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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홍콩국제영화제 ‘메이킹 웨이브즈: 홍콩영화의 새로운 물결’ 상영작 리뷰

라스트 송 포 유 久 別重逢

감독 량례언 출연 정이건, 나탈리 쉬, 진탁현 상영시간 110분 등급 전체관람가

과거의 영광으로부터 멀어진 지 오래인 뮤지션 성화(정이건)는 우연히 병원에서 고등학교 친구 만훤을 만난다. 하지만 만훤이 바라본 성화는 그의 기억과 사뭇 다르다. 잔뜩 우울한 얼굴, 알코올중독, 이유를 모르는 패배주의적인 면모까지. 얼마 뒤 만훤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만훤의 딸 썸머(나탈리 쉬)가 불현듯 그를 찾아온다. 어린 딸의 말에 따르면 엄마가 죽기 직전 자신의 유골을 성화와 함께 일본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예정에 없던 여정을 떠나게 된 두 사람. 사실 성화는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들어주던 만훤을 좋아했다. 그는 일종의 프로듀서 같았다. 창작곡의 분위기를 짚어주고, 방향을 잡아주고, 색깔을 말해줬다. 이 과정에서 둘만의 추억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썸머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듯 보인다. SF 판타지와 하이틴이 뒤섞인 <라스트 송 포 유>는 시종일관 아름다운 멜로디와 함께 아련한 로드무비를 그려낸다. 나탈리 쉬의 명랑하고 통통 튀는 연기가 무척 자연스럽고, 어린 성화의 수준급의 기타 연주와 보컬 실력을 뽐내는 진탁현 배우 또한 시선을 사로잡는다. 홍콩의 서정적인 첫사랑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충분하다. /이자연

네 번째 손가락 無名指

감독 공령정 출연 곽부성, 나탈리 쉬 상영시간 90분 등급 전체관람가

한때 잘나가는 스쿼시 챔피언이었지만 지금은 코치 일을 전전하며 은둔 생활을 하는 탕숙인(곽부성)은 척추 희귀병이 있는 딸 치(나탈리 쉬)를 오랫동안 외면해왔다. 죄책감 반, 인정욕구 반. 이전처럼 잘 사는 모습으로 가족 앞에 돌아갈 거라고 마음먹었지만 시간은 무심하게 흐를 뿐이다. 아버지로서의 책임 회피를 비난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질 즈음, 어머니의 병세가 심해지면서 탕숙인은 휠체어에 모든 것을 의지한 딸을 돌보게 된다. 한편 치는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해외 유학을 통해 자신의 꿈을 펼치려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두 부녀의 상봉이 가볍지만은 않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두 사람은 그동안 회피해온 묵은 갈등을 뒤늦게 맞닥뜨리고 날 선 말들로 서로에게 생체기를 낸다. <네 번째 손가락>은 자본주의의 사각지대에서 와해된 가족, 현대인의 감정적 외면, 진정한 가족다움의 의미를 명료하고도 온화한 시선으로 좇아간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딸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나탈리 쉬의 열연이 인상적이다. 치의 고립감과 무망(無望)감을 표현한 절벽 신이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고, 무엇보다 마지막 노래가 드라마의 정서적 한끗을 올린다. /이자연

