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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소되지 못한 슬픔에 대하여, <잡종> 제롬 유 감독
최현수 사진 오계옥 2025-05-16

아무 연고 없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세 가족은 들개를 사냥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유능한 사냥꾼으로 마을의 인정을 받지만 정작 아버지에게는 자신이 죽인 짐승에게서 불안정한 가족의 처지가 겹쳐 보인다. 한국계 캐나다인 제롬 유 감독의 첫 장편 <잡종>은 한국인 디아스포라 가정의 불안함을 그려낸다. 한살 때 캐나다로 이주했던 그였기에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였다. “캐나다에서 한국인으로 살며 겪은 부모와 동료의 기억을 한데 모은 작품이다.” 특히 모국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영화를 상영한 이번 전주영화제는 그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평생을 캐나다에서 살았지만, 마음 한편에는 한국인임을 인정받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한국 관객들에게도 이 가족의 모습이 수용되길 원했다.”

본디 혈통과 결부된 단어인 영화의 제목 <잡종>은 이민자 가족에게는 “야생의 삶과 길들여진 삶 사이에 놓인 선택의 문제”다. “디아스포라 가정은 주류사회에 동화될지 아니면 지금껏 살아온 길을 굳건하게 지킬지 정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하지만 세 가족이 경험한 시련과 고난은 결코 단일한 서사로 모이지 않는다. 이는 “개인마다 다층적이고 사적인 디아스포라의 경험” 때문이다. 따라서 제롬 유 감독은 “연속적인 형식보다는 각 인물의 관점을 투영하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아버지 광선(김재현), 장남 하준(남단우), 막내 하나(진세인)의 이야기로 이뤄진 각자의 챕터는 화면비, 색감, 장르, 심지어 카메라의 동선까지 다르다. “아버지의 화면은 4:3 비율을 사용해 정신적으로 질식된 상태를 드러냈다. 급박한 리듬과 핸드헬드 촬영도 잦았다. 반면 막내의 세상은 무구한 동화적 세계를 그리기 위해 16:9의 풀 프레임을 택했다. 하준은 두 화면비의 중간 지점에서 훨씬 안정적인 숏으로 그의 세계를 담았다.”

아버지가 들개 사냥의 죄의식에 허덕일 동안, 장남은 자신을 이해하는 친구를 만나고, 막내는 주변과 다른 외형에 고민을 품는다. 각자가 마주한 상황은 다르지만, 이 가족을 한데 묶는 정서는 “해소되지 못한 슬픔”이다. 이는 부자가 “유약함을 드러낼 수 없는 지극히 한국적인 남성성”으로 인해 입에 올리지 못했던 감정이자, 막내에겐 “유아적 세계에서 받아들이기에 너무 벅찬 개념”이기도 하다. 서로 제때 꺼내지 못했던 진심은 “삭막한 감옥처럼 어둡고 불안한 집”이 아닌 “따스한 색감으로 그려낸 야생의 피난처인 숲”을 거쳐 “드넓은 수평선으로 이어진 호수를 마주하며” 회복된다. 이 해소의 공간은 제롬 유 감독이 <잡종>을 제작하기로 마음먹은 단 하나의 이미지였다.

최근 캐나다를 떠나 서울에 정착한 제롬 유 감독은 이제야 “아버지의 지독한 외로움을 이해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처음 영화를 만들 때는 내가 이민자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에서 지내면서 새로운 문화양식과 언어 예절을 습득하는 동안 새로 걷는 법을 다시 배우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잡종>을 만들며 드디어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낸 기분”을 느꼈다고. 이제는 새로운 이야기를 향해 눈을 돌릴 차례를 맞은 제롬 유 감독은 밴쿠버 기반의 그래픽노블을 각색한 신작을 준비 중이다. “생계에 허덕이는 고등학생 친구들이 등교 마지막 날 가출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는 모험담이다. 이번엔 지극히 캐나다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