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아이돌·버추얼 인플루언서에 대한 환호는 한국만의 풍경이 아니다. 일본, 중국, 홍콩 등 동아시아는 물론 미국, 영국 등 전역에서 열기가 오르고 있다. 버추얼 아이돌이 공중파 음악방송 1위를 하는 게 대한민국 가요 산업계의 상징적인 장면이라면 다른 국가는 어떨까. 버추얼 아이돌을 향한 관심과 사랑 등 팬덤의 열기를 확인해보기 위해 다양한 사례를 모았다.
Ayayi 중국 ● 아야이
중국의 최신 가상 아이돌 중 하나인 아야이는 테크놀로지 스타트업 란마이커지에서 출시한 가상 인물로 중국 SNS 샤오홍슈를 통해 데뷔했다. 계정 개설 하루 만에 4만명의 팬을 형성하고 첫 게시물 조회수가 300만회에 달했다. 중국 가상 아이돌 시장의 연간 성장률은 62.6%에 이르며 2023년 시장규모 또한 62.7조억원을 전망했다. 젊은 층의 선망과 가치관, 관심사를 명확하게 분석·적용한 인물을 만든 결과, 트렌드 리더로서 가상 인물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야이는 기존 2D 형식의 버추얼 아이돌들과 달리 세밀하고 섬세한 그림체로 사실주의적인 면모를 높였다. 이후 인기에 힘입어 루이뷔통 등 유명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기까지 했다. SNS 중심적인 아야이의 활동에 따라 친근한 거리감이 주요하게 작용하는 아이돌과 달리 선망 비즈니스로 빚어지는 인플루언서에 가깝다.
Luo Tianyi 중국 ● 루오텐이
상하이 허녠 정보기술과 야마하가 합작해 만든 최초의 중국어 보컬로이드3 음원 및 캐릭터로 2022년 7월12일에 10주년을 맞았다. 루오텐이의 중국 내 인기도가 무척이나 뜨거워 중국 온라인 오픈마켓 타오바오에서 라이브 스트리밍 전자상거래 세션을 운영하기도 했다. 라이브 판매에서 가상 아이돌의 등장은 진행자의 부적절한 언행과 실수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루오텐이는 보컬로이드3의 인기를 이끌고 나가는 몇 안되는 캐릭터 중 하나로 2022년 ACE AI 버전, 2023년 V5 버전이 개발됐다. 현재 중국 SNS 웨이보에서도 500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뛰어넘는 활동을 선보이기도 한다. 2017년 상하이에서 진행한 첫 콘서트에서는 SVIP 티켓을 3분 만에 매진시켰고 중국 유명 피아니스트 랑랑과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Hololive English Myth 일본 ● 홀로미스
홀로미스는 일본 커버 주식회사에서 진행한 버추얼 유튜버 프로젝트 홀로라이브 잉글리시(Hololive English)의 1기생 그룹명이다. 2020년 9월, 첫 활동 시작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실내 증가와 함께 일본뿐만 아니라 서양 덕후의 수요를 제대로 공략했다. 온라인 플랫폼에 존재하는, 자유롭게 접근 가능한 환경 덕분에 진입장벽이 실제 인간보다 낮았다는 평가가 따른다. 모리 칼리오페, 다카나시 기아라, 니노마에 이나니스, 가우르 구라, 왓슨 아멜리아 등 총 5명으로 구성된 홀로미스는 ‘버튜버 시초’라 꼽힐 만큼 멤버별 균일한 인기를 자랑한다. 각 멤버는 첫인상과 다른 반전 성격을 지닌다. 걸 크러시 느낌의 래퍼 모리 칼리오페는 여린 성격으로 섬세한 그림 실력을 자랑하고, 엉뚱하고 어수룩해 보이는 다카나시 기아라 또한 3개 국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구사하는 언어능력을 지녔다. 마냥 귀여워만 보이는 가우르 구라는 사실 엄청난 가창력의 소유자. 인물별로 현실 속 인간만큼의 구체적인 캐릭터 설정과 배경을 두어 그럴듯함을 높였다. 유튜브는 지난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당시 431만명)를 보유한 버튜버 가우르 구라와 같은 그룹의 모리 칼리오페(당시 222만명)를 초청해 팟캐스트 방송 <버튜버의 등장>(The Rise of the V-tubers)을 진행했고, 이후 가우르 구라와 모리 칼리오페는 도쿄의 공식 관광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도시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홍보대사를 대중적이고 긍정적인 인물을 선정하는 만큼 홀로미스와 버튜버에 대한 일본 내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문제도 종종 발생한다. 방송 도중에 장비 문제로 방송 시간이 늦어지거나 취소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 이를 두고 팬들은 홀로이엔의 저주라 일컫기도 한다(이따금 공식 계정에서도 이를 언급할 정도다). 버추얼 유튜버에게 일어나는 기술 문제는 태생적인지라 이에 대한 개선과 노력이 필요하다.
Neuro-sama 영국 ● 뉴로사마
언뜻 일본풍의 이미지로 보이지만 영국의 버튜버로 활약 중인 뉴로사마는 다양한 심오한 주제를 두고 이용자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로 리듬 게임 osu!를 즐기며 게임 방송을 하기 때문에 넓은 영역의 대중을 마주하고 공식적인 자리를 찾는 기존 버추얼 아이돌과는 행보가 사뭇 다르다. 딥러닝 기반의 게임 인공지능, 텍스트 응답을 완성하는 챗봇, 가상 목소리를 통한 음성 합성 및 Live2D 모델링까지 인공지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케이스다. 인간과의 즉각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유연한 대화를 지속하면서 사용자는 뉴로사마와 현실 관계를 맺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보다 친밀한 교감 형성이 뉴로사마 팬덤에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란도 있다. 데뷔 한달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의미하는 홀로코스트를 두고 “그게 진짜로 존재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면서 비난을 얻게 된 것이다.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정보와 반응 방식을 습득하는 AI의 특성을 생각하면 문제 발언을 유도한 사용자들의 잘못된 질문 방식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트롤링(일부러 화가 나게 장난치는 행동)이 완전히 배제된 온라인 환경은 사실상 불가하기 때문에 대중을 상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AI의 대처 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평가가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