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그래도, 우리는 계속 사랑하고 연기한다, <그래도, 사랑해.> 김준석 감독
이유채 사진 오계옥 2025-05-16

연극배우 부부이자 28개월 된 아들 하람(김하람)을 둔 준석(김준석)과 소라(손소라)는 요즘 살짝 긴장 상태에 있다. 몇년간 육아를 도맡아온 소라는 배우 복귀를 갈망하고 커리어를 이어나가던 준석은 이번에 들어온 꽤 큰 역할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누가 무대에 설 것인가. 공정하게 부부는 둘만의 오디션을 열어 연기를 더 잘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로 한다. 올해 전주영화제 한국경쟁 배우상 수상작인 <그래도, 사랑해.>는 김준석 감독의 설명대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에 있는 작품이다. 실제 부부인 김준석 감독과 손소라 배우가 각자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등장하고 극 중 갈등 역시 이들의 현실에서 출발한다. 그래서일까. 가족 모두가 행복할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이 생생하면서도 재치와 정감이 넘친다. 무엇보다 이 따뜻함은 카메라에 깊이 밴 연출자의 애정 어린 시선에서 비롯된다. 인터뷰에 앞서 김준석 감독은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앞면에는 신혼집이 있던 동네 이름을 딴 ‘영화사 달골짜기’가, 뒷면에는 부부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일상을 재료 삼아 앞으로도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겠다는 포부가 손끝에서 전해졌다.

- 앞선 관객과의 대화(GV) 자리에 아들 하람이도 함께했다고.

그전에 영화를 같이 봤는데, 아이가 낮잠을 못 잔 상태라 낑낑대는 통에 애를 태웠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자마자 속으로 ‘살았다!’를 외치며 무대에 올라가려는데 하람이가 자기도 마이크 앞에 가고 싶다는 거다. 그래도 어머니와 누나 옆에 앉혀놓았는데 GV 도중 의자에서 들썩들썩하더니 3분의 2쯤 지났을 때 유령처럼 터벅터벅 혼자 무대로 올라오더라. 결국 곁에 와 몇 마디 했다. 돌잔치 때 마이크를 잡아서일까. 아무튼 놀라웠다. (웃음)

- 이번 <그래도, 사랑해.>는 단편 <그래도, 화이팅!>(2021), <그래도, 행복해.>(2022)에 이은 세 번째 ‘그래도 시리즈’ 신작이자 첫 장편 연출작이다. 어떻게 출발했나.

처음에 주변에서 시리즈라고 할 땐 그런 거 아니라고, 힘들어서 더는 못 찍는다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트릴로지가 주는 완결성이 있지. 거기다 마지막이 장편이면… 그럴듯하겠는데? 첫 아이디어는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나왔다. 소라씨와 내가 동시에 캐스팅된 상황에서 연기할 사람을 우리끼리 오디션으로 정하는 이야기였는데 그게 참 재밌었다. 이 얘기가 영화로까지 이어진 건 필름다빈 덕이다. 필름다빈은 앞선 두 단편을 배급해준 곳인데 거기서 처음으로 제작을 시도 중이라며 내 시나리오를 보고 싶다는 거다. 그러니 별수 있나. 그때부터 막 쓰기 시작했다. 이미 3분의 1 정도 쓴 게 있었고, 나머지를 일주일 만에 채웠다.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가면서 촬영감독님, 음향감독님 스태프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데 신기했다. 그전에는 아내와 단둘이서 찍었으니까.

- 전보다 규모가 커지고 선택할 것도 많아진 첫 장편 과정은 어땠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영화 전공자도 아니고 영화 관련 서적을 좀 본 게 다지만 극단에서 10년간 배우와 기획자로 일하며 쌓인 내공을 믿었다. 이번 작품의 컷들이 전반적으로 긴 편인데 연극의 긴 호흡이 자연스레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 첫 번째 오디션 시퀀스로 돌아가보자. 현재 집에서 과거 남양주 카페 데이트 시절을 연기하던 부부는 돌연 그때로 돌아간다. 이 절묘한 시간의 연결은 어떠한 의도였나.

