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연속기획 2] 부산영상위원회 아카이브 총서 <부산의 장면들> #2, ‘부산, 영화’, <브로커> 제작기

시작과 끝, 삶의 굽이굽이가 담긴 <브로커>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일본 바깥에서 찍은 두 번째 영화다. 한국의 배우들과 함께 한국의 도시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펼쳐낸 몇장짜리 시놉시스에서 시작된 기획이었다. 평소에 “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 풍경 속에서 인물을 찍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여겨왔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머릿속에 있던 부산의 이미지와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세 배우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탄생한 <브로커>는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부산에서 열고 닫는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브로커>의 부산 촬영기는 디지털 촬영 방식이 뿌리 깊게 정착한 한국영화 촬영 스태프와 다큐멘터리 출신 감독이 만났을 때 벌어진 날들의 기록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인물들이 고귀한 새 생명에게 든든한 가족의 울타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있는 그대로의 공간들

소영(이지은)이 갓난아기를 안고 비가 내리는 골목 계단을 올라 교회 앞에 당도한다. 베이비 박스 앞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는 수진(배두나), 아기를 데리고 딴 궁리를 하는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까지, 모두가 그날 거기에 있었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공간이자 크랭크인 장소는 바로 부산 전포동에 위치한 남부산교회다. 현행법상 베이비 박스는 서울에만 존재하므로 미술팀에서는 교회 외벽에 창문이 뚫려 있는 곳에 창문 대신 박스를 만들어넣었다. 소영이 아이를 두고 간 이후 등장하는 보육시설 공간도 실제 교회 내부의 공간을 활용해 아기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꾸몄다. 세트를 꾸며 찍을 수도 있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현실 공간을 스크린에 담길 원했다.

고레에다 감독이 <브로커>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부산의 이미지는 계단과 바다로 대변되는 곳이다. 이 때문에 고지대에 형성된 마을을 오르는 계단, 멀리 바다가 내다보이는 풍광을 갖춘 곳을 찾아내는 것이 송대찬 프로듀서 이하 제작진의 중요한 미션이었다. 제작진이 부산 지역을 전부 뒤져 찾아낸 남부산교회 맞은편에는 마침 계단 골목이 있었다. 언덕배기에 위치한 베이비 박스를 찾아 소영이 힘겹게 오르는 계단 골목에서 크레인을 동원해 비가 내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라 그 일대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이웃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집집마다 마스크와 세정제 등으로 이뤄진 코로나 키트를 만들어 선물로 드렸다.”(송대찬 프로듀서) 마을버스 전용 정류장을 비롯해 공중전화 부스까지 한 블록 거리에 모두 있었기 때문에 그 일대 전부를 이틀 동안 통제하고 찍어야 하는 일정이었다. 인근 경찰서와 구청 허가는 물론 버스 업체까지 섭외해서 찍어야 했던 난도 높은 촬영이었다.

송대찬 프로듀서는 인물의 서사를 잘 전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세탁소가 결정됐을 때 코인 세탁소를 제외한 부산 내 등록된 모든 세탁소를 전수조사했다. 고레에다 감독이 원하는 공간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는 방법은 모든 공간을 다 들여다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10여곳의 후보지를 다녀본 고레에다 감독은 세탁소라는 일터로서의 공간과 인물들이 거주하는 방, 그리고 부엌이 모두 일직선상에 위치해 있는 곳을 택했다.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아빠 유다이(릴리 프랭키)가 운영하던 철물점의 공간도 굉장히 유사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탁소 공간에는 공교롭게도 최신식 세탁 장비는 물론 재봉틀 같은 오래된 도구도 모두 갖춰져 있었다. 또한 세탁소의 방이 너무 좁아서 촬영감독과 배우들만 들어가서 찍어야 했는데 고레에다 감독은 벽지 색깔도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공간을 찍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동선을 고증하라, 지하철과 영도대교까지

아기를 베이비 박스에 맡겨두고 부산을 떠나려던 소영은 터미널 화장실에서 모유를 버리다가 아기가 눈에 밟혀 발길을 돌린다.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나가려면 사상역에서 내려 서부버스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실제 소영의 동선 역시 고증에 입각해 사상역과 서부버스터미널을 거쳐야 했다. 지하철 운행이 종료된 새벽 시간대의 두어 시간을 허가받아 5컷 정도만 재빨리 찍고 빠져야 하는 촬영이었다. “보조출연자들이 있어야 하니 100여명을 불렀는데 코로나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신고가 들어갔다. 대기 인원을 전부 사방에 흩어지게 했다가 모이게끔 관리도 해야 했던 촬영이었다.”(송대찬 프로듀서)

<브로커>의 촬영은 부산에서 시작해 부산에서 끝냈다. 영도대교 촬영을 끝으로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제작진은 에필로그 형태의 인물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마지막 장면의 촬영지 중 부산임을 인지할 수 있는 장소에서 찍기 위해 영도대교와 다대포해수욕장을 선택했다. 부산 지리를 잘 모르는 관객이 보면 언뜻 공간 인지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부산에서 맺길 바랐다.

관련영화

관련인물

사진제공 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