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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트콤은 웃음을 주기 위해 모든 사력을 다해야 하는 장르”, <거침없이 하이킥!> 송재정 작가
이자연 사진 백종헌 2024-09-13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 첫화에는 28살 우주비행사가 된 신지와 민용의 아들 준이(서경석)가 등장한다. 2006년 쏘아올린 아리랑위성의 잔해를 만난 그는 다음처럼 그해를 기억한다. “대한민국의 2006년은 노무현 대통령 5년 임기의 후반 무렵으로 격동의 한해였다. 줄기세포 조작이 일어났고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됐으며 성인 오락실 사태로 전국이 들끓었다. 북한이 마침내 핵실험까지 감행했던, 그리고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끌던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한 좌절의 한해였고 그 격동과 좌절의 2006년 여름. 난 서울 흑석동에서 태어났다.” 삼대가 함께 살아가는 <하이킥!>은 어수선한 2000년대 사회상을 배경으로 인간의 일상적이고 복잡다단한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한시적인 유행일 줄 알았던 <하이킥!>의 동심원은 여전히 그 파이를 넓히는 중이다. 유행어와 밈, 유튜브 5분 순삭 요약본을 통해 작품이 방영되던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세대까지 합류하면서 오랜 시차가 무색하게 동시대성을 얻는다. <하이킥!>의 어떤 정서가 사람들을 이끌고 있을까.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을 건너 <하이킥!>을 완성한 송재정 작가와 함께 노스탤지어의 근원을 더듬거려 살폈다.

- 20~30분간의 짧은 에피소드가 평일 저녁마다 방영되던 시트콤의 매력이 지금은 ‘제작 환경의 변화’라는 이유로 기피되고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 시트콤이 제작될 수 있었던 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하이킥!>이 방영되었던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돌아보면 당시 신인배우의 등용문은 시트콤이었다. 지금처럼 아이돌 양성이 체계적이지 않던 시절이어서 연예인이 되고 싶다면 시트콤에 출연해 경력을 쌓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현재 대스타로 떠오른 많은 배우들도 시트콤을 통해 데뷔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많은 연예인 지망생이 아이돌 오디션을 찾고 가수로서 적당한 연차가 쌓이면 드라마에 도전하는 과정이 대세가 되었다. 작품에 걸맞은 많은 신인배우를 확보하기 어려운 것부터가 시트콤이 제작되기 힘든 이유 아닐까.

- 시트콤은 매일 좌충우돌하며 이상한 일이 펼쳐진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최상의 비일상이 드러나는데 이 많은 에피소드를 어떻게 꾸리나.

<하이킥!>은 주 5회 방송이었기 때문에 다섯명의 작가가 매주 1편씩 집필했다. 다섯편의 대본이 나오면 내가 각 회차를 수정하고 드라마의 흐름이 이어지도록 총괄하는 역할을 했다. 대본은 따로 쓰지만 다섯개의 대본에 관한 최종 시놉시스 회의는 감독과 작가가 모두 모여 논의했다. 특히 에피소드 아이디어는 회의실에 모여 소재가 정해질 때까지 계속 의견을 던지는 방식이었는데 밤샘이 정말 흔했다. 많은 작가가 둘러앉아 자신의 가족, 친구, 지인의 재미난 썰을 끝없이 풀어냈다. 작가 지인의 이야기가 원동력이라 할 수 있겠다. (웃음)

- 3대가 함께 살아가는 준하네 대가족. 1인 가구가 보편적인 지금은 정말 요원한 풍경이지만, 2006년 당시에도 핵가족이 흔했기에 아주 보편적인 가족 형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하이킥!>에서 대가족을 바탕으로 둔 이유는 무엇인가.