큰 의도는 없었고 실상은 이랬다. 현재 오디션 장면을 쓰는데 가만히 있어 보니 우리가 정말 남양주 카페에 간 적이 있는 거다. 맞네, 맞네 하다가 그럼 한번 그때로 가볼까 싶어서 과거 신을 넣었다. 현재의 방 안에서 하람이가 울어 오디션이 중단되는 장면은 사실 엔지 컷이었다. 그걸 본 동료들이 현실인지 과거인지, 실제이긴 한 건지 모르겠다면서 소름이 돋는다고 평하길래 살리기로 했다.

- 후반부에는 집 마당에서 일종의 공개 오디션이 펼쳐진다. 연극 동료들 앞에서 부부는 떠나려는 여자와 붙잡는 남자를 연기한다. 북받쳐 울음을 터뜨리는 소라, 이어지는 당연하지 게임에서 동료들이 <붙잡고도> 코러스를 하는 순간까지 리얼한데 혹시 우연과 즉흥의 합일까.

현장 애드리브는 거의 없었고 모든 상황은 대본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느껴졌다면 등장인물 모두가 내가 수년간 봐왔던 사람들이다 보니 그들 각자의 말투와 행동을 다 알기 때문일 거다. 이 장면 속 오디션도 우리 부부의 실제 경험담이고.

- 당연하지 게임에서 준석은 “네 연기가 계속 제자리걸음이라는 거 너만 모르지?”라는 물음에 끝까지 “당연하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조금 얄미웠다. (웃음)

그러니 준석은 소라에게 진 거다. 연기도 순발력도 거의 모든 면에 있어서 말이다. 자존심에 아무 말 못하고 서 있는 준석의 뒷모습에 내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하지 게임은 우리가 평소 존댓말을 쓰니까 반말하는 순간이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줄 것 같아 넣었다. 여기서 막판에 소라가 “너 내가 둘째 임신한 거 모르고 있지?”라고 하는데, 두달 전 그 말이… 현실이 됐다. (웃음) 요즘은 정말 영화가 삶이 되고, 다시 삶이 영화가 되는 기분이다.

- 극 중 준석이 동료들에게 “연극을 왜 하시는 거예요?”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이야기하는 사람’을 꿈꿔온 김준석 감독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왜 여전히 이야기를 하고 싶나.

극 중 마리 누나의 말로 내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여기서 누나가 그런다. 연극이 그냥 좋고, 남편이 내가 뭘 쓰고 하는 걸 좋아한다고. 유년 시절 ‘쓰기와 말하기’ 수업 때 내 발표를 듣고 웃던 친구들과 선생님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스스로 창작과 연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 여기며 재미와 꿈을 원동력으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대출금과 육아와 같은 현실이 닥치고 소라씨와 같은 뛰어난 배우와 만나 살면서 여러 고민이 겹쳤다. 일단 돈을 좀 벌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내가 아닌 부족한 내가 무대에 서는 게 맞을까. 온갖 질문들을 이미 이 길을 걷고 있는 동료들에게 묻기 위해 <그래도, 사랑해.>를 만든 것이기도 하다. 여전히 답을 알 수 없지만 소라씨가 해줬던 말을 믿고 가려 한다. “몇번을 물어도 나는 이렇게 굴러가는 삶이 좋아요.”

- 영화사 달골짜기가 준비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귀띔해준다면.

아내의 배우로서의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을 만들자는 건 전제고. 대학로 연극 동료들과 내 삶을 바탕으로 한 16부작 드라마 작업에 돌입했다. ‘그래도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등장인물 중 누군가의 스핀오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야심차게 준비 중인 게 하나 있다. 고조모님께서 사셨던 담양군 오룡리의 옛 초가집에서 극단 시절 내가 기획했던 <무대에서 죽을란다> 공연을 올리는 얘기다. 이건 시작일 뿐, <심청전>과 <구운몽>에 다양한 이야기가 엮이는데, 완성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열심히 미팅을 다니고 있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