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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상현실 속 미스터리와 현실 속 미스터리가 나란히, <아들이 죽었다> 이수진 작가, 나지현 감독
정재현 사진 백종헌 2024-10-11

대권 잠룡의 아들이자 천만 영화를 찍은 배우 태환(장승조)은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태환은 언제나 라이벌 배우 재우(박성훈)를 향한 열등감에 시달린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밥 먹듯 진출하는 감독의 신작 ‘아들이 죽었다’에 재우 대신 캐스팅된 태환은 촬영 전 의문의 범죄에 휘말리고, 사건을 담당하는 차 검사(이설)로부터 법무부가 기밀로 개발 중인 가상현실 수사 프로그램에 데이터를 제공할 시 공소 취하를 고려하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태환은 1999년과 2004년의 가상현실, 2024년의 영화 촬영장 현실 모두에서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를 연기한다.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에서 점차 혼란을 느끼는 태환은 그곳이 어디든 죽을 운명의 아들을 살려보려 처절한 싸움을 시작한다.

- 머신러닝과 같은 생성 AI에 배우의 얼굴과 연기력을 입혀 다방면에 활용한다는 게 드라마의 설정이다. 최근 미디어 업계의 동향 중 가장 뜨거운 이슈를 이야기에 들여왔는데, 이같은 시의적 소재를 떠올린 배경이 궁금하다.

이수진 결말에 등장하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떠올리며 집필을 시작했다. 터널이 다른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라 그런지 새로운 세계로 이야기를 도약시킬 방법이 고민되더라. 스토리라인에 추력을 주기 위해 SF 장르를 가져왔다. 다만 SF적 설정은 현실과 동떨어진 요소가 많다 보니 이 이야기를 좀더 현실에 발붙이게 하는 수단이 필요했다. 생성 AI라는 시의적절한 소재가 여기에 붙었다.

나지현 결말의 이미지에서 출발해서 그런지 정해진 결말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는 이야기가 무척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야기의 힘을 잘 안배하며 작중 SF적 상상력을 얼마나 시청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지가 관건이었다.

- <아들이 죽었다> 속 태환을 검사의 명령대로 아버지를 연기하는 배우로 봐야 할지, 태환이 위치한 가상현실을 그 자체의 독립된 작품으로 봐야 할지 명확한 렌즈를 제공하지 않는 연출을 택했다. 시청자가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간 태환을 바라보는 관점을 어떻게 세우면 좋을까.

나지현 이 질문은 ‘시청자가 태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와도 연관된 논의다. 태환은 호감을 느끼기 어려운 인물형이다. 밉상이며 저 잘난 맛에 사는 배우 아닌가. (웃음) 하지만 그런 이에게도 공감할 만한 구석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장승조 배우와도 캐릭터의 근간을 유지하며 가상현실 안팎에서 시청자의 납득을 끌어낼 요소를 함께 고민했다.

이수진 태환이 선악 중 한 가치를 명확하게 대표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그 선을 타는 일이 주요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시청자가 느끼는 혼동이 곧 태환이 느끼는 혼동과 통한다.

- 반면 가상현실 밖에서 이야기를 주도하는, 이설 배우가 맡은 차 검사는 결말 직전까지 캐릭터에 관한 명확한 정보가 집요할 정도로 주어지지 않는다. 배우 입장에서도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지현 태환과 가상현실 밖에서 끝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차 검사의 정체를 시청자들이 끝까지 궁금해하길 바랐다. 사건이 전개될수록 태환과 차 검사의 역학 관계가 계속 변한다. 가상현실 속을 살아가는 태환을 보는 차 검사의 리액션만으로 극의 무드를 조성하고 또 전달하려 애썼다.

이수진 가상현실 속 미스터리와 실제 현실 속 미스터리가 나란히 나아가는 이야기라 자칫 중심을 잃기 쉬운 플롯이었다. 이때 차 검사가 서사에 긴장을 부여하면 태환의 이야기에도 서스펜스가 생기고, 시청자 또한 차 검사라는 안내자를 거쳐 작품의 구조를 쉽게 따라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 기본적으로 규모가 큰 이야기다. 거대한 세트가 필요하고 CG와 특수분장을 동원해야 하는 장면도 많다. 예산과 규모가 한정된 단막극 안에서 이야기 혹은 비주얼의 스케일을 어디까지 펼칠지에 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었을 텐데.

이수진 나는 예산 걱정 없이 자유롭게 집필했다. (웃음)

나지현 태환이 가상현실로 진입하는 실험실을 제외하곤 전부 실외 촬영이었다. 오히려 가상현실을 현실처럼 만드는 데 큰 주안점을 두었다. 가상현실 속에서 태환이 아들 수찬과 함께 사는 집도 실제 가옥이다. 가상현실이라고 하면 미래적 디자인을 생각할 수 있는데, 오히려 우리 작품은 과거로 돌아가니 예산 감축도 자연히 할 수 있었다. 한정된 예산 내에서 미술과 촬영이 얼마나 설득력을 소구할 수 있을지 선택과 집중을 반복했다.

- 작품의 결말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이야기하진 못하지만 놀라우리만치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마무리다.

이수진 작품을 쓰면서도 이 결말이 온당한지가 내내 재고했다. 시청자들이 마음을 주는 한 캐릭터의 말로가 징벌 아니면 용서인 순간 정해진 결말로 향하는 이야기의 주제가 변형되고, 작품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퇴색될 것 같았다. 결말을 내리면서 나 역시 기분이 마냥 통쾌하지만은 않았다.

나지현 인터뷰 초반 언급한 것처럼 <아들이 죽었다>는 결말이 무척 중요한 이야기다. 누군가 몰랐던 과오를 깨닫고 이를 만회하려 잘못을 고백하지만, 죄목을 뒤늦게 밝힌 사람의 죄가 쉽게 사해지진 않는다. 시청자가 처벌의 결말을 원한다고 보지도 않았다. 캐릭터에 면죄부를 부여하진 않되 그에게 끝까지 이입할 수 있는 요소를 더해 죄에 직면한 사람이 보일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구현하고자 했다.

작업 시 나의 필수템

이수진 디카페인 커피. 카페인이 잘 안 받는 몸이라 커피를 못 마신다. 하지만 글을 쓸 때 커피를 못 마셔도 각성을 하고 싶다. 그럴 때 플라세보효과처럼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든다.

나지현 아이패드. 촬영 현장에서 끝없이 이야기를 수정, 보완할 때 대본의 흐름을 파악하고 변동 사항을 기록하기 용이한 디바이스다.

나를 자극한 다른 작품

이수진 드라마 <눈이 부시게>(2019). 젊은 혜자(한지민)가 술에 취해 “나는 내가 애틋하거든”이라고 속내를 털어놓는 대사가 있다. 스스로가 후져 속상하지만 그만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복합성을 대사 한줄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나지현 <>(2021)과 <듄: 파트2>(2024)에 등장하는 베네 게서리트의 기도문을 좋아한다.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두려움은 정신을 죽인다”라는 문장을 되뇌며 나를 향한 불신을 불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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