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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이들의 성장통에는 돈이 연관돼 있을 수밖에 없다’, <수령인> 김지은 작가, 유범상 감독
남지우 사진 백종헌 2024-10-11

오늘도 아빠에게 맞은 서연(강신)은 걷고 또 걷는다. 폭력을 부추기는 새엄마와 방관하는 형제(백선호)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뿐. 동네 슈퍼에서 복권 한장을 구매한 서연은 곧장 1등 당첨을 확인함과 동시에 미성년자의 복권 구매는 불법이며 당첨 역시 무효라는 경고문을 읽는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살길을 찾아야 한다. <수령인>은 어두운 과거를 안고 고등학교에 재입학한 스무살 이든(조준영), 미치도록 돈이 필요한 동급생 은혁(노종현), 못나디못난 부모들과 극악무도한 사채업자들이 주인 없는 당첨금 50억원의 수령인이 되고자 서연을 쫓아 달리고 또 달린다.

- 두 시간 분량의 장편영화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 2부작 드라마로 기획한 계기는.

김지은 첫 시작은 서울예대 극작과 1학년 때 받은 과제였다. 아이러니가 들어간 로그라인 다섯개를 만들어보라는 과제였다. ‘복권 1등 당첨자가 미성년자라서 탈 수 없는 돈이 있다’라는 아이러니를 써냈다. 이 문장을 묵혀놨다가 2학년 때 단막극 쓰기 과제에 적용해보려니 단막극으로는 분량이 넘치더라. 당시 방송사별 극본 공모전 분량을 확인하고 8부작까지 제출이 가능한 O’PEN(오펜)에 지원했다. 30분씩 잘라서 8부작, 60분 기준 4부작으로 구성했고 8부작 이상의 미니시리즈로 편성된다면 필요할 인물들도 미리 만들어놓는 등 분량마다 내용도 조금씩 다르게 구성해뒀다. 겨울방학 동안 작업에 속도를 내 3학년 때 당선되었고, 최종적으로 2부작으로 결정됐다.

유범상 ‘미성년자가 복권에 당첨됐는데 수령하지 못한다’라는 로그라인이 주는 훅(hook)이 좋았다. 훅이 좋아도 작가마다 지문과 대사를 쓰는 역량이 부족할 수 있는데 이 각본은 분량이 넘칠 만큼 꼼꼼한 지문에 유려한 대사까지 돋보였다.

- 네 청소년(서연, 서준, 이든, 은혁)과 주위를 맴도는 어른들이 복권 당첨금을 노리는 피카레스크 구성의 이야기다. 등장인물이 많지만 그들이 가진 동기와 행동이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정확하게 굴러가는 쾌감이 있다.

김지은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돌려본 결과다. 미성년자 주인공이 쉽게 복권을 탈 수 없도록 일단 부모가 빌런이어야 했다. 서연이 가정폭력 피해자라는 설정을 한 후 엄마도 의지할 수 없는 새엄마라는 설정까지 넣었다. 거기다가 괴롭히는 남자 형제가 있으면 더 현실적이겠다 싶었다. 자연재해 같은 우연적인 사건보다는 인물이 직접 개입해서 에피소드를 만드는 게 효과적이라 배웠다. 그래서 주인공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을 만들어내며 이야기를 확장했다. 그렇게 은혁과 이든 캐릭터가 탄생했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며 돈이 간절하게 필요한 은혁이 서연의 조력자인지 빌런인지 시청자를 헷갈리게 하고 싶었다. 모두가 돈이 필요한 와중에 서연을 도와주는 남자주인공 이든까지 돈이 필요하면 안될 것 같았다. 결국 로맨스밖에 답이 없더라. (웃음)

유범상 가정폭력이나 징역살이 등 실제 청소년들에게는 가혹한 세계관인 터라 이 설정값을 그대로 쓰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있었다. 다행히 <수령인>의 장르성을 OCN에서 알아봐줘서 <수령인> 편성을 강력하게 원했다. 보통 tvN에서 방영하는 다른 오펜 작품들과 채널을 분리했을 때 올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 여성 피해자의 복수극으로 여배우가 돋보이는 작업이다. 청소년과 성인 연기자 모두 욕심을 냈을 것 같은데 연기 경험이 없는 신인배우를 캐스팅했다.

유범상 주인공 네명 중 우뚝 서 있는 서연 역에 인지도가 있는 배우가 오면 시선의 응집 혹은 분산 모두에 실패할 것 같았다. 배경이나 전작이 영향을 주지 않을 배우를 고용하고 싶었던 이유다. 그렇게 발굴한 강신 배우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성악을 전공해 강단 있으면서도 신인답게 정제되지 않은 발성과 연기를 선보였다. 아이의 불안정한 느낌을 보는 사람과 함께 느끼고 싶어서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롱숏과 정면 타이틀을 과감하게 인용했다.

- 어스름한 동네 골목, 복도식 아파트, 바닷가 마을을 바라보는 정자, 항구 등 특기할 만한 장소가 많다. 이렇게 배경을 칠하니 하이스트 무비이자 누아르라는 색깔이 선명해졌다.

유범상 6월 한달 동안 진도와 목포에서 촬영했다. 제작비가 적은 단막극에서 올로케이션을 진행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데 진도군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장소를 물색하면서 마음에 드는 미장센을 발견할 때마다 작가님이 그에 맞는 대본으로 바로바로 수정해주었다.

- 10월13일과 20일에 OCN에서 방영된다. 관람 포인트를 소개한다면.

김지은 우리 드라마는 1화보다 2화가 더 재밌다. (웃음) 아이들의 성장통에는 원하든 원치 않든 돈이 연관돼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독립하고 성장하기까지 돈이 얼마나 큰 장애물이 될지, 그 결핍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유범상 복권 당첨금을 누가 차지하게 될지를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는 알아서 몰아쳐준다. 네 사람이 아픔을 극복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 지켜봐주시기를 바란다.

작업 시 나의 필수템

김지은 오펜 공모전 당선 상금을 ‘수령’해서 산 맥(데스크톱컴퓨터). 침대에서 일어나면 바로 보이는 곳에 설치해두었다. 이 기기가 얼마나 오래갈진 모르겠지만(웃음) 초심을 되 새기며 오래오래 쓰겠다.

유범상 콘티 노트. 현장에서 배역에 깊게 몰입한 배우들과 미술팀의 미장센을 보면 마음이 요동치면서 기존 콘티와는 180도 다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그렇게 정신을 잃을 것 같을 때면 나만의 비밀 초심 노트를 다시 한번 펼쳐본다.

나를 자극한 다른 작품

김지은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의 “밥은 먹고 다니냐?”는 이제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문장이 됐다. 배우의 애드리브에서 탄생한 대사라 들었다. 작가는 쓸 수 없는 대사라는 점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대사라는 점에서 나를 자극한다.

유범상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의 대사 “힘들다. 모두가 힘들다”가 기억난다. 이 뻔한 대사를 용기 있게 내뱉을 수 있게 하는 각본 전체의 빌드업도 대단했다. 직관적이면서 도 많은 뜻을 담고 있어 한방 얻어맞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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