핵가족이 흔했지만 대가족이 드문 시대는 아니었다. 대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희로애락을 다루는 건 김병욱 감독 사단이라 불린 우리 팀의 정체성과 마찬가지였다. <순풍산부인과>부터 <하이킥!> 시리즈까지 우리 팀이 가장 잘하는 이야기를 선택한 것이다. <하이킥!> 주인공을 고등학생으로 설정한 만큼 완전 신인만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신인들을 받쳐줄 중견배우의 역할도 무척 중요해졌는데 이순재, 나문희 선생님의 열연이 작품의 안정적인 나무 뿌리가 됐다. 이 과정을 지켜본 신인 연기자들도 자연스레 배우로서 책임감과 열정을 몸소 배울 수 있었다. 배우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이끌어냈다. 어른의 모습을 보며 아이가 자라나 사회를 알게 되듯 대가족의 장점이 <하이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 최근 콘텐츠 트렌드는 가족주의나 로맨스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구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듯하다. 20년이 흐르는 동안 송재정 작가가 체감한 변화가 있다면.

어느 시대든 무언가가 너무 오랫동안 주류로 자리하면 그것을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지게 마련이다. 가족주의나 로맨스를 벗어나려는 흐름도 그것들이 주 장르로 오래 이어진 끝에 나온 변화다. 내가 처음 시트콤을 시작한 이유는 당시 시트콤이 굉장히 새로운 장르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순풍산부인과>가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되지만 그때에는 미국에서 갓 들어온 아주 신선하고 새로운 장르였다. 그 이후로 10여년간 시트콤이 방송 흐름을 지배했고, 드라마 계보에서는 <파리의 연인> 이후 로맨스가 대세로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 이 주류에 반하는 시도들이 이어지면서 수사물, 판타지물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로맨스나 가족주의로부터 벗어난 콘텐츠를 갈구하는 것은 전통적인 구조로부터 벗어나는 걸 진정한 자유로 느껴서라기보다, 주류로부터 대안을 찾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작용한 결과다. 지금사람들이 다시 <하이킥!>을 본다면 그것 또한 지금의 대세를 바꾸고 싶어 하는 열망의 증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집에 있는 아빠와 일 잘하는 엄마. 가정을 지키고 싶은 아빠와 유학 가고 싶어 이혼하자는 엄마. 연년생이지만 같은 학년으로 학교에 입학한 형제. 전형적인 가족 이야기를 다루지만 상당히 파격적인 설정이다. <하이킥!>이 지닌 가족의 일탈성을 현재 어떻게 바라보나.

꿈보다 해몽이 더 멋진 질문 같은데. (웃음) 시트콤은 웃음을 주기 위해 모든 사력을 다해야 하는 장르다. 우리는 그저 재미에 충실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모든 이야기의 목적이 웃음이었기에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다양한 설정을 비틀고 완성했을 뿐이다. 그 결과 백수 아빠와 잘나가는 엄마, 이혼하고도 못 헤어지는 부부, 전교 1등과 전교 꼴찌 형제의 설정이 나왔다.

- <하이킥!>은 기본적으로 휴머니즘, 드라마로 구성돼 있지만 중요한 스릴러 코어를 지니고 있다. 간첩으로 쫓기는 유미네 가족 이야기가 당시 코미디로만 받아들여지던 시트콤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었나. 무엇보다 이 형사-개성댁-유미 아빠가 3파전을 벌이는 에피소드는 영화적 구성을 지니지만 일상적인 에피소드 사이에 이질적이지 않도록 조화와 균형을 신경 쓴 게 돋보인다.

