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주제곡은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뭉클함을 불러일으킨다. 우정과 꿈, 청춘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작품의 일부가 되어 생생히 추억할 수 있도록 하는 프루스트 효과를 만든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말할 때 주제곡을 제외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0년대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곡에는 눈여겨볼 만한 경향이 있다. 메이저로 데뷔한 록밴드가 주제곡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재난 3부작 O.S.T로 국내에도 유명한 래드윔프스, 역대 최고의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은혼> 17기 엔딩곡 <サムライハート(Some Like It Hot!!)>(사무라이 하트)와 <하이큐!!>의 주제곡 <Imagination>을 부른 스파이에어 등의 사례가 있다. 이런 경향이 일반화되면서 애니메이션 주제곡과 록밴드의 조합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특히 스파이에어의 주제곡은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사운드와 보컬, 순수를 갈망하는 청춘을 그려내는 가사가 조화를 이루며 듣는 사람들의 가슴속 열정을 끌어올린다. 이번 기획에서는 록밴드가 부른 애니메이션 주제곡이 어떻게 고양감과 뭉클함을 불러오는지 분석하고 6월22일 내한 공연을 한 스파이에어를 직접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때는 2023년. <싱어게인3>에 나온 한 얼굴 없는 가수가 SNS를 뒤흔들었다. 그는 2004년 투니버스에 방영된 <쾌걸 근육맨 2세>의 오프닝곡 <질풍가도>를 부른 유정석으로 그의 무대 영상은 하루 만에 조회수 300만회를 기록했다. 국민 응원곡으로 불리는 <질풍가도>의 인기를 증명한 사건이었다. 빠른 템포와 하드록풍의 기타 리프, 보컬의 소년미 깃든 음색, “한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로 시작하는 가사 등 이 노래의 모든 요소는 가슴을 들끓게 하고 뭉클함을 안긴다. 이 노래와 함께 2000년대 초에 유행한 애니메이션 주제곡들도 마찬가지다. 록 사운드로 열혈의 감흥을 선사한다. <디지몬>의 오프닝곡 <Butterfly>, <원피스>의 오프닝곡 <우리의 꿈>, <이누야샤> 4기의 오프닝곡 <Grip!>, <나루토>의 주제곡 <투지>와 <활주> 등이 그 예다. 최근에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오프닝곡 <제ZERO감> 등 록밴드가 부른 주제곡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처럼 어느덧 흥행하는 애니메이션 주제곡은 곧 록이라는 공식은 자연스러워졌다. 왜 록은 애니메이션 주제곡에 고양감과 뭉클함을 더할까. 과연 그 시작은 어디일까.
록밴드와 애니메이션 주제곡의 만남은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당시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를 필두로 인기리에 연재된 소년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경쟁이 치열해졌다. 제작자는 오프닝곡에서 팬들을 사로잡아야 했다. 1분30초 안에 캐릭터와 세계관, 액션, 연출 등 한 애니메이션의 핵심을 전달하려면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연출과 청춘과 우정, 꿈 등 주제를 담은 노래가 있어야 했다. 당시 유명했던 여러 J-록밴드가 소환된다. 라르크 앙시엘과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 나이트메어는 각각 <강철의 연금술사> <나루토> <데스노트>의 주제곡을 불렀다. 록의 빠른 템포와 사운드는 온갖 난관을 헤쳐나가는 주인공의 감정을 담기에 적절했다. 특히 사비에서 고음으로 솟아오르는 보컬은 저절로 고양감을 불러일으킨다. 이후 록밴드의 애니메이션 주제곡 참여는 일반적인 경향이 되어갔다. 당시 투니버스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주제곡도 이 흐름의 영향을 받았다. <Butterfly>처럼 일본 원곡을 한국어로 번안하기도 했고 <카우보이 비밥>의 <Alone>처럼 한국의 록발라드 감성을 더하기도 했다.
여전히 서브컬처에 머물렀던 애니메이션 주제곡이 대중문화의 일부가 된 것은 2017년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이 개봉한 뒤부터다. 래드윔프스가 부른 주제곡이 한국 음원 차트에 진입했다. 이후 OTT의 부상, 애니메이션 붐, J팝 열풍으로 미세스 그린애플과 스파이에어, 리사, 세카이노 오와리, 요아소비 등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을 부른 록밴드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이중 스파이에어는 지속적으로 내한하고 있으며 최고의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을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 나아가 <봇치 더 록!>처럼 록밴드를 만드는 애니메이션도 유행하고 있다. 이처럼 록밴드와 애니메이션 주제곡의 연결은 긴밀해지고 있다. 아마도 록이 소년 만화의 주인공처럼 정의를 향해 질주하고 싶은 우리에게 잠시나마 그 질주의 감흥을 건네주어서가 아닐까.
추천하는 애니메이션 O.S.T
<은혼> 2기 연장전 오프닝곡 <サクラミツツキ>(벚꽃만월) - 스파이에어
마감이 임박해 일에 전념해야 할 때 최고의 노동요.
<날씨의 아이> 주제곡 <愛にできることはまだあるかい>(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 - 래드윔프스
주제곡은 애니메이션을 완전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누야샤> 4기의 오프닝 <Grip!> - 에브리 리틀 싱
예쁜 가사와 벅차오르는 신시사이저 소리가 별처럼 반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