상하이 블루스 上海之夜

감독 서극 출연 종진도, 실비아 창, 엽천문 상영시간 103분 등급 12세이상관람가

중일전쟁으로 불바다가 된 상하이. 폭격을 피해 달아나던 동국민(종진도)과 서패림(실비아 창)은 길에서 우연히 만나 다리 아래로 피신한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이들은 인파에 묻혀 헤어지게 되고, 10년 후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서극 감독의 <상하이 블루스>는 중일전쟁 직후의 상하이를 무대로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삶과 사랑을 경쾌하고 세련된 리듬으로 풀어낸다. 코미디와 로맨스, 뮤지컬 요소를 결합해 전통적인 장르 구분의 틀을 가볍게 깨뜨린 이 작품은, 이전 세대가 이어온 의리와 복수, 무술의 세계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와 도시 경험이라는 현실적인 서사를 전면에 내세워 실험한다. 색감이 화려하고 인물들이 명랑해 유쾌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지만 그 밑바닥에는 전쟁의 상흔이 깔려 있어 웃음 뒤에 묘한 쓸쓸함이 남는다. 전개 속도가 빠르고 자유롭게 장르를 혼합해 절망을 활력으로 전환하는 서극의 시도는 홍콩이 1980년대 아시아영화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는 과정과도 연결된다. 뉴웨이브 초기의 감각과 장르의 실험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서, 이번 복원판 상영은 그 전환기의 아름다운 영상, 화려한 춤과 노래를 스크린으로 만날 기회다. /최선 영화평론

천장지구 天若有情

감독 진목승 출연 유덕화, 오천련 상영시간 88분 등급 15세이상관람가

삼합회 일을 돕다 경찰에 쫓기게 된 아화(유덕화)는 우연히 지나가던 쥬쥬(오천련)를 인질로 삼는다. 상류층 외동딸 쥬쥬와 거칠게 살아온 아화는 서로에게 이끌려 사랑에 빠진다. 1990년대 초 홍콩 사회는 중국 반환을 앞두고 불안과 열망이 교차하던 시기로, 경제적으로 번영한 가운데 불확실한 미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진목승 감독의 데뷔작인 <천장지구>(1990)는 이러한 시대 정서를 포착함으로써 홍콩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연 작품으로 평가된다. 조직폭력배 청년과 상류층 여대생의 비극적 로맨스는 당시 젊은 세대의 초조한 심리와 불안정한 도시 분위기를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놓는다. 단순해 보이는 사랑 이야기에는 ‘지금, 여기’에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젊은 세대의 어두운 미래와 초조한 모습이 담겨 있다. 홍콩 누아르가 고수해온 총격전과 형제애의 공식에 멜로드라마의 감성을 접목한 새로운 형식의 이 작품은 총성이 난무하는 대신 오토바이와 로맨스를 채워넣어 이후 수많은 영화의 원형이 되었다. 특히 웨딩드레스와 슈트를 입은 두 주인공이 오토바이를 타고 끝을 향해 질주하는 장면은 시공간을 초월해 아름답고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최선 영화평론가

라스트 댄스: 안식의 의식 破地獄

감독 안셀름 모우인 찬 출연 황자화, 허관문 상영시간 127분 등급 15세이상관람가

홍콩에서 개봉한 자국영화 중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화제작으로,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작품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빚더미에 앉은 웨딩플래너 도미닉(황자화)은 여자 친구의 삼촌을 대신해 장례지도사로 일하게 된다. 그는 죽은 이보다 남겨진 이를 위로하는 의식에 중점을 두려 하지만 전통을 고수하는 만사부(허관문)와 사사건건 충돌하며 갈등을 겪는다. 영화는 삶과 죽음, 전통과 변화, 남성과 여성, 부모와 자식 사이에 놓인 ‘지옥문’을 어떻게 깨뜨릴 것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이는 현재 홍콩 사회가 안고 있는 첨예한 문제이기도 하다. 치솟는 집값에 휘청이는 청년세대, 돌봄의 책임을 떠안고 차별받는 여성, 분열하고 단절하는 가족. 영화가 보여주는 균열은 오늘의 홍콩을 비롯해 우리 모두를 압축한 모습이다. 염습 과정과 ‘지옥문 깨기’ 의식을 치르는 장면이 압권이며 제의를 지켜보는 동안 영화가 끌어안은 삶의 난제를 함께 고민하는 경험을 한다. 여성과 젊은 세대를 구조적으로 배제해온 전통 의례는 아름다운 춤사위와 어우러져 대비되며 오늘을 성찰하게 만든다. /최선 영화평론

