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콘서트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콘서트’가 아닌 ‘VR’이다. 기존의 공연 실황 영화와 달리 VR을 위해 새로 찍은 콘텐츠를 실물로 마주한 것 같은 가상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어메이즈VR은 2021년 미국 아티스트 메건 더 스탤리언을 시작으로 VR 콘서트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플랫폼 기업이다. K팝 그룹 중에서는 에스파(<링팝 더 퍼스트 브이알콘서트 에스파>)와 엑소 카이(<링팝: 더 브이알콘서트 카이>)가 이곳에서 VR 콘서트 영화를 내놓았다. 7월31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개봉하는 <하이퍼포커스>는 컨셉과 기획이 독특하기로 정평난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첫 VR 콘서트 영화다. VR의 체험적 속성이 K팝 산업의 비주얼 스토리텔링에 주는 시너지 효과는 물론 VR 기술의 도약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이승준 어메이즈VR 대표와 VFX 슈퍼바이저를 맡은 김홍찬 감독에게 <하이퍼포커스>의 제작 과정에 대해 들었다.
영화보다 10배 많은 CG 작업량
네모 프레임을 기본으로 하는 2D 영화는 포커스를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CG 작업량을 줄일 수 있다. VR 영화는 초당 프레임이 60FPS로 영화보다 2.5배 정도 많고 8K로 캡처하기 때문에 4K 영화보다 4배의 이미지셋이 필요하다. 즉, 러닝타임 100분짜리 영화와 10분짜리 VR 영화의 CG 작업량이 같다. 이승준 어메이즈VR 대표는 “VR 콘서트 영화는 제너럴하게 어필하는 <어벤져스> 시리즈와 달리 팬덤 대상의 서비스다. 다양한 결과물을 보여줘야 했다”고 말한다. 매년 꾸준히 작업 규모를 늘려나간 결과 랜더링 속도는 220배 정도 빨라졌다. 기존엔 15분짜리 MTS 영상을 만드는 데 총 1년 정도 소요됐다면 지금은 40분 정도 되는 영상 을 두세달 안에 제작할 수 있다. 이번 <하이퍼포커스>는 하이퍼리얼 9K+ 실사 촬영 기술을 도입해 12K 해상도로 구현됐다. 컴퍼지팅(크로마키 촬영 영상에 필요한 요소들을 합성하여 실제처럼 보정하고 편집하는 것)쪽은 AI 기술이 대체해가고 있는 중이다. 이승준 대표는 “처음에는 AI 기술을 그린스크린에서 촬영한 영상에서 녹색 부분을 빼는 작업에만 쓰다가 최근엔 디오니징에도 도입했다”며 기술의 발전을 들려줬다. 그렇게 단순 작업은 AI 기술이 맡고 인력은 좀더 크리에이티브한 영역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게끔 하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반짝이는 크롬 재질 액세서리, 녹색 스타일링은 적합하지 않아
VR 콘서트 영화는 기본적으로 아티스트의 음악 활동과 연계되기 때문에 프로덕션디자인, 의상 등도 사전에 치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레이블에서 원하는 스토리텔링에 맞춰 제작진이 배경 이미지를 제안하고 서로 소통하며 디벨롭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이퍼포커스>의 경우 세상의 끝에서 만난 소년들이 다시 사막에 당도한다는 스토리라인으로 움직인다. 곳곳에는 그동안 발표한 앨범과 노래 제목이 숨겨져 있는 등 “팬 콘텐츠이기 때문에 팬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승준)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그린 스크린 촬영과 충돌하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너무 반짝거리는 크롬 재질 액세서리나 녹색 의상은 안된다. 헤어는 녹색에 가까운 색은 피하고 검은색이나 고동색이 제일 좋다.”(김홍찬)
곡마다 바뀌는 세트장과 움직이는 시점, VR만의 묘미
VR 콘서트 영화도 실제 세트장을 지어서 촬영할 수 있지만 <하이퍼포커스>는 그린스크린 촬영 후 배경을 합성하는 쪽을 택했다. “실제 촬영에서는 마이너스 이펙트가 발생할 수 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환상적인 컨셉을 살리기에도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김홍찬) 또한 고정된 시점은 관람자를 갑갑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기술적으로 관객이 멀미를 유발하지 않을 속도를 계산해 카메라 움직임을 구성한 결과”(김홍찬) 고정 프레임에서는 불가능한 화면 전환과 정동이 유발된다. 가수의 스케줄이나 제작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곡마다 다른 실제 세트를 고집할 경우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촬영 일정을 잡는 일”(이승준)인 만큼 스케줄을 빼기가 어렵고 제작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VR 콘서트 영화는 후반작업을 통해 하루 촬영만으로도 곡마다 다른 컨셉과 스토리텔링, 메시지를 선보이는 일이 가능하다. “VR에서 선호되는 경험은 우주 여행, 해저 탐사, 에베레스트 등반 같은 것들이다. 콘서트 영화 제작 일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 CTO(최고기술책임자)에게 ‘리얼리스틱하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한 경험’을 강조했다. 실제 공연장이나 영상 감상으로는 불가능한 경험을 선사해나갈 것이다.”(이승준)
실물이 멋질수록 경쟁력을 발휘하는 매체
