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할부지>로 지난해 장편영화 데뷔를 치른 심형준 감독이 전주를 찾았다. 총 6차례 상영과 네 차례 관객과의 대화를 소화하며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바쁜 감독이 된 그는 후지필름, 그린피스 인터내셔널, 그리고 매거진 <오보이!>가 공동 제작한 영화 <클리어>의 연출을 맡았다. 전주영화제 후원사로서 3년째 영화를 제작 중인 후지필름 일렉트로닉 이미징 코리아는 “영화제 상영으로만 그치지 않고 오래 기억될 영화”를 만들 적임자로 심형준 감독을 낙점했다. 사진작가 출신으로 후지 카메라를 애용해왔다는 심형준은 “같이 영화 찍어보자. 주제는 자유”라는 회사의 부름에 ‘환경’이라는 주제를 직접 제안했다. 소속사(웨이브엔터테인먼트) 대표이자 환경운동가, 오랜 친구인 줄리안 퀸타르트처럼 그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환경에 대한 의식을 시나브로 쌓아왔다. 비록 “전문가도 아니고 관련 통계를 잘 아는 사람도 아니기에 흔들리기도 하고 실수도 한다”는 그는 그런 혼란과 모순 속에서 <클리어>의 구성과 이야기를 상상했다.
<클리어>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연결된 2부 구조다. 1부에서는 가수 겸 배우 김푸름이 국제 환경 감시선 레인보우워리어호에 승선해 활동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2부에서는 플라스틱을 먹고 사는 외계인들을 만나 그들의 지구 여정을 안내한다. “다른 감독이 연출한 것처럼 문법과 템포가 완전히 다르”지만, 이질적인 두 이야기가 기묘하게 겹치는 순간을 발견하며 하나의 영화로 묶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안녕, 할부지>의 음악 작업을 통해 김푸름과 인연을 맺은 그는, 연기자로서도 훌륭한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10대 아티스트에게 다시 러브콜을 보냈다. 2부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이주영과 함께 “외모도 연기도 평범하지 않고 개성 있는 두 배우를 섭외했다는 것이 가장 잘한 부분 같다”며, “노개런티 수준”으로 프로젝트에 동참한 두 배우에게 감사를 전했다.
관객과의 대화 진행자가 “필름 카메라로 찍었다”고 착각하게 만든 <클리어>의 화면은 업계 정상급 테크니션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검은 수녀들>을 찍고 지금은 김한민 감독의 차기작 준비에 한창이라는 최찬민 촬영감독.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초기작 시절부터 그들의 작품을 작업한 바 있는 박상수 컬러리스트가 넉넉하지 않은 예산에도 흔쾌히 합류했다. “영화에 대한 진심을 많이 설명했다”는 정공법으로 크루를 결성한 심형준 감독은 “조금은 엉뚱하고 조금은 낯설고 뭔가 한국적이지 않은” 미감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밀도 있고 고발적인 다큐들을 통해서 많이 배워왔다. 우리 영화는 좀더 가볍게 볼 수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질문 몇 가지 정도를 던질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는 그가 말한 ‘질문’이란 이런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테이크아웃 커피잔에 미안함을 느끼는 정도. ‘앞으로는 좀 줄여야겠다’ 같은, 그 정도의 질문과 불편함을 드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