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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성공한 예능프로그램의 재미 비법, 2025년 예능은 어떤 웃음을 추구했나
이자연 2025-12-05

2025년 예능프로그램은 전반적으로 독창적인 기획이 눈에 띈다. 특히 예능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희귀했던 신선한 소재를 채택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전개를 내세우며 새로운 유형의 웃음을 자아냈다. 지금까지 구성원만 재편하여 새 시즌을 이어가거나 유사 포맷의 게임과 버라이어티를 반복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명확한 소재와 프로그램 컨셉, 개성 있는 연출을 실험했다. 예능의 규모가 커진 것도 한몫했다. 영화, 오리지널 시리즈에 편중됐던 OTT의 예능 제작 투자로 예능프로그램이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고 시청자가 그 안에서 마음껏 웃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특히 콘텐츠 2차 가공 및 편집 능력을 갖춘 1020세대 시청자의 힘을 빌려 밈의 언어로 부흥한 것도 이 흥행의 주요 이유로 꼽힌다. 올해 시청자들은 무엇으로 웃을 수 있었을까. 요즘 예능의 웃음 버튼은 다음과 같다.

친해질수록 좋아, 가까울수록 재미있어

<크라임씬 제로>(넷플릭스)

JTBC와 티빙을 거쳐 넷플릭스를 만난 <크라임씬 제로>는 더 크고 화려해진 규모를 자랑하며 고난도의 추리물을 선보였다. 실내 세트장에 무려 산 하나를 갖다두거나 한강을 그대로 구현하는 등 과몰입을 이끌어낼 장엄한 세계관을 완성한 것이다. <크라임씬>은 오랫동안 충성도 높은 팬덤을 구축해왔고 출연진의 애정도 또한 굳건하다. “크라우드펀딩을 받아 판권을 살까 고민했다”는 박지윤의 말마따나 많은 이들이 <크라임씬>의 생명 연장에 관심을 가졌고 프로그램 제작진과 출연진, 팬덤의 삼각구도는 더욱 끈끈해졌다. <크라임씬 제로>세 번째 에피소드 ‘유흥가 살인사건’에서 출연진 가운데 최고령인 장진 감독이 극 중 가장 어린 ‘장편돌’(27살)을 맡았을 때 화학작용은 더 컸다. 그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오히려 모든 출연진이 장편돌에게 면박을 주거나 압박을 가하면서 보는 이들의 실소를 터뜨리게 한 것이다. 심지어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해야 하는 토론 자리에서 장진 감독은 “제가 추가 설명해도 될까요? 비록 어린 놈이지만…”이라며 스스로를 낮추었고 “애 좀 그만 혼냅시다” “주눅 들었잖아요” 같은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극 중 동갑내기로 설정된 안댄서(안유진)와 장편돌이 클럽에서 춤추던 장면도 <크라임씬 제로>의 관계성이 있었기에 웃음을 자아낸 찰나다.

모두가 아는 일인자의 다른 얼굴

<신인감독 김연경>(MBC)

“어딜 봐? 네가 해야지!” “혜인아, 미안한 게 문제가 아냐. 미안하다 하기 전에 잘 올려.” “미친 거 아냐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여 지금?” “기억을 해, 왜 울었는지를.” ‘올해의 호통’으로 꼽히는 <신인감독 김연경>은 나노 단위로 클립 영상이 퍼져나가면서 대중적 관심과 주목을 이끌었다. 이후 새롭게 편성된 <스파이크 워>또한 사실상 <신인감독 김연경>의 흥행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배구 예능’이라는 새 흐름을 만든 이 프로그램은 순도 높은 실소나 파안대소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세계적인 배구선수가 신인감독의 눈과 근육을 키워나가는 과정이 카타르시스를 자극해 만족의 미소를 짓게 한다. 여전히 황제가 아닌 여제로 불리고, 혼자 살면서 요리를 잘하는지 질문받고, 연애 이야기에 묶여 있는 걸어다니는 한국 배구의 역사 김연경을 해당 프로그램은 낯선 신인감독의 얼굴로, 그러나 누구보다 투지와 욕망에 불타오르는 뜨거운 얼굴로 비추면서 대중이 김연경을 다시 이해할 기회를 준다.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던 걸출한 재능이 어디에나 있던 친근한 얼굴을 만나 또 다른 역사가 된다.

선 넘지 않는 농담은 공감이 된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넷플릭스)

올여름 화제의 물망에 올랐던 넷플릭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이하 <모태솔로>)는 연애가 서툰 모태솔로들의 첫 연애를 돕는 리얼리티 예능이다. 남매의 연애 관계를 관찰하는 <연애남매>, 무술인의 점사와 이들의 실제 연애를 비교하는 <신들린 연애>, 남성간의 로맨스에 집중한 <남의연애>등 연애 프로그램은 이미 그 색깔들이 다채로워진 지 오래지만 <모태솔로>는 살면서 연애를 한번도 해본 적 없다는 출연진의 특이점을 앞세워 메이크오버 조언자인 ‘썸메이커스’라는 특별한 설정을 두었다. 중요한 건 바로 이 조언자들이다. 카더가든, 이은지, 서인국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서툴 수밖에 없는 출연자를 십분 이해하며 최전선에서 가이드하지만, 동시에 시청자 편에서 답답함을 폭발하며 실없는 웃음을 만든다. 특히 카더가든. “(상대방과) 티키타카가 잘된 것 같다”는 일방적인 소감을 전한 상호에게 “뭐가 티키타카냐? 당신이 한 건 티키야” 하는 장면은 일갈이 지닌 시원함 반, 피조언자에 대한 애정 반으로 안전한 웃음을 준다. <모태솔로>는 첫 연애의 유약한 감정을 진솔하게 다루면서도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시트콤적 장면과 고수들의 유연한 농담을 뒤섞어 자기만의 코미디를 만들었다.

승부를 넘어

<저스트 메이크업>(쿠팡플레이)

예능이 ‘악마의 편집’의 주무대처럼 비치던 시절이 있었다. 서바이벌이나 오디션 예능이라면 프로그램 내 공공의 적이 만들어져야만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공로를 인정받는 듯해 보이기도 했다. <저스트 메이크업>은 이와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저스트 메이크업>은 진짜 주목받아야 할 게 무엇인지 분명히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운명적으로 누군가는 반드시 탈락해야만 진전되는 구조이지만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서로의 슬픔을 이해하고 기쁨을 나눠가지며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이런 성향을 두고 ‘슴슴하다, 재미없다, 강단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의 현실이 진짜 생존 싸움이 되어버린 오늘날, 무해한 웃음과 관계망을 찾는 것은 2025년을 사는 인간의 후천적 본능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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