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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영화 연속기획❸] 구조를 흔들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말할 수 없다 - <해야 할 일> 리뷰와 박홍준 감독 인터뷰
정재현 2024-09-26

<씨네21>은 지난 한달간 연속기획을 통해 주목할 만한 한국의 독립영화를 소개해왔다. 연속기획의 종착역은 영화 <해야 할 일>이다. <이삿날> <만끽연가> 등의 단편영화로 지역영화공동체에서 주목받은 박홍준 감독은 본인의 조선소 인사팀 근무 경력을 반영해 <해야 할 일>의 시나리오를 썼다. 이후 <해야 할 일>은 제작사 명필름이 운영하는 영화제작 시스템인 명필름랩에서 2년간 기획·개발을 거쳤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수많은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해야 할 일>의 미덕을 정리한 리뷰와 박홍준 감독과의 대화를 전한다. 한편 <해야 할 일>은 개봉 전 전국 11개의 독립예술영화관 순회상영을 통해 지역 관객들과 적극적인 만남을 주도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 안팎으로 노동영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 중인 <해야 할 일>이 걸어온 길과 이를 든든히 뒷받침한 제작사 명필름의 행보를 정리해보았다. 독립영화를 꾸준히 제작해온 심재명, 이은 명필름 공동대표의 2024년 한국 독립영화 배급 현황에 대한 진단도 함께 덧붙인다.

준희(장성범)는 조선업 기업인 한양중공업의 입사 4년차 대리다. 이전 근무 부서에서 동료들로부터 신임을 얻었던 준희는 2016년 말 사내 인사팀으로 발령받는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한양중공업은 채권단으로부터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을 요구받고, 준희는 새 부서에 적응할 새도 없이 구조조정 업무에 투입된다. 준희는 이전 부서에서 믿고 따르던 동료들의 이름이 포함된 명단에서 희망퇴직자와 정리해고자를 구분하고, 해고 기준을 정한 후 인사팀과 사측의 구미에 맞게 선출된 근로자 대표와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며, 윗선의 입맛에 따라 해고자 명단을 조정하는 일에도 눈감아야 한다. 타인의 노동권을 서슴지 않고 제한해야 하는 준희는 매일 심적 고통 속에 살지만, 준희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이 업무는 회사에 계약된 노동자로서 ‘해야 할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들이 준희에게 건네는 위로는 철저히 고용주의 논리를 따른다. “네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다.” “회사 입장에서 사안을 생각해주길 바란다.”

노동 인권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주로 억울하게 권리를 박탈당한 노동자들의 쟁의를 그려왔다. <해야 할 일>은 그간의 노동영화와 달리 그 반대편에 서서 이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자들에게 렌즈를 들이댄다. 노동영화가 노측이 아닌 사측으로 시점을 전환한 것은 위험이 따르는 선택이다. 분명 부당한 일을 집행하는 이들도 서사의 주체가 될 권리가 있지만, 이때 필요한 것은 묘사의 방식에 얼마만큼 숙고를 반영했는지 따져보는 일이다. 다행히 영화는 인사팀 직원의 행위를 타락한 개인의 행위로 치부하지 않는다. 그보다 영화는 이들을 고장내는 체제를 적시하는 데 주력한다. 노동자는 유독한 시스템에 순응할 수밖에 없고, 자본주의 논리 안에 머무는 한 끝내 부당한 시스템의 일부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서사에 녹여내는 재현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사팀 내 유일한 여성 직원인 경연(장리우)의 존재가 더욱 눈에 밟힌다. 영화 속 조선소는 성차별에 의한 권력관계의 불균형이 대수롭지 않은 곳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애초에 진급이 어렵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위한 근무 평정 내역에서 감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추측건대 인사팀 유일의 여성 직원인 손경연 대리는 이동우 차장(서석규)보다도 근무 연수는 길지만 직급이 낮다. 불합리한 처우가 누적돼 울적한 경연이 어느 날 상냥한 리액션을 보이지 않자 동우는 무심결에 “본인도 구조조정 명단에 포함되나?”라고 말한다. 스치듯 지나가는 대사이지만 여성 근로자는 언제든 정리의 대상이 쉽게 될 수 있음을, 여성들이 겪는 대우는 철저히 남의 일이라 인지하는 남성중심적 업계의 메커니즘이 정확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한양중공업의 남성 직원들은 구조적 성차별을 동조하고 묵인하는 차별주의자인가. 영화는 앞서 말한 대로 이들을 악독한 개인으로 그리지도 않고, 그렇다 하여 이들의 무지를 애써 변호하려 들지도 않는다. 다만 이들은 차별적인 시스템하에서 겨우 제 앞가림을 하며 허덕이는 사람들이다. 영화 말미, 구조조정은 회장님의 안위를 이유로 한순간에 일단락된다. 구조조정이 끝났음을 알리는 벽보를 사내 게시판에 부착한 준희와 동우는 사무실로 복귀하고, 조선소가 위치한 바다 위로 동이 튼다. 새날은 밝지만, 이들은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체제 안에 갇혀 출근해야 한다. 조직 안에 머무는 한 이들은 앞으로도 숱한 구조조정의 집행자가 될 것이다. 영화는 마냥 희망을 담보할 수 없는 가혹한 결말을 통해 끝까지 유독한 체제와 비윤리적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는 개인을 직시하길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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