀엽고 사랑스럽다.

박효은 수민이 작품 후반 엄청난 반전을 공개한다. 영화제마다 그 신이 나올 때면 어디서든 객석이 웅성였다. 그 반전을 꺼내는 수인 언니의 얼굴이 좋다.

최수인 그 반전 장면 이후에 정애가 식당에 가지 않나. 그때 식당 안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의 눈빛이 짠하다. 네 친구 중 내가 대장 격이다 보니 그 장면을 찍고 실제로 효은이 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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