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컨대 2025년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해다. 처음에는 무난했다. 6월20일 첫 공개 날 한국 넷플릭스에서는 ‘오늘 대한민국의 톱10 영화’ 4위에 머물렀고, 한국이 작품의 주무대로 등장함에도 오히려 해외에서 더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X와 유튜브 쇼츠, 온라인 커뮤니티 등 아이돌 팬덤이 상주하는 온라인 도처로 빠르게 퍼지더니 공개 3일차에 넷플릭스 서비스 국가 31개국에서 일간 순위 1위를 달성했다. 이 정도 성과만으로도 장편애니메이션의 순항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공개 5주차, <케데헌>은 누적시청수 1억회를 넘기며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애니메이션영화’에 이르고 만다. 여전히 불붙은 열기는 멈추지 않았다. <케데헌>의 대표곡 <Golden>이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54개국 1위를 재점령했고, 바로 그다음날 63개국의 지지를 받으며 자체 기록을 경신했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공개 10주차에는 결국 영화, 시리즈를 모두 통합하여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시청된 콘텐츠’ 1위에 올랐다. 다시 말해 넷플릭스의 상징이자 아이콘이 ‘K팝’을 다룬 ‘장편애니메이션’이 되었다는 것이다.
현상적으로 두드러지는 풍경도 있다. 온갖 숏폼 플랫폼에 <케데헌> 챌린지가 쏟아지고 심지어 영국 왕립 공군 군악대 교대식에서 <Golden> 연주가 울려퍼졌다. 호랑이와 까치의 관계를 궁금해하고, 김밥과 설렁탕에 관심을 보이는 전세계적 움직임 속에 가장 강렬하게 눈에 띈 것은 단연 극장 풍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케데헌> 싱어롱 상영을 요청하는 동시에 아카데미 후보작에 들기 위해서는 극장 상영이 조건부로 필요했다. 결국 여러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케데헌>은 북미 한정으로 박스오피스에 올랐다. 그것도 딱 이틀. 그 결과는 가히 역사적이다. 이틀 동안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가 벌어들인 수익은 약 280억원. OTT 오리지널 영화 최초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것이다. 한국 또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싱어롱 상영이 특별 상영될 예정이다. 사람들의 일상과 SNS 콘텐츠 트렌드, 아시아 문화권의 집중도와 K팝 이해도 등 사회적 양상을 변모시킨 <케데헌>의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은 영상산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OTT를 통해 검증된 애니메이션이 극장으로 역유통되는, 지금까지와 다른 수순이 보편화되는 변화가 시작될 수도 있을까. <케데헌>의 열풍 속에 점쳐지는 미래를 이야기했다.
입문자의 폭을 계속해서 넓혀나가는 OTT의 강점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이 유독 유아동에 집중돼 있는 것은 수익 창출의 타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대상, 혹은 성인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개발하더라도 이것을 방영해줄 레거시미디어 내의 기회 자체가 적고 광고의 효율성도 떨어지는 편이다. 그나마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한 재패니메이션이 수요 확증의 가능성을 지녔다. 이 가능성을 비집고 들어간 게 바로 OTT 플랫폼이다. 이를 두고 한창완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텍전공 교수는 OTT와 극장, 애니메이션의 시너지효과를 설명했다. “레거시미디어의 경우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편성표를 짜지만 OTT 구독자는 개인이 자기만의 콘텐츠 포트폴리오를 완성할 수 있어 애니메이션을 영화·드라마와 동일 선상에 두고 선택한다. 대중에게 선택받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애니메이션은 OTT를 만날 때 그 효율성이 높아진다. 다만 제작사나 애니메이터, 감독 입장에서 수익을 환원시킬 수 있는 구조로는 결국 오프라인 배급이 답이다. 여기서 OTT가 충족하지 못한 것을 극장 상영이 보완해준다.”
