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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애와 코미디를 동시대적으로 업데이트하라! <제4차 사랑혁명> 윤성호, 한인미 감독
조현나 사진 최성열 2025-12-05

윤성호, 한인미 감독이 공동 연출하고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제작진이 참여한 웨이브 오리지널 <제4차 사랑혁명>이 지난 11월13일부터 순차 공개됐다.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적 외형 안에 성소수자, 자기 탐구, 장애인 이동권, 학과 통폐합 문제 등 대학생을 비롯한 현대인이 마주한 문제를 극에 복합적으로 끌어들인다. 사회적 이슈를 적절한 블랙코미디와 섞어내면서도 간질간질한 사랑의 감성을 애틋하게 표현한 것이 이번 시리즈의 특징이다. 윤성호, 한인미 감독은 대학생의 ‘사랑’과 ‘혁명’을 조화롭게 그리기 위해 노력한 비하인드를 아낌없이 들려주었다.

한인미, 윤성호(왼쪽부터).

- <제4차 사랑혁명>을 공동 연출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윤성호 항상 내가 재밌게 본 독립영화나 작품의 감독님들을 잘 살펴뒀다가 좋은 프로젝트가 있을 때 연출을 제안하곤 한다. <제4차 사랑혁명>도 처음엔 나는 크리에이터 혹은 각본가로서만 크레딧을 올리고 다른 감독에게 온전히 연출을 맡기려 했지만 제작사에서 내가 함께 맡아주길 원했다. 그렇다면 나와 합이 잘 맞는 연출자와 공동 연출을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때 함께했던 한인미 감독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20대 청춘들의 이야기인 데다 연산(황보름별)을 비롯한 세명의 여성주인공이 등장하고, 코믹한 장면이 많지만 김요한 배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본능을 표현하는 신들이 적지 않다. 그런 정서를 잘 표현하기에 한인미 감독이 제격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중년 남성감독으로서 내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부분을 잘 맡아줬다.

한인미 개인적으로 연산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대본이 완성되기 전 캐릭터별 설명을 먼저 받았는데 연산의 전사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모텔에서 자라 친구들보다 성에 빨리 눈을 떴고, 존경하던 담임선생님을 그곳에서 마주친 일화와 같은 것들이 내가 호기심을 갖고 좋아하던 영화의 인물들과 닮아 있었다. 연산이란 인물을 통해 작업도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참여했다.

- <제4차 사랑혁명>은 로맨스와 코미디가 적절히 가미된 작품이다. 공동 연출자로서 둘의 연출 톤을 맞추는 과정을 따로 가졌나.

한인미 서로에게 맞춰 톤을 조율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윤성호 감독이 내게 공동 연출을 제안한 건 같이 섞여 애매해지자는 게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점을 잘 살리자는 의도였을 거라 여겼다. 코미디 장르가 내게 익숙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코미디 장면을 촬영할 땐 만화 연출법을 주로 떠올렸다. 액션이나 로맨스에선 캐릭터들이 멋지게 등장하다가도 개그 신에선 3등신으로 표현되지 않나. 한 작품 안에서 그림체가 다채롭게 변화하는 것처럼 우리 작품에서도 상황에 맞춰 분위기를 달리 가져가도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지척에 코미디를 계속 찍어온 윤성호 감독이 있었기 때문에 어깨너머로 많이 배웠다.

윤성호 처음엔 에피소드를 나눠서 독립성 있게 연출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촬영 일정이 촉박했고 세트, 로케이션 촬영의 경우 몰아 찍기를 할 때가 있어 에피소드로 나누진 못했다. 다만 분량은 비슷하게 가져갔다. 신이 복잡하고 인물들이 1.5배속으로 말하듯 느껴지는 장면들은 주로 내가 찍고, 주인공들이 키스하거나 사귀기 전 단계의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는 신들은 한인미 감독이 맡았다.

- 과 통폐합은 여러 대학에서 이뤄지는 동시대적인 상황이기도 한데 이에 관한 취재를 실제로 했는지.

