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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첫 현장, 첫 직장에서 고심하는 현재와 미래, <3학년 2학기> 이란희 감독
조현나 사진 최성열 2024-10-25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 창우(유이하)는 친구 우재(양지운)와 중소기업 공장 실습을 나간다. 현장에 적응 못한 우재는 실습을 그만둔 반면 창우는 군말 없이 버틴다. 일을 배우던 창우는 안전설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공장에서 몇 차례 사고 위기를 겪는다. 실습생과 선임들의 요청에도 공장의 환경은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또 다른 실습생인 성민(김성국), 다혜(김소완)와 가까워진 뒤로 창우는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전작 <휴가>에서 해고 노동자들에게 주목했던 이란희 감독은 신작 <3학년 2학기>에서 직업계고 현장 실습생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창우는 실습 당사자이자 관찰자로서 현장을 바라보는 눈이 되어준다. 실습생들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보게 하는 <3학년 2학기>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받으며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 KBS독립영화상, 송원 시민평론가상, 올해의 배우상(유이하)을 수상했다.

-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4개 상을 수상했다. 축하드린다.

감사하다. 영화제에서 관객들과 총 3차례 관객과의 대화를 치렀다. 그때 실제로 직업계고 학생들, 선생님, 아이의 직업계고 입학을 앞둔 부모님들이 참석하셔서 자기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상영이 끝난 뒤에도 따로 찾아오셔서 자신이 직업계고를 졸업했다며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신 분들이 계셨다. 덕분에 영화제가 처음인 배우들이 본인이 참여한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읽히고 어떤 감흥을 주는지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모든 시간이 정말 따뜻했다. 시나리오를 쓰며 취재할 때 직업계고를 다니고 졸업한 이후의 경험들을 솔직하게 나눠주신 분들, 같이 영화를 만든 스태프들과 배우들, <3학년 2학기>를 초대하고 상을 안겨주신 부산국제영화제측과 심사위원분들에게 감사드린다.

- <3학년 2학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작품인가.

1990년대 중반에 극단에서 연극을 했었는데 그때 1988년 산재로 사망한 17살 노동자 문송면군 이야기를 듣고 연극을 만들자고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하지 못했다. 이후로 몇몇 직업계 고등학교에 연극 수업을 하러 갔다가 그 친구들 이야기를 메모해두곤 했다. 한창 <휴가> 시나리오를 쓸 때 실습생들의 사고 소식을 뉴스로 자주 접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첫 장편영화에 넣고 싶어 <휴가>에도 잠시 등장시켰고, 이후 사고를 당한 실습생 부모님들을 몇번 뵈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영화는 실습생들의 이야기를 다뤄야겠다고 결심했다.

- 사고, 사망 소식을 주로 다룬 뉴스와 여타 콘텐츠들과는 다르게 직업계고 실습생들의 일상을 조명한다.

뉴스에서는 주로 죽거나 다친 실습생들의 소식을 전하지만 영화에선 그들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현장에서 어떻게 적응해나가는지를 묘사해보려 했다. 현장 실습생들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콘텐츠에서 아이들은 피해자이고 상황은 어른들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당사자인 아이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걸 보고 싶다고 직업계고 출신의 노동조합원들이 말해준 적이 있었고 그 의견을 꼭 반영하고 싶었다.

- 현장의 실태를 파악하는 게 중요했겠다. 관련 취재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2021년부터 여러 자료를 참고했고 본격적인 인터뷰는 2022년 2월부터 시작해 2024년 1월까지 이어졌다. 직업계고 학생들, 직업계고 출신의 대학생, 직장인, 노조원, 교육청 관계자 등 직업계고 안팎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를 쓸 때 인터뷰를 많이 참고하는 편이라 이 취재 과정이 무척 중요했다.

- 창우는 표현이 많지 않고 대부분의 일을 혼자 감내한다. 그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아무래도 대단한 재능이 있거나 타고난 배경이 좋거나 일찍부터 꿈을 향해 도전하고 노력을 많이 하는 등 특출난 점이 있는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특출나지 않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기반이 되어 돌아간다. 그런데도 공부를 못하고 노력을 하지 않고 끈기가 없다는 이유로 평범한 사람들이 벌을 받듯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싶었다.

- 창우 외에도 여러 유형의 실습생들이 등장한다. 에이스인 성민, 일찌감치 실습을 포기한 우재와 총무과 다혜, 그 밖에도 송 대리(김아석), 한 주임(이현지)과 같이 창우와 같은 루트를 거쳤던 것으로 예상되는 상사들이 공장에 모여 있다. 이러한 관계는 어떻게 구상했나.

나 역시 처음에는 아이들은 열심히 하지만 이들이 속한 시스템이 안전하지 않고 학생들을 험하게 대하는 어른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곳의 상황을 접하고 보니 다양한 실습생이 있었다. 이들이 ‘피해자’라는 측면만 생각했지 ‘아이들’이란 점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학교에선 꾀병도 부리고 결석도 할 수 있지만 회사는 그렇지 않다.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문화 차이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재처럼 현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튕겨나가는 아이, 한편으론 성민이처럼 일을 금방 배우고 충성도가 높은 아이를 같이 배치했다. 특히 성민이의 경우는 창우 같은 아이들이 스스로와 비교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을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여학생은 공장에 실습을 잘 나오지 않지만 한명 정도 있었으면 싶었고,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전부 받고 퇴사하려는 실습생의 사례를 떠올리며 다혜 캐릭터를 넣었다. 한 주임은 창우가 일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면서도 매 순간 아이들을 대변하는 비현실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다. 송 대리는 거칠긴 해도 현장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애를 쓴다. 그 밖에 실습생들이 ‘꼰대’들의 아재 개그에 반응하는 장면을 넣고 싶어서 30대 초반 정도 되는 젊은 상사도 한명 등장시켰다.

- 실습을 포기한 아이들이 어떤 길을 걷게 되는지도 다양하게 보여준다.

직업계고 선생님들의 말씀에 따르면 학교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직업계고 학생 중 30% 정도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30% 정도는 실습을 나가는데 실습을 하더라도 도중에 그만두는 경우가 40% 정도 되고 실습 기간을 견뎌 취업에 성공했을지라도 1년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럼 그 아이들은 어디로 가냐고 물었더니 상당수가 오토바이 배달을 한다더라. 그러니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의 선택이 직업계고 졸업생들에게는 그렇게 낯설고 이상한 선택이 아닌 것이다.

- 노동자들의 현실, 혹은 이들의 노동 현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있나.

극단에서 활동할 때 노동자들을 소재로 한 연극을 많이 올렸다. 그래서 관심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노동자 서사를 다루기 위해 영화를 시작한 건 아니다. 그런데 우연히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 이야기를 접하면서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고 연이어 10대 노동자들의 삶도 다루게 됐다. 돌이켜보면 자연스럽게 관심과 작업이 이어져온 것 같다.

- 관객들이 <3학년 2학기>를 어떻게 봐줬으면 하나.

누구에게나 첫 현장, 첫 직장이 있다. 상사가 주는 스트레스도 있고 때로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열등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니 단순히 실습생들에 관한 사회적 이슈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사회로 첫발을 내딛었던 각자의 경험을 생각하며 봐주길 바란다. 그리고 거리에서 교복차림의 고등학생을 보면 다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취업을 준비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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