O4O 관점에서도 OTT 작품의 극장 상영은 의미가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거래하는 게 O2O(Online to Offline)라면, 온라인 거래를 오프라인의 소비 경험으로 전환하는 게 O4O(Online for Offline)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미리 주문해둔 식당 음식을 ‘배달의민족’ 서비스로 건네받는 게 O2O, 앱으로 미리 계산한 식료품을 가게에서 그냥 집어나오는 ‘아마존Go’ 서비스가 O4O다. 온라인에 머무는 고객을 오프라인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 O4O의 가장 큰 핵심이다. 이에 한창완 교수는 OTT와 극장이 O4O 산업의 관계 형태로 상생할 수 있다고 짚어냈다. “미국은 O4O 전략이 한창 진행 중이다. 스크린골프 회사가 오프라인 골프장을 만들고, 온라인 서점이 대형 오프라인 서점을 만들며 그 공간을 직접 경험하도록, 그 기분 좋은 기억으로 간편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측면으로 바라보면 OTT의 좋은 애니메이션을 접한 이들은 또다시 극장에서 관객과 함께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 더구나 <케데헌>은 다함께 노래를 부르는 싱어롱의 특징을 갖고 있기에 이러한 경험 소비에 더 특화돼 있다.” 혼밥, 혼여, 폰포비아 등 관계에 얽매이기보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Z세대에게 극장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서는 실제 그것을 함께 보고 향유하는 교감의 경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OTT는 새로운 입문자의 폭을 계속해서 넓혀나가는 장점이 있다. <퇴마록>를 연출한 김동철 감독은 OTT가 시리즈 단계에서부터 팬덤을 형성해 라포를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극장에 상영된 <케데헌> 사례뿐만 아니라 넷플릭스에서 시리즈가 계속 이어진 <귀멸의 칼날> 또한 OTT를 통해 팬덤을 형성할 기회를 얻었다. 특히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관객수 300만명을 돌파한 것은 팬층이나 오타쿠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까지 사로잡았다는 의미이다. 전세계적 네트워크를 지닌 넷플릭스를 통해 작품에 대한 대중적 친근함, 호기심 등을 점진적으로 높여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귀멸의 칼날>을 즐기는 1020세대는 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흔하다. “학생들에게 <귀멸의 칼날>의 어떤 점이 좋은지 물어보면 규정화된 화면 구성이나 비율에 구애받지 않는 전투 신을 가장 많이 언급한다. 과거에는 원작 만화를 본 세대가 극장판까지 좋아하는 게 일반적인 구조였다면 지금은 애니메이션 시리즈부터 시작하는, 유입의 출발지가 달라졌다. 그 사이에 OTT가 연결 고리가 되고 있다.”(한창완)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김동철 감독은 “OTT의 작품 접근성, 보다 효율적인 글로벌마케팅 등 다양한 장점”을 꼽았지만 동시에 “애니메이션과 극장이 이원화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4DX, 스크린X 등 극장 여건에 맞추어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OTT 플랫폼의 ‘극장 상영 가능성’ 판단에서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일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수석 프로그래머 또한 일본 스튜디오를 예시로 들며 애니메이션의 생존 여부가 관객이나 팬층이 아닌, 플랫폼에 위임되는 것을 우려했다. “넷플릭스가 구원투수인 것은 일면맞다. 실제로 넷플릭스와 어떻게 하면 연결될 수 있는지 물어보는 제작사, 창작자들이 무척 많다. 하지만 이런 이득을 얻는 것은 일본의 몇몇 스튜디오에만 해당된다. 넷플릭스를 만난 <체인소 맨>이 잘되어 제작사 마파 또한 안정을 찾았지만, 시리즈보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주로 고수하던 매드하우스는 대형 플랫폼을 만나지 못해 부진한 성적을 냈다. 스트리밍 기회를 얻지 못한 스튜디오들은 깊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다.”
애니메이션과 극장이 이원화될까 우려
극장 공간을 내세운 영화제 또한 다양한 OTT 플랫폼과 적극적으로 협업 중이다. 이러한 풍경을 마주한 김성일 수석 프로그래머는 “영화제가 OTT 오리지널 작품을 온스크린 형태로 가져오지만 사실상 오프닝 쇼케이스로 전락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기회의 면에서 OTT가 확실히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너무나 많은 시나리오가 넷플릭스로만 향하고 있고 이에 다양성을 넓혀줄 대항마가 없다는 게 안타깝다. 애초 극장이 OTT 스트리밍으로 영향과 타격을 받은 것처럼, 영화제가 종말을 맞게 된다면 그것 또한 넷플릭스의 영향에서 비롯할 것이다.”
동시에 OTT 플랫폼은 새로운 안전망이 되기도 한다. <승리호>는 하나의 시나리오를 두고 영화와 웹툰으로 제작되었다. 원소스 멀티유즈의 시도가 느껴지는 대목이지만 코로나19 이후 극장 상영이 요원했던 만큼 <승리호>는 넷플릭스의 손을 잡았고, 그 덕에 작품 공개, 웹툰 연재까지 순항을 마칠 수 있었다. 많은 이들로부터 작품을 향한 관심을 확인한 뒤 ‘Netflix in CGV’라는 특별 상영이 진행되기도 했다. 수렁에 빠져 치명적인 수익구조를 고민해야 했던 순간 OTT 플랫폼이 하나의 대안책이 된 것이다. OTT 플랫폼의 파도를 더는 거부할 수 없는 시점이다. 무수한 애니메이션은 이를 통해 도움닿기를 할 수 있을까, 혹은 또 다른 굴레에 빠지게 될까. <케데헌>의 역사적인 현상을 통해 지혜롭게 협력하는 체계와 규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