윤성호 종종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근 17년 전부터 여러 학부가 합쳐진 학과가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었다. 정확한 학과명은 아니지만 가령 ‘미디어융합커뮤니케이션과’와 같은 곳들 말이다. 때론 완전히 동떨어진 학과가 합쳐진 경우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무엇이 우선순위가 되느냐에 따라 전공과 과 이름이 통째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제작사로부터 너드 공대생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남자 공대생들의 스토리를 그려보자는 의견이었는데, 그런 작품은 이미 우리가 많이 접해왔으니 차라리 컴퓨터공학과(이하 컴공과) 여학생과 모델학과 남학생을 등장시키면 어떨까 싶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한인미 요즘엔 유튜브에 없는 콘텐츠가 없다. 각 과 대학생들의 브이로그를 주로 참고했다. 학교에서 어떤 말투를 쓰고, 학교에 갈 때 어떻게 준비하며 중간고사 기간에 무엇을 어떤 식으로 준비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반인들을 위한 모델 체험 콘텐츠도 다수 올라와 있더라. 작품 내 장면으로 구현해볼 수 있는 요소들이 있었고 일부를 차용했다.

- 컴공과 학생들이 쓰는 코딩 용어를 코믹하게 소화한 대사가 많다. 두 감독이 의견을 줬나.

윤성호 대사에 관해선 우리의 제작 방식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 <제4차 사랑혁명>의 크레딧엔 나와 한인미 감독을 포함해 각본가로 이름을 올린 이들이 많다. 7명가량의 작가들이 모여 3~4시간씩 서로 연기하며 아이디어를 내고 쓰는 형식으로 작업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합류한 송현주 작가가 파편화된 아이디어를 이야기로 엮어주었고 김홍기 작가가 극 초반의 톡톡 튀는 대사들을 살려주었다. 정리하면 취재를 더 진행했다기보다는, 회의 때 나온 수많은 아이디어를 활용해 엮은 것에 가깝다. 한인미 감독의 장점은 <제4차 사랑혁명>의 넘쳐나는 신과 대사를 이미지와 은유적 표현을 사용해 영화적이면서도 간결하게 처리해준다는 것이었다. 그 덕을 많이 봤다.

한인미 연산과 민학(김요한)이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선’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 수정을 가했다. 웃음을 주고 싶어 파이선이 뭔지 모르는 민학이 최면을 걸 듯 “레드선!”이라 외치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 <학교 2021>에 나왔던 김요한, 황보름별 배우가 민학과 연산이 되어 재회했다. 두 배우를 섭외하게 된 계기는.

한인미 윤성호 감독이 몇년 전 캐스팅 후보 리스트업을 할 때부터 김요한 배우를 떠올렸다더라. 마침 제작사에서 제안한 후보도 김요한 배우였다. 정보가 적은 상태로 미팅 자리에 나갔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작품이 몇개 엎어져서인지 작품을 향한 갈망이 컸다. 배우로서의 자기 비전도 명확해서 촬영에 허투루 임하진 않겠다는 좋은 인상을 받았다. 연우 역은 섭외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연산의 대사가 워낙 어렵고 분량이 많아서 재밌게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좋은 필모그래피의 배우들을 여럿 만나봐도 이미지가 맞아떨어지는 배우가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만난 배우가 황보름별이다. 힘을 뺀 채로 연산의 대사를 앞에서 줄줄 외우는데 곧바로 윤성호 감독님과 눈빛 교환을 했다.

윤성호 자리에 앉아 첫마디를 하는 순간 정해지더라. 캐스팅은 이미 정해졌고, 이후로 나눈 대화는 황보름별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에 가까웠다.

- 연산이 지닌 말투나 톤 앤드 매너가 독특하다고 여겼는데 주로 배우가 지닌 것에서 출발한 건가.

한인미 연산은 여러모로 만화적인 인물인데 황보름별 배우가 현실감을 부여해줬다. 대사가 정말 많고 복잡한데 준비할 시간은 부족하니 우리 집에서 같이 레퍼런스를 보고 연습하곤 했다. 연산이 자기 전공을 잘 알고 재밌어하기 때문에 막힘없이 말을 내뱉는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 방향성을 같이 잡아나갔다.

