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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 여럿이 역사를 바꾼다, <기계의 나라에서> 김옥영 감독
남선우 사진 오계옥 2025-05-16

올해 전주영화제 폐막작 <기계의 나라에서>를 연출한 김옥영 감독은 오랜 시간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고, 다큐멘터리 제작사를 꾸리기도 했지만 일찍이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1979년 시집 <어둠에 갇힌 불빛은 뜨겁다>를 펴내면서 이런 시인의 말을 적었다. “내가 나 자신임을 버릴 수 없으므로 나 자신의 아픔과 부끄러움 또한 끝내 버릴 수 없다.” 영화 <기계의 나라에서>는 그 ‘버릴 수 없음’의 정신이 또 다른 시 세계를 만나 공명한 장소다. 거기엔 네팔에서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자들이 쓴 시가 있다. 그들에게 유독 불친절하게 삐걱거리는 땅을 딛고 살아낸 족적이 찍힌 시들이다. 김옥영 감독은 그들의 일상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한편 시를 낭송하는 장면을 통해 실존의 문학적 재해석을 시도했다. 그들이 현안의 대표성을 띤 인물이기 이전에 고유한 개인으로 읽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 바람은 김옥영 감독이 믿는 다큐멘터리의 존재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

- 2020년 가을 출간된 시집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네팔 이주노동자 시집)를 읽은 후 영화를 구상했다고.

내게 이주노동자들은 추상적인 집단이었다. 사건 사고 뉴스로만 접하던 대상화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시집을 읽으니 내가 그들을 보는 동안 그들도 우리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통렬하게 다가왔다. 그 충격과 각성을 다큐멘터리로 드러내고 싶었다.

- 딜립, 수닐, 지번을 주인공 삼은 과정이 궁금하다.

시집에 시를 실은 35명을 모두 만날 수는 없겠지만 복수의 주인공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했다. 한 사람만을 다룰 경우 특정인의 ‘휴먼 스토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면서 하나의 현상에 따른 목소리들을 다루려면 서너명을 주인공 삼는 게 적당하다. 먼저 시집을 번역한 모헌 까르끼, 이기주 부부를 스태프로 영입해 저자들과의 연결을 부탁했다. 마음에 드는 시를 쓴 열명을 골랐고, 그들이 한국에 어떻게 왔는지, 네팔에서 직업은 뭐였는지 등 개인의 역사를 묻는 설문조사를 거쳐 체류 지역, 일터, 조건 등이 다른 세 사람을 추렸다.

- 세분도 폐막식에서 영화를 보나.

다들 일하는 사람들이라 자유롭지 못하다. 수닐은 일이 있어 못 오고, 딜립은 휴가 기간이라 네팔에 가 있고, 지번만 참석하게 됐다. 모헌 까르끼, 이기주 부부도 오기로 했다.

- 그들이 쓴 시구가 한글로 삽입되었다. 손으로 쓴 글씨처럼 보이는 폰트를 선택했는데.

고민이 많았다. 시가 네팔어로 쓰였으니 네팔어 자막이 필요할 듯했다. 하지만 영화제 상영을 위해 들어가는 영어 자막에 네팔어까지 들어가면 관객이 읽기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논의 끝에 한국 사회에 이들의 이야기를 알리겠다는 동기를 반영하는 의미로 네팔어 대신 한국어 자막을 선택했고, 그들이 시를 직접 썼다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필기체 폰트를 골랐다.

- 시 낭송 장면을 와이드숏으로 찍었다. 출연자에게 앉거나 기대지 말고 서서 낭송해달라고 요청한 것인가.

그렇다. 우리가 그들을 보는 동안 그들도 우리를 보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출연자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러면서 서 있는 동안 몸이 흔들리는 것도 보이는 전신 와이드숏을 사용했다. 네팔 촬영을 맡은 감독들에게도 그렇게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 지번이 한국 통신원으로 보도하는 네팔인 노동자들의 부고가 라디오 뉴스처럼 간헐적으로 영화를 채운다. 스트레이트 기사의 문장이 시구와 대비되며 더욱 참담하게 들린다.

세 주인공은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기에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 점을 보완하고자 네팔로 귀국한 노동자들도 촬영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어가 함축적으로 현실을 전달하기에 부고로 직접적이고도 건조하게 비판을 가하고 싶었다. 영화에 이렇게 두 가지 트랙이 형성돼 있다. 개성을 가진 개인들의 정서가 드러나는 트랙과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슬픔을 사회적 사건으로 조명하는 트랙. 두 트랙이 합쳐지는 클라이맥스처럼 등장하는 것이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찍은 영상이다.

- 인물들이 식사하는 일상적 장면들도 문제적이다. 딜립은 늘 서서 밥을 먹고, 수닐은 한국인 동료들의 네팔에 대한 무지를 견딘다. 은근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들이 경험하는 미세 차별을 보여줬다.

인물을 취재할 때 그가 가진 모든 걸 조사한다. 그의 방에서 가장 손때 묻은 책이 무엇인지까지 말이다. 그러면서 딜립의 습관, 수닐과 동료들의 대화 패턴도 알게 되었다. 딜립이 가족들과 식사할 때는 결코 서서 먹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그들에게 식사는 휴식이 아닌 해치워야 할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이런 일상적 장면은 한번 보여주면 관객이 의식하지 못할 것 같아 각기 다른 시점으로 여러 번 찍어 두번씩 등장시켰다.

- 영화를 보며 한명의 노동자로서 공감을, 그리고 한국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극장을 나선 관객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계엄 이후 한강 작가의 질문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현재의 우리가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를 아는 사람들이 지난해 12월3일 밤 국회 앞으로 달려나가지 않았나. 그래서 후배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다큐멘터리의 궁극의 목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단 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결국 관객이 모르던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고용허가제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생각이 달라지면 선택이 달라지고, 그렇게 모인 개인들의 행위가 시대와 역사를 바꿔왔다. 위대한 사람 한명이 아닌 평범한 사람 여럿이 역사를 바꾼다는 사실을 KBS 영상자료실에서 깨달았다.

- 그렇다면 최근 자신을 설득한 다큐멘터리 한편은.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본 <림보 안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무렵이 배경이다.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피난을 간 감독이 그 집에서 가족들을 촬영했다. 간혹 포성이 들릴 뿐 전쟁 장면은 하나도 없다. 집이라는 좁은 공간에서도 전쟁의 현장을 느끼게 한 작품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디론가 가기를 거부하는 아버지의 표정이 큰 의미를 시사한다. 이렇게 현실을 관객에게 일깨워주는 자기만의 방법론을 가진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다큐멘터리도 현실을 질료로 한 감독의 예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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