VR 콘서트 영화는 아티스트가 5cm 앞까지 다가와 교감을 시도하다 다시 전신을 비춘다. 그러다 작은 표정까지 읽어낼 수 있는 클로즈업숏이 나온다. 외모나 표정 연기는 물론 훤칠한 신장에 즉각적으로 감탄하게 된다. 이승준 대표는 “키, 외모, 노래, 춤 등이 민낯으로 전해지는 매체”라고 VR의 특징을 요약했다. 2D와 달리 프레임 수가 훨씬 많은 3D 스테레오스코픽으로 대대적인 보정 작업을 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 문제로 어렵기 때문이다. 당연히 키 속임수도 불가능하다. “라디오 스타가 TV 스타로 모두 이어지지는 않았고 TV 스타가 유튜브에서는 실패할 수도 있다. 뮤직비디오 뷰가 잘 나온다고 반드시 콘서트에서도 인기 있는 것은 아니다. TV에서 강한 아티스트와 VR에서 인기 있는 아티스트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쳇말로 ‘실물 깡패’, ‘무대 장인’이 더 각광받는 곳이다.”(이승준)
표정과 퍼포먼스의 디테일, 그보다 중요한 교감
<하이퍼포커스> 비하인드 영상에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들은 “바로 앞까지 카메라가 오기 때문에 표정이나 퍼포먼스의 디테일을 더 신경 쓰게 되더라”라는 말을 전했다. 김홍찬 감독은 “카메라에 디테일이 잘 담길 수 있도록 스태프들도 계속 모니터링을 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부연했다. “카메라가 곧 팬들이고 그들과 소통하는 느낌을 주도록 연기하는 것이 무엇보다 1순위였다.” 그리고 제작진이 적극적으로 들려줬던 현장 비하인드를 그대로 옮긴다. “격렬한 댄스를 하면서 연기를 해야 하는데 한두 테이크 만에 전부 오케이가 났다. 투어 준비 때문에 새벽 3~4시까지 연습을 하다 세트장에 와서 오전 8시에 촬영을 시작했다. 그렇게 식사 및 휴식 시간을 제외한 16시간 촬영이 잡혀 있었는데 너무 잘해줘서 밤 11시에 끝났다. 3시간 일찍 끝낸 거다. 요즘 영화 촬영장도 그렇게 오랫동안 찍지 않는데 누구 하나 힘들다는 말 없이 텐션을 잃지 않았다. 아무리 제작진이 열심히 준비해도 아티스트가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끝내기 힘든 일이다. <하이퍼포커스> 촬영은 리허설 한번 만에 VR 콘서트 영화에 걸맞은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진짜 대단하다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모든 멤버가 다.”(김홍찬) 기술의 최전선을 이끄는 새로운 매체에서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일을 수행하는 이들의 태도, 즉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이다.
VR 콘서트의 미래는?
“어떤 아티스트에게나 팬이 있다. VR 콘서트 영화는 마이크로 인터레스트에 가깝다. 홍대 중심으로 팬이 1천명 정도 있다면 홍대 인근 극장에서 일주일 정도 상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극장 하나하나가 버추얼 공연장이 된다면 극장 공간 자체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채울 수 있다.”(이승준) 어메이즈VR과 국내 가수의 협업은 에스파, 카이, 투모로우바이투게더처럼 팬덤이 견고한 그룹에서 시작했지만 VR 콘서트의 저변은 더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이퍼포커스>는 8월8일 LA를 시작으로 부에나파크, 휴스턴, 시카고, 뉴욕 등 미국 5개 도시에서 관객을 만나고 그외 국가에서의 개봉도 준비 중이다. K팝의 인기는 전 지구적이지만 모두가 라이브 콘서트를 보러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열리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콘서트를 앞자리에서 보기 위해선, 많게는 수백만원이 든다고 한다. 이승준 대표는 “VR 콘서트는 유튜브만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특별한 체험을 선사함으로써 경험의 민주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스타디움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미국까지 날아가서 또 수백만원을 쏟아붓거나 현대카드가 섭외하거나 내한이 확정되었다고 해도 대기 인원 수십만명에 이르는 티케팅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VR 콘서트는 영화의 발명 초기에 부각됐던 마술적 속성을 상기케 하는 사건이다. 꿈에 그리던 우상을 코앞에서 만나는, 누군가에게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경험을 선사하는.
음악방송 카메라만큼 빠르지 않은 대신 가공할 만한 현실감을 선사하는
멀미를 유발할 수 있는 VR의 특성상 음악방송처럼 다이내믹한 카메라 움직임은 보여줄 수 없다. 대신 VR 콘서트 영화는 컷 앤드 페이스트 없이 눈앞에 피사체가 진짜로 존재한다는 착시를 줄 수 있다. 여기에 전신으로 잡았던 숏이 클로즈업으로 바뀌고 다시 위로 떠오르는 등의 움직임은 “콘서트장 1열에서 정적으로 보고 있을 때와는 다른 경험”(이승준) 이 된다. 그렇다면 VR 콘서트 영화를 위한 촬영 동선은 어떻게 계산할까. 김홍찬 감독은 “가창하는 멤버에 집중할 것인가, 메인 댄스를 하는 멤버에게 집중할 것인가 등은 이미 기존 영상을 봤을 때 모두 정해져 있다”고 설명했다. 관람자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피사체를 따라가는 섬세한 기술이 요구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댄서들의 동선을 트래킹해 AI로 카메라 움직임을 계산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노래마다 카메라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인가, 3D 애니메이터가 댄서들의 퍼포먼스를 트래킹한 자료를 기반으로 카메라 무브먼트를 다 짜놓는다. 그렇게 초안을 만든 후 아티스트와 협의한다. 현장에 가면 감독이 초안에 맞게 아티스트들이 잘 움직일 수 있도록 가이드한다. 이렇듯 VR 콘서트 영화는 촬영 이전에 이미 상당 부분이 준비되는 매체다. 새로운 미디엄이 나올 때마다 제작 방식은 바뀔 수밖에 없다.”(이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