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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리고 남은 사람들에 대하여, <아침바다 갈매기는> 박이웅 감독
조현나 사진 백종헌 2024-10-25

데뷔작 <불도저에 탄 소녀>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박이웅 감독이 두 번째 장편 <아침바다 갈매기는>으로 다시 부산을 찾았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선장 영국(윤주상)이 젊은 선원 용수(박종환)가 바다에 빠졌다는 실종 신고를 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떠난 이의 빈자리를 받아들이고 메우는 건 온전히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지방 소멸, 인구수 저하, 빈부격차 등의 문제를 고루 다루면서도 끝까지 질주하는 힘을 잃지 않는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 뉴 커런츠상, KB 뉴 커런츠 관객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 두 번째 장편으로 세개의 상을 손에 쥐었다. 축하한다.

처음엔 ‘수상하면 좋겠다’라는 바람 정도였는데 막상 수상대에 오르니 영화제에서 얼마나 큰 상을 받는지 새삼 실감했다. 앞으로 진중하게 처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상이 주는 위압감이 있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제작자이자 PD인 안병래 대표가 사비까지 보태 진행할 정도로 믿음을 준 덕분에 완성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에 출연한 윤주상, 양희경 배우는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셨는데 배우가 아닌 관객으로서 관람했다고, 전에 없는 경험이었다는 감사한 감상을 전해주셨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0여편의 영화를 봤고 여러모로 많이 배웠다. 타협하지 않고 영화적인 것을 더 대담하게 탐구하고, 관객을 놀라게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졌다. 큰 에너지를 얻고 돌아와 차기작 시나리오를 열심히 손보고 있는 중이다.

-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시기상 <불도저에 탄 소녀>보다 먼저 구상한 영화라고.

정확히는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전문사 시절 졸업 작품으로 계획하고 쓴 작품이다. 당시 제작 여건이 여의치 않아 <불도저에 탄 소녀>를 만든 뒤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처음엔 쇠락해가는 작은 시골 마을의 소동을 떠올렸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지방 소멸, 인구수 저하, 빈부격차 같은 문제들이 서서히 부각됐고 내가 다루려던 주제가 단순히 시골에 한정된 건 아닐 수 있겠다 싶어 서사를 확장시켰다.

- 영화에서 묘사한 어촌과 인물들의 모습이 무척 현실적이다.

캐릭터엔 장르적인 재미를 반영하더라도 캐릭터가 놓이는 장소는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곳을 설정하길 좋아한다. 동해안 일대 마을을 여러 차례 훑으면서 어촌의 상황과 분위기를 극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어촌 사람들이 처음 극본을 쓸 때보다 요즘 더 뒤엉켜 지내는데 그러면서도 서로를 투명인간처럼 대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어촌은 선장과 선장의 가족, 그리고 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되는데, 연세가 있는 마을 어른들과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일은 하면서도 대화가 부재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며 기능적으로 존재하던 이주노동자 영란(카작) 역에 큰 변화를 가했다.

- 어촌 사람들에게 주목해서인지 떠난 이가 아닌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보통은 동기를 갖고 나아가는 인물에 주목하기 마련이지만 쇠락해가는 어촌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왜 이곳에 남아 있는지, 왜 떠나지 못하는지에 관해 의문이 생겼다. 이미 누군가 떠났다면 그 자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관해 더 깊게 다뤄보고 싶었다.

- 윤주상, 양희경 등 베테랑 배우들이 영화의 중심을 잡아준다.

배우를 섭외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건 의외로 체력이었다.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포획하는 일이 무척 고되기 때문이다. 윤주상 배우는 다행히 체력이 굉장히 좋으셔서 몸의 움직임이 남달랐다. 판례는 사고를 감내하고 살아가는 인물이라 다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는데, 다행히 양희경 배우님이 판례를 온전히 이해해주셨다. 두 배우 모두 워낙 베테랑이라 특정 신이나 연기에 관해 정확한 디렉션만 있으면 그대로 구현해주셨다.

- 행방이 묘연한 용수 역엔 박종환 배우를, 용수의 아내 영란 역에는 카작 배우를 캐스팅했다.

용수는 시나리오상으론 속내를 잘 모르겠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던 캐릭터다. 그런데 박종환 배우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 이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줬다. 맡은 인물을 명확히 파악한 배우가 현장에 있으면 연출자로서도 중심이 잡힌다. 그래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 카작 배우는 섭외에 공을 들였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베트남 배우 중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 웹드라마 오디션을 본 배우 중 카작을 만나게 됐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안녕하세요’ 인사 외에는 한국어를 할 줄 몰랐는데 언어 감각이 뛰어나서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대사를 열심히 외워 촬영에 임했다. 막상 현장에선 원래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처럼 느껴져 무척 놀랐다.

- 바다 위에서 촬영한 경험은 어땠나. 장면들의 파도의 움직임만 봐도 쉽지 않아 보였는데.

상업영화 촬영감독들이 내게 공통적으로 말해준 게 있다. 절대 바다에 배를 띄우지 마라. (웃음) 너무 힘들고 시도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모두가 정말 강력하게 말렸지만 나는 바다에 배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프로덕션상의 이유가 아니라 그러지 않으면 원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용수가 바다에 빠지는 장면을 찍었을 때 그날따라 배가 거의 뒤집어질 정도로 파도가 심했다. 나와 스태프들 모두 멀미를 하며 촬영했는데, 찍힌 장면을 보면서는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로 보람찼다.

- 바다에서의 촬영분이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인가.

모든 장면이 소중하지만, 편집까지 마치고 난 뒤 애정이 많이 가는 장면은 오프닝 신이다. 강릉에 엄청난 강풍이 불었던 날, 지금 바다를 찍어두면 나중에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촬영감독님께 따로 요청드렸었다. 그러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그 컷을 발견한 거다. 갈매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데 강한 바람으로 인해 결국 마지막엔 날아가는 방향을 틀고 만다. 그 새를 보면서 내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떠올렸다. 다들 역경을 딛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걸 이겨내기란 그리 녹록지 않다. 이 컷으로 영화를 시작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다시금 편집이 시작됐다고 느꼈다. 어찌 보면 제일 공을 덜 들였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신이다.

- 자식을 떠나보내거나 부모와 연을 끊고 살아가는 등 여러 가족의 모습이 영화에 등장한다. 감독 본인이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침바다 갈매기는>이 내가 처음 쓴 장편이기 때문에 살면서 내가 봐온 가족이란 관계의 여러 모습을 복잡다단하게 반영했다. 그렇지만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아무리 겪어도 가족의 모습엔 내가 모르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래도 이야기해보자면 적어도 가족은 악의를 갖고 서로를 대하는 관계는 아닌 듯하다. 어쩌면 거기서 비극이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관객들이 영화를 재밌게 봐주셨으면 한다. 극장을 나선 뒤에도 영화에 담긴 여러 주제들에 관해 생각해주신다면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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