파파 爸爸

감독 옹자광 출연 유청운, 곡조림, 소문주 상영시간 131분 등급 15세이상관람가

닌위엔(유청운)은 오랫동안 운영해온 식당을 막 타인에게 넘길 참이다. 10대인 그의 아들 밍(소문주)이 아내와 딸을 살해한 탓이다. 밍은 ‘머릿속에서 사람을 죽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한다. 영화는 수사 중인 현장과 TV뉴스를 건조하게 촬영하고 재판의 일부를 보여주는 정도로 사건을 설명하고는 닌위엔의 일상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는 장을 보고 반려묘에게 생선살을 발라주며 식당의 새 주인이 적응할 동안 일을 돕는다. 또한 아들의 면회를 가고 아내와 딸의 장례를 치른다. 낯익은 사물에 얽힌 기억들이 그사이에 문득 끼어든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파파>는 소제목을 중심으로 일상과 회상을 오가며 사건의 기승전결보단 사후를 겪는 닌위엔의 정서를 따라간다. 러닝타임이 반 정도 흐르고 나서부터 영화는 그동안 거리를 두고 촬영했던 밍에게로 초점을 옮긴다. 과거 가정과 학교에서의 일화나 그가 겪던 증세를 보여주며 심리를 짐작해보게 하지만 사건 당시를 비롯해 모호한 지점들을 남긴다. 영화는 섣불리 범죄를 증세와 연결 짓거나 이유를 특정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끔찍한 사건의 잔해에 가해자인 아들과 함께 남겨진 아버지가 애도와 회복을 시도하는 과정을 차분한 리듬으로 그려나간다. /김연우 영화평론가

포 트레일: 60시간 마라톤 香港四徑大步走

감독 로빈 리 상영시간 101분 등급 12세이상관람가

<포 트레일: 60시간 마라톤>은 ‘홍콩 포 트레일 울트라 챌린지’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홍콩 곳곳을 탐험하도록 짜인 네 트레일, 도합 300km를 72시간 안에 완주하는 익스트림스포츠다. 배경은 팬데믹 가운데 열린 2021년 챌린지로, 과거 완주자들만 초대됐다. 영화는 완료한 도전에 다시 뛰어드는 개인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 이들의 달리기를 따라가며 익스트림롱숏으로 홍콩의 경관을 촬영하는 한편, 사전 준비 과정과 사후 인터뷰, 설립자와 스태프 해석, 가족들의 격려 혹은 우려를 교차편집한다. 참가 동기와 목표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바는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스포츠는 빠르게 달려 승리하는 경주보단 지형을 이해하고 신체적, 정신적 상태를 가늠해 페이스를 조절하며 나아가는 모험에 가깝다. 근육통, 복통, 피로, 에스컬레이터에 주저앉거나 졸며 간식을 먹는 행동, 주변의 응원도 그 일부다. 중단은 하나의 선택으로 여겨지고, 60시간 내에 완주한 이들은 ‘위너(winner) 대신 ‘피니셔’(finisher)로 불린다. 영화는 ‘포 트레일’을 홀로 하는 도전이자 함께 완성하는 여정으로 그리며, 최단 기록이 달성되는 순간에서 멈추지 않고 모두 마무리하길 기다려 각자의 이야기를 담는다. /김연우 영화평론가

