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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과 공감 사이 놓인 디테일의 다리,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송경원 2025-07-10

실감과 공감 사이 놓인 디테일의 다리,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가능성의 씨앗은 언제나 뜻밖의 순간,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 피어난다. <오징어 게임>이 성공할 요건들로 가득한, 보장된 프로젝트였다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성공하기 힘든 요소들만 모아둔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는 기획물이다. K팝 아이돌이 몬스터를 퇴마한다는, 상상하기 힘든 조합이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줄은 아무도, 심지어 배급한 넷플릭스조차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스토리라인이 대단히 참신하거나 기발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외려 적당히 뭉개는 부분도 적지 않고 과하거나 유치한 지점도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적인 비결은 <오징어 게임>과 정반대로 캐릭터를 향해 쌓아올린 디테일에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애초에 문화적 요소를 찬양하거나 널리 알리겠다는 목적으로 기획된 상품이 아니다. 그저 팬심으로, 이미 퍼져 있는 K컬처의 요소를 밀도 높게 재현한 일종의 팬픽 혹은 2차 창작물에 가깝다. 바로 그러한 애정을 기반으로 내부의 시선에서는 조심스러울 수 있는 부분도 외부에서 바라보았을 땐 과감히 차용하여 전시한다. 달리 말하면 문화의 맑은 윗물만 길어올려 확대재생산한 케이스다. 덕분에 이 재기 발랄한 결과물이 한국의 문화적 요소를 다루는 방식은 무척 자유분방하다. 자칫 문화적인 전유로 보일 수 있는 부분에서도 거침이 없는데, 이는 아마도 팬들이 좋아할 수 있는 부분만큼은 제대로 고증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기반하는 듯 보인다. 이러한 확대재생산 사례는 K컬처가 이제 생산지의 인장이 아닌 보편적인 문화 코드로 확장되었음을 증명하는 생생한 증거다.

캐릭터에 실감을 부여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그 캐릭터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미시적인 요소들을 최대한 투입하면 된다. 달리 말해 캐릭터에 질량과 중력을 발생시켜야 한다. 말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은 이만큼 애정과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하는 일도 없다. 그렇게 실체적인 감각을 공명하는 감정으로 잇는 비결은 결국 디테일이다. 블랙핑크, 트와이스, 있지 등 걸그룹에서 영감을 받은 그룹 헌트릭스와 방탄소년단, 스트레이키즈, 빅뱅 등이 연상되는 사자보이즈의 무대는 기본이다. 밝고 화사한 컨셉으로 데뷔했다가 다크한 컨셉으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패턴은 팬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하고, 무대의상의 각종 액세서리나 사인검 등 주인공들의 무기도 한국 전통문화 속 고증에 충실하다. 게다가 남산타워는 기본이고 낙산공원 성곽길, 뚝섬 유원지역 등 우리는 당연해서 놓치기 쉬웠던 공간적인 디테일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기분을 안긴다.

때론 여행자의 시선이기에 더 선명하게 부각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익숙해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하는 시선이라고 해도 좋겠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른바 ‘K’로부터 비롯된 것들이 외부로 확장되어 어떤 방식으로 녹아들었는지,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표로 작동한다. 바야흐로 목적이나 메시지에 묶이지 않는, 즐기는 방식으로의 전환이라 할 만하다. 이제 출처와 근원에 집착하던 단계를 넘어 그것이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머물고 있는지를 확인할 단계다. 결국 공감의 비결은 단순하다. 내가 좋은 것이 상대에게도 좋은 법이고, 그 반대로 마찬가지다. 애초에 K컬처의 경쟁력은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만족의 기준을 상대에 두는 대신 자신에게 두는 것.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문화의 힘. “귀하게 되려는 마음은 누구나 같다. 누구나 스스로 귀한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각하지 못할 뿐이다.” (<맹자 고자 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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