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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옥, 촌철살인의 전사, <호루몽> 이일하 감독
남선우 사진 오계옥 2025-05-16

도쿄 한구석에 박힌 다다미 넉장 반의 단칸방. 이른 아침 텔레비전을 켠 이일하 감독은 한 여자를 마주했다. 혐한 발언에 맞서 눈 하나 깜짝 않고 자기 할 말을 하는 여자는 가난한 유학생의 “움츠러든 삶에 사이다가 터지는 느낌”을 선물했다. ‘헤이트스피치’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의 투쟁기인 <카운터스>를 만들면서 그와 재회한 이일하 감독은 그제야 확신했다. “당신이 주인공인 영화를 꼭 찍어야겠다!” 다짐을 밝히자 뜨거운 화답이 돌아왔다. “네가 찍는 거라면 내 한몸 불살라볼게!” 재일 한국인 활동가 신숙옥은 그렇게 이일하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다큐멘터리이자 올해의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상영작 <호루몽>에 불을 붙였다.

영화는 신숙옥이 자신을 악의적으로 곡해한 극우 시사 프로그램 제작사와 다툰 기록을 중심에 둔다. 감독은 “소송 결과가 안 나오면 영화도 안 끝난다”는 걸 알았다. 다행히 한달간의 일본 로케이션 촬영 기간에 판결이 나왔고, 신숙옥이 통화로 이를 전해 듣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그와 한 공간에 있던 중 격앙된 소리가 들려와 바로 카메라를 잡고 튀어나갔다. 운이 좋았다.” 명예훼손 소송이라는 주요 에피소드를 지탱하는 건 여성 3대를 골자로 한 가족사와 다수의 방송 출연 화면이 증빙하는 개인사다. “가이 리치 감독을 좋아하고, 뮤직비디오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경쾌한 다큐멘터리스트지만 이번 작품에서만큼은 “클래시컬한” 접근을 시도하고 싶었다는 이일하 감독은 이 정보량 많은 영화를 어떻게 관객과 만나게 해야 할지 골몰하다 “몸짓”을 떠올렸다. “음악을 베이스로 장면을 상상하는 습성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이니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무용수들이 3대가 연결되기도 해체되기도 하는 모습을 구현해주기를 원했다.” 바닷가를 누비며 역사의 질곡을 은유하던 카메라가 신숙옥의 얼굴 앞에 멈출 때마다, 인터뷰이로서의 신숙옥은 “듣고 싶은 말을 제때 해주는 촌철살인의 전사로서 감독이 쾌재를 부르게 했다”. 그 호소력은 전주에서도 통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20대 여성들이 신숙옥을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더라. 대한민국에서는 어느 분야에서건 어른을 찾아보기 어렵다. 젊은 여성들이 신숙옥을 강하고 믿음직한 동네 언니처럼 느끼길 바랐다.”

이처럼 이일하 감독은 <울보 권투부> <카운터스> <모어> <청년정치백서-쇼미더저스티스>를 거쳐 <호루몽>에 이르기까지 인간적 매력을 지닌 투사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반사회적 인간들, 한마디로 ‘미친놈’에 매료”되어왔기 때문이다. 드럼과 베이스를 치던 청년 시절 최애 밴드도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Rage Against the Machine)이었다고 한다. 지금 그의 카메라는 누구를 향해 있을까. “특정한 신념이나 관심사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다만 일본에서 인생의 반을 지냈기 때문에 자이니치 친구들과 일본의 정치적 상황을 건드리는 영화를 계속 찍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유의 다큐멘터리를 찍은 적도 있다. 홍보를 위한 영상도 찍는다. 고정해서 생각하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작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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