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2021년 영화 <프리가이>, 그리고 지난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개봉을 계기로 영상과 게임의 장르 믹스라는 시류를 포착한 바 있다. “영화의 게임화, 게임의 영화화”(송경원 기자) 현상은 화제의 유튜브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한 스튜디오에서 뜻밖에 발견되었다. 벌스워크는 디지털 미디어 업계에서 오랜 시간 몸담아온 전문가들이 2021년 설립한 트랜스미디어 콘텐츠사다.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숨어든 마피아를 찾는 스튜디오 예능 <어몽어스>의 <픽시드>와 가수 이석훈의 거리 인터뷰 예능 <썰플리>의 운영진은 어째서 게임과 메타버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걸까. 이성준 총괄 PD와 김선구 사업개발본부장을 만나 “영상 콘텐츠는 궁극적으로 게임화될 것”이라는 파격적인 사업 비전에 대해 물었다.
- 이번 기획의 라인업에서 가장 예측 밖에 있는 회사다. <픽시드> <썰플리>로 유명한 웹 예능팀이 실은 메타버스 게임도 만드는 회사에 속해 있는 것인데. 이 투 트랙 전략을 설명한다면.
김선구 두 채널은 ‘영상화되는 게임, 게임화되는 영상’이라는 트랜스미디어적 비전을 적용하는 실험의 장이다. 예능의 언어로 벌스워크의 비전을 일반 시청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확인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영상과 게임을 아우르는 콘텐츠 제작 역량을 쌓고 있다. 게임 본부에서는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 <로블록스>를 기반으로 한 메타버스 게임을 개발하고 2차 창작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
이성준 IP를 쌓는 과정으로 봐달라. 이 자산을 바탕으로 예능과 예능, 혹은 게임과 예능 사이의 이종교배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아직 구현되지 않았지만, 예능에서 등장한 인물, 소품, 광고 상품 등이 게임에서 아이템으로 구현되어 거래되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규모 있게 구축할 수도 있다. 현재 예능 채널에서는 메타버스 캐릭터가 사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등 버추얼적 존재가 자연스럽게 시청 층에 노출되고 있다.
- 스튜디오 예능 <픽시드>에 이어 길거리 예능 <썰플리>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프로그램을 구상한 계기, 그리고 차기작을 통한 확장 계획이 있다면.
이성준 길거리 예능의 본질은 의외성이다. 주어진 정보라고는 외모뿐인 미지의 인간에게 다가갔을 때, 그에게서 어떤 언어와 목소리와 대답이 나올까. 결국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우리의 기획을 아우른다. 공개를 앞둔 신작 두편이 있다. 각각 ‘자취방’과 ‘요리’를 주제로 의외의 호스트들과 함께 다시 한번 거리로 나간다. 새로운 공간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사회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고, 이것은 벌스워크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 전통적인 창작 집단은 작가, 감독, 출연자의 영역 구분이 확실하다. 트랜스미디어 콘텐츠에서는 기획자,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의 구분이 어떻게 이루어지나.
김선구 사용자 제작 콘텐츠(UGC: User Generated Contents) 생태계에서 기획자와 크리에이터는 90% 이상 같은 영역을 공유한다. 자기표현이라는 기본적인 욕구 아래에서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크리에이터나 인플루언서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기획자가 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메타버스가 구현할 애니메이션 자아나 가상의 자아가 그 경계를 완전히 없앨 수도 있다. 벌스워크에서 가장 성공한 게임 <포트나이트>의 ‘BOX PVP’를 1인 개발자가 크리에이터로서 기획, 개발, 마케팅, 디자인 영역을 진두지휘해 만든 사례도 있다.
이성준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썰플리>를 위해 태어나서 살아온 것 같은 귀인들을 만나게 된다. 기획자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토록 매력적인 행인들이 자신의 썰을 아주 잘 풀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밈, 짤, 댓글, 영상 등 사람들이 지금 당장 재밌어하는 소재를 긁어모으는 것으로 회의는 시작된다. 그것이 주제화하는 과정에서 이를 듣자마자 몰입감이 생기는지, 회의 구성원부터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지, 길거리 환경에서도 쉴 새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지, 사람들이 댓글을 달고 싶게 만드는지를 검증한다.
-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것’의 생애주기는 아주 짧지 않은가. 한달, 일주일, 하루마다도 변할 것 같은데.
김선구 잘파 세대(Z세대(1990년 대 중반~2000년대생)와 알파 세대(2010년 이후 생)의 합성어)는 또 다르다. 한국의 <로블록스> 개발자 모임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절반 이상이 중고등학생들이다. 이들은 크리에이터임과 동시에 시청자로서 아주 광범위하고 다면화된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MCN 기업 샌드박스네트워크 재직 시절 유튜브 채널의 성격은 게임, 키즈, 뷰티 같은 식으로 정해져 있었고 그에 따른 성공 방정식도 있었다. 지금은 어떤 콘텐츠‘가’ 더 잘나간다고 설득할 수 없다. 어떤 콘텐츠‘도’ 잘나갈 수 있는 시대라 명명해야 한다.
- 실제 제작 과정에서 터득한 유튜브 문법을 공유한다면.
이성준 <썰플리>는 쇼츠의 도움을 많이 받은 콘텐츠다. 쇼츠로 ‘썰리기 좋은’ 인터뷰 형식 때문이다. 기획 단계에서는 숏폼이 이 정도로 커지기 전이어서 타 플랫폼으로의 ‘불펌’을 통한 바이럴 정도만이 가능했다. 지금은 쇼츠만으로도 수억뷰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김선구 과거에 유튜브 콘텐츠 제작을 할 때는 무조건 10분 이내로, 짧게 더 짧게 가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이제 짧아야 하는 콘텐츠들은 아예 쇼츠나 릴스로 가고 본편은 20~30분이 넘어가도 괜찮다. 그럼에도 시청 지속률은 첫 15~30초에서 판가름난다는 데 모든 스튜디오가 동의할 것이다.
공통질문
1. 이게 되네? 구독자에게 우리 스튜디오가 각인된 콘텐츠는?
“방구 뀌면 춤을 추는 집안이 있다. 벌스워크에 합류하기 전, 자연인 시절에 이 쇼츠를 보고 <썰플리>를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만의 규칙’을 묻는 질문에 일본인 행인이 잭팟을 터트려주었고 그렇게 1천만 조회수가 나왔다.”(김선구)
2. 예상보다 조회수는 낮았지만 애정하는 콘텐츠는?“‘학창 시절에 사고쳤던 썰’ 에피소드. 학원 째고 나와서 돌담길을 걷고 있던 예술중학교 학생들이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 학창 시절 그 자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이게 썰플리지’ 생각했다. <픽시드>는 거의 다 잘돼서….”(이성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