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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은빛살구' 장만민 감독, 뱀파이어의 형상에서 낯선 가족을 발견하다
최현수 사진 오계옥 2024-05-16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정서(나애진)는 차용증을 들고 아버지 영주(안석환)를 찾아 묵호항으로 향한다. 떼인 돈을 받으러 온 고향에서 정서는 내내 마음이 복잡하다. 돈독 오른 아버지에 지쳐 하루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지만 자신을 닮은 이복동생 정해(김진영)가 마음에 걸린다. 정서는 돈으로 얽힌 낯선 가족의 모습에서 자신이 작업한 웹툰 속 뱀파이어의 모습을 떠올 린다. 뱀파이어와 가족 그리고 물신주의를 과감히 엮어낸 영화 <은빛살구>는 장만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은빛살구>의 첫 단추를 “뿌리를 잃었던 시기에 고향 순천에서 가장 떨어진 도시였던 동해시 묵호항”에서 떠올렸다. “1년 전 묵호항의 한 횟집에서 일하던 나를 떠올리면서” 만들게 된 주인공 김정서는 “횟집에서 벗어나 서울로 향하고 싶었던 사람. 예술을 수단으로 상경했지만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이다. 피로함과 측은함, 불쾌감과 동질감이 공존하는 정서의 얼굴은 나애진 배우를 통해 구현됐다. 장만민 감독은 “모기 때문에 잠을 설치던 어느 새벽 뱀파이어를 닮은 정서 위에 나애진 배우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겹쳐 보여” 나애진 배우를 정서 역에 캐스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나애진 배우를 “대사 사이의 여백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채워넣을 줄 아는 배우”라고 격찬했다.

탐욕과 능청 사이를 오가는 아버지 김영주도 묵호항에서 발견한 캐릭터였다. “묵호항의 중년 남성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기회를 찾아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 유독 많았다” 며 보성에서 묵호항으로 향한 영주를 “욕망이 멈추지 않고 끝없이 부풀어 오르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장만민 감독은 영주라는 인물이 완성되는 데 안석환 배우의 공이 컸다고 말한다. “다소 감상적인 태도로 접근했던” 영주를 “선배의 조언으로 행동의 층위를 덜게” 되었으며, 극 중 영주가 조영남의 <제비>를 부르는 장면은 “뿌리를 잃어버린 존재가 부를 만한 노래”를 찾다 선배의 추천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은빛살구>를 흥미롭게 하는 점은 바로 가족과 뱀파이어라는 이질적인 소재의 공존이다. 장만민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 당시 “옥타 비아 버틀러의 소설 <쇼리>를 읽으며 흡혈귀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 그는 소설 속 뱀파이어와 가족제도의 유사점을 두고 “피를 빨고 피를 내주는 기묘한 공동체의 형상이 삶을 꾸려가는 가족의 모습과도 닮았다”라고 이야기했다. 뱀파이어와 물신주의에도 불구하고 장만민 감독이 가장 관심을 두는 주제는 “가족의 경계”였다. 그는 “나와 상대방이 함께 살아감에 의미를 두는 관계는 가족일지 모른다”라며 가족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했다. 영화 속 영주의 외도에도 두 이복자매가 느낀 기묘한 동질감을 “같은 일상을 보냈다는 점”이라고 설명하며 “노동과 일상에는 유대감이 있다”라고 밝힌 장만민 감독의 말에서 새로운 가족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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