당시 내가 장편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던 때라 시트콤에 스릴러 장르를 접목해보고 싶은 욕심이 컸다. 또 그때 <위기의 주부들>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이웃들 사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룬 블랙코미디인데 이 작품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시트콤에 드라마적 요소를 도입한다는 게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몇배는 더 힘들었다. 다시 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웃음) 극 전반에 코미디를 유지하는 동시에 긴장감을 곳곳에 뿌리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 ‘문희의 봄’, ‘어렵게 이직했지만 그마저도 실직한 준하의 축하 파티’, ‘어버이날과 에릭 클랩턴의 원더풀 투나잇’, ‘감기 걸린 신지가 민용을 부르던 밤’ 등 <하이킥!>은 인간적인 감정을 주요하게 보여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해미 형부의 제안으로 지인의 회사에 입사하게 된 준하가 세차 심부름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손을 잡고 데려오는 순재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고백하자면 <하이킥!>을 만든 지 20여년이 되어가고, 그 이후로 재방을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전반적으로 기억이 많이 흐릿하다. <하이킥!>뿐만 아니라 내가 쓴 작품이 방송되고 난 뒤에는 되돌아보지 않는 편이다. 어쩌다 채널을 돌리다 마주쳐도 얼른 돌려버린다. 시청자에게는 추억이겠지만 내게는 내 글의 허술함, 치기 어린 시절로 보여서 얼굴이 금세 뜨거워진다. (웃음)

- <하이킥!> 방영 당시 이민용-서민정 VS 이윤호-서민정 러브라인 구도의 신경전도 뜨거웠다. 팬들이 각 커플의 분량을 비교하면서 각축을 벌인 일화도 유명하다. <하이킥!>의 로맨스가 대중에게 명중할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멜로(민용-민정)와 로맨틱코미디(윤호-민정)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점 아닐까. 신인배우였던 정일우의 신선한 매력도 굉장히 큰 파장을 주었던 것 같다. 또 서 선생이라는 캐릭터가 시트콤 초반부터 잘 구축되어서 어떤 남자와 있어도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았던 것이 인기 요인이라 생각한다. 평범한 여자선생님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이혼남 체육 선생, 공부 못하는 남학생까지. 잘난 것도 없고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녀가 서로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애태우며 전전긍긍하는 과정이 시청자에게 현실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다.

- 20년이 지났으니 말해보자. 둘 중 어떤 커플을 지지했나. (웃음)

대본을 통해 시청자에게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납득시켜야 하는 입장에서 현실적인 측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삼촌과 연애하던 여자가 그의 조카와 연결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웃음) 그때의 나는 민용-민정이 헤어지고 윤호와도 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내가 비극을 좋아한다. 양쪽 모두 새드 엔딩으로 가길 원했다.

- <하이킥!>이 이목을 끈 또 다른 요소는 자유로운 크레딧 표기다. 제리뽈록하이머, 방방거사, 스텐레스 김… 기존 이름 석자가 얌전히 올라오던 방식과 다르게 표기된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들과 연출팀이 시트콤을 거의 10년 이상 해온 사람들이라 또 같은 이름으로 크레딧을 채우는 게 싫었다. 시청자들이 지겹다고 느낄까 우려도 되고. 새로움을 주기 위해 익명을 택했다.

- 송재정 작가는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의 작품을 통해 국내 시트콤의 역사를 세워왔다. 시트콤에 정통해온 지난 시간들이 <나인: 아홉번의 시간여행> <더블유> <유미의 세포들> 등을 구성할 때 어떤 힘을 주었다고 보나.

시트콤은 신인배우뿐만 아니라 신인작가의 등용문이기도 하다. 작품이 최소 6개월에서 수년간 이어지는 게 현재 시즌제와 유사한 형식에 가깝고, 편당 분량도 25~30분으로 짧은 편이다. 보통 집단창작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작가들이 데뷔를 하고 그 안에서 실전 경험을 통해 자기만의 노하우를 쌓는다. 막내 작가가 어느덧 메인 작가가 되고, 매주 마감을 통해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근육을 키워낸다. 배우와 감독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경험은 작가로서 드라마를 쓸 때 마감을 지키는 성실함과 쉽게 지치지 않는 근성, 많은 에피소드를 계속 만드는 지구력을 완성해준다. 시트콤은 장르로서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가치가 있지만 드라마 산업에서 기반을 튼튼하게 마련해주는 베이스캠프와 같다.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유미의 세포들>을 작업할 때에도 공동집필 체제로 시트콤처럼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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