스턴트맨 武替道

감독 양관요, 양관순 출연 유준겸, 동위 상영시간 114분 등급 15세이상관람가

왕년에 유명했으나 일이 끊긴 지 오래인 무술감독 리썬(동위)과 배달 일과 연기를 병행하는 젊은 스턴트 배우 롱(유준겸)은 베테랑 스턴트 배우의 추도식에서 만나 안면을 튼다. 썬은 동료 감독의 부탁으로 한 영화의 무술감독을 맡게 되고, 롱을 스카우트한다. 썬은 홍콩 액션 무비 전성기에 <영웅본색>을 비롯한 작품들을 작업했던 동위 본인과 표면적으로 겹쳐 보이나 사뭇 다른, 마냥 응원하긴 힘든 인물이다. 그는 완벽한 액션을 위해 다른 것들을 소홀히 한다. 배우의 컨디션이나 촬영 스케줄은 안중에 없고, ‘옛날 방식대로’ 길거리에서 즉흥 액션을 연출하다 사고를 치기도 한다. 딸과의 관계도 서먹하다. 하지만 과거에 멈춰 있다가 동시대에 불시착한 사람처럼 보이던 썬은 롱과 어울리며 적응과 소통을 배운다. 영화는 동위의 액션 기술보단 세월의 드라마가 새겨진 얼굴에 더 관심을 둔다. 롱의 섬세한 관찰력과 의사소통 능력이 썬의 연륜, 완벽주의와 만나 현장에서 시너지를 내듯 유준겸과 동위의 연기는 서로를 감싸며 조화를 이룬다. 교차하는 두 인물의 이야기에 <스턴트맨>이 드리우는 것은 막연한 향수나 부활 판타지보단 한 시대의 홍콩영화에 대한 사려 깊은 헌사에 가깝다. /김연우 영화평론

운명 命案

감독 정바오루이 출연 양락문, 임가동 상영시간 109분 등급 15세이상관람가

무덤 앞에서의 제례 의식이라는 오싹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운명>(2023)의 오프닝은 코믹하다. 한 여자가 땅속에 묻혀 있고, 그 옆으로 점쟁이처럼 보이는 남성이 진지하게 의식을 행하고 있다. 종이옷을 불태우는 행위를 통해 가련한 여자의 운명을 바꾸려는 인물, 하지만 비가 내리면서 그 계획은 틀어진다. 이후 이야기는 피에 대한 갈증을 참지 못하는 어느 배달부 청년에게로 이동한다. 우연히 피로 범벅된 살인 현장을 목격한 후 충동을 참지 못하게 된 남자, 점쟁이는 타고난 그의 불운을 바꾸고 싶어 한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영화 <운명>은 비교적 가벼운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인생의 결정론에 대해 이르는 작품이다. 만일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요소들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 그 길을 어떻게 걸을 것인가. 영화는 홍콩이라는 도시가 가진 시각적 분위기를 이용해서 뻔한 장르적인 통속성을 벗어난다. 비에 젖은 갑갑한 도시, 탈출구 없이 꽉 막힌 일상의 풍경, 여러 가시적 상황들이 인물들의 내면과 맞닿는다. 그런 의미에서 후반부 옥상 이미지는 의미심장해 보인다. 하늘을 향해 열린 안테나의 공간, 이곳은 홍콩이 꿈꾸는 미래로의 도약을 표현하는 듯하다. /이지현 영화평론

내 마음 속의 그대 贖夢

감독 장가휘 출연 장가휘, 유준겸 상영시간 97분 등급 15세이상관람가

심각한 수면 장애를 겪고 있는 택시운전사 초이는 어느 날 정신과 의사인 만을 자신의 차에 태운다. 여지없이 그날도 환각에 취해 위험천만한 곡예 운전을 감행하는 초이,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던 만은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며 그에게 병원으로 찾아올 것을 권한다. 하지만 초이는 그럴 생각이 없다. 어쩌면 평온하지 않은 스스로의 상태를 통해 그는 과거의 자신을 벌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마음 속의 그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트라우마를 갖게 된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심리적인 스릴러물이다. 두기봉의 영화에서 자주 얼굴을 보이던 배우 장가휘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4번째 연출작으로, 이번 영화에서 그는 택시운전사 역으로도 출연한다.

전직 정신과 의사 역으로는 배우 유덕화가 잠시 등장하는데, 그의 특별출연을 계기로 전반부의 몽환적 분위기가 사그라드는 과정이 흥미롭다. 꿈처럼 파편화되어 표현되던 공간이 후반부에 이르러 다소 물리적인 색채를 띤다.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어두운 기억을 심어준 도시가 지닌 과거의 트라우마, 2024년 개봉 당시 홍콩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화제가 된 작품으로 정교한 영상미를 통해 강렬하고 짜임새 있는 심리적 미궁을 표현한다. /이지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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