윤성호 연산의 대사가 다른 캐릭터들의 대사를 합친 것과 다름없어서 정말 힘들었을 거다. 똑똑한 공대생 역할로서 로봇처럼 수행하는 대사들도 잘해냈지만 황보름별 배우의 저력이 드러난 것은 본연의 정서를 표현하는 부분이었다. 레퍼런스만 전달할 것이 아니라 배우를 많이 믿어줘야 한다는 것을 이번 작품을 하면서 많이 배웠다.

- 민학은 자신의 외모를 ‘껍데기’라 칭하며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반복해 이야기한다. 대대로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던 할아버지, 아버지가 벌인 사건과 그들의 가르침으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그간 미디어가 보여준 잘생긴 남자주인공의 설정과 달라 신선했다.

한인미 민학은 김요한 배우에게서 가져온 부분이 많다. 자신이 가진 것에 비해 더 겸손하고, 나아지고자 노력하는 미덕을 잘 녹여내려고 했다.

윤성호 각본을 쓸 때 제일 힘들었던 게 사실 민학 캐릭터 때문이었다. SNS 100만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 모델 전공 남학생과 컴공과 너드 여학생이라는 관계 자체는 재밌었다. 그런데 스토리라인을 만들려면 후반부에 또 다른 아이러니가 필요한데 그걸 설정하는 게 어려웠다. 로맨틱코미디는 시청자의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에 현실에 없는 남성에 관한 판타지를 얼마나 의미 있게 채워주느냐에 따라 작품의 퀄리티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지금 시대 여성들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남성들이 어떤 가치에 복무하고 있는 지를 드러내는 게 로코물의 가치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친구 같은 남자, 차도남, 재벌 3세, 완전무결한 전문직 등 유형을 거쳐왔는데 민학의 경우 무해하고 상식적인 남자라는 설정을 완벽히 소화한 캐릭터처럼 그려내고 싶진 않았다. X(구 트위터)에서 유행하는 말들을 따박따박 내뱉는 것에 불과한 남자 캐릭터를 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자아가 없어 반성을 잘하고, 자신의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갖춰야 할 가치에 관해 계속 질문하는 유형의 인물로 설정했다. 초반엔 도회적이고 인공적인 차도남 스타일을 떠올렸는데, 김요한 배우를 만난 뒤로 그가 지닌 개구쟁이 같은 면모와 털털함이 많이 반영됐다. 후반부에선 학과 통폐합 문제를 두고 학생과 학교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진다. 그 과정에서 민학을 보다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동행하고 싶은 마음이 사람을 노력하게 하는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민학의 변화가 일관성 없게 느껴질 수 있지만 김요한 배우가 유려하게 잘 연결했다.

- 후반부에선 사랑을 이룬 학생들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 판단되는데 무엇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윤성호 민학과 연산이 사귀면서 끝나는 작품은 아니고 이후로 어떻게 사귀는지, 학과 통폐합 문제를 두고 학생들이 어떻게 대항해나가는지가 그려진다. 초반엔 통폐합 문제를 깊게 다룰 계획은 없었는데 지난 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윗선의 독단적 결정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통폐합 문제에 관해서도 송현주 작가가 진지하게 접근해 집필했다. 그렇다고 결말부를 너무 지루하거나 계몽적으로 연출하진 않았고, 새롭게 생겨난 우정과 사랑을 토대로 학생들이 학과의 부당한 행정 조치에 대항해나가는 과정을 재밌게 그리고자 했다.

<제4차 사랑혁명>, 학원물의 클리셰를 벗어나다

한강대 모델학과와 컴공과가 갑작스레 통폐합되면서 작품이 시작된다. 평소 아무 접점이 없던 두 과 학생들은 당황한 채 갈등을 겪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게 된다. 컴공과 수석인 연산(황보름별)은 조별 과제를 위해 모델과 인플루언서 민학(김요한)과 팀을 이룬다.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둘 사이엔 애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제4차 사랑혁명>은 밝고 사랑스러운 대학생들의 통통 튀는 연애담에 머물지 않고 이들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지방대 및 학과 차별, 통폐합, 취업의 현실과 더불어 기후문제, 휠체어를 탄 유리(강신) 캐릭터를 통해 이동권 문제까지 논한다. 각종 사회문제를 날카롭게 포착해 재치있게 바라보는 윤성호, 한인미 감독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15세이상관람가, 총 16부작으로 웨이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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