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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추천작 리뷰 ③
유선아 2024-09-25

<1980 사북>

박봉남/한국/2024년/124분/한국경쟁

내레이터는 형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강원도 정선의 사북을 방문한다. 동양 최대의 민영 탄광으로 알려졌던 동원탄좌가 위치한 사북은 1980년 당시 3천명이 넘는 광부와 그 가족의 생활 터전이었다. 매해 수백명의 광부가 사망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사측과 어용노조를 향한 광부들의 갈등이 고조되던 때, 노조 선거에서 지부장 교체와 임금협상에 실패하자 사북 사건 첫날의 기억이 시작된다. 광부들의 시위와 경찰과의 무력 충돌 이후 평범한 광부와 그 아내의 삶은 더이상 평범할 수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어른이 된 내레이터는 사북에 살았던 이웃 어른이자 항쟁의 생존자를 차례로 찾아간다. <1980 사북>은 살아남은 자와 그 가족의 증언으로 지난날의 기억을 서로 더듬으며 오래된 사진과 필름, 사료, 문건과 함께 다시 쓰인다. 사북 사건 당시를 떠올리는 경찰과 광부, 그 가족은 피로 물들었던 끔찍한 폭력, 고문, 인격 말살의 현장을 멍든 가슴으로 말한다. 어떤 역사를 함께한 자들이 지닌 그때와 같은 쓰라린 마음과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린 지금의 삶은 그들이 바라던 세상과 이상하리만치 멀어져 있어 비통하다.

<추락하는 하늘> The Falling Sky

에릭 로샤, 가브리엘라 카르네이로 다 쿤하/브라질, 이탈리아/2024년/109분/국제경쟁

아마존의 야노마미 공동체 사람들은 장례 의식인 레아후를 준비 중이다. 지난 몇년간 너무 많은 이를 떠나보냈다. 이는 채굴과 철도 공사로 숲과 강이 오염됐고 외지인으로부터 온 질병이 퍼졌기 때문이다. 숲을 지킬 것을 약속한 샤먼의 목소리는 점차 분노로 향한다. 이곳에는 죽은 자를 화장하는 풍습이 있어 저마다 모닥불을 피우고 망자의 재와 섞어 먹을 바나나를 따서 껍질을 벗긴다. 카메라는 야노마미 사람들을 보여주지만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다. 밤이면 불가에 둘러앉아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고, 낮에는 들판을 가로질러 어딘가로 향하는 <추락하는 하늘>의 장면은 시간의 흐름과 무관한 것만 같다. 기계문명과 거리를 둔 야노마미 사람들이 무전기로 소통하는 사운드는 자주 렌즈가 향해 있는 시선과도 어긋난다. 이들은 때로 짙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어 목소리만 전하기도 한다. 조각난 과거의 기억처럼 흩어져 있는 야노마미 공동체의 현재는 외지인인 감독의 시선에서 환각인 듯 꿈인 듯 그려진다. 원시와 자연의 편에 선 이들을 목격하는 동안에 기술과 자본을 신봉하는 문명에 선 우리는 처절할 만큼 이방인이 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점령 도시> Occupied City

스티브 맥퀸/네덜란드, 영국, 미국/2023년/266분/에세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어느 장소를 카메라가 비추면 내레이션은 곧 주소, 날짜, 인물의 이름을 호명한다. 스크린에 비치는 공간에는 나치 점령 시절 유대인의 사연이 유령처럼 자리하고 있다. <점령 도시>의 카메라가 방문하는 암스테르담의 수많은 장소만큼이나 많은 곳이 이미 철거되어버렸다고 내레이션은 선언한다. 그러나 역사와 기억, 희생된 사람들의 운명조차도 철거된 장소와 함께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카메라는 이와 동시에 팬데믹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일상적인 일상을 담는다. 4시간30분에 달하는 집요하고 끈질긴 이 관찰 기록 영상은 단순한 나열처럼 보일 수 있지만 묘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스티브 맥퀸은 지금의 공간을 시각적 이미지로 보여주는 동시에 과거의 역사를 발화하며 인식의 층위에서 현재와 과거를 오버랩한다. 귀에 들려오는 언어와 눈으로 목격하는 영상의 기호가 서로 일치할 때면 과거가 현대적 장면으로 재생되는 것 같은 희귀한 착란효과마저 느껴진다. <점령 도시>에서 장소란 과거와 현재, 언어와 이미지가 여러 겹으로 덧대어져 만들어진 한폭의 풍경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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