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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천재의 자장 안에서, 도리야마 아키라를 기억하는 창작자들의 추모사
이우빈 2024-03-15

도리야마 아키라의 영향력은 일본 만화계를 넘어 20세기 후반의 전세계 문화를 집어삼킬 정도였다. <드래곤볼>의 시대에 젊은 날을 보냈던 한국의 창작자들 역시 그 영향력의 대상이다. 그중에서 특히 <드래곤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고백한 엄태화, 연상호, 한준희 감독과 이종범 만화가의 추모사를 <씨네21>이 전한다. 엄태화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모아온 <드래곤볼>의 굿즈 사진을 한가득 보내주기까지 했다. “저의 시작 역시 당신 작품의 한 페이지” (이종범 만화가)라는 이들의 마음이 하늘의 도리야마 아키라에게도 전해지길 바란다.

계왕을 만난 도리야마 아키라 - 엄태화 감독

“어린 시절의 경험은 기억에서 사라지더라도, 무의식에 남아 그 사람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척 집에서 손바닥만 한 책 하나를 봤다. 제목은 ‘드라곤의 비밀’이었다. 해적판의 인기에 힘입어 만화는 잡지 <아이큐 점프>에서 본 연재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서야 원제목이 <드래곤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드래곤볼>은 <아이큐 점프>의 얇은 부록으로 연재가 됐었는데, 이를 보려고 모은 <아이큐 점프>를 쌓아 침대를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이때는 아직 단행본이 나오기 전이었기에 부록 <드래곤볼>만 따로 묶어서 사전 두께의 책 두권으로 소장해서 닳고 닳도록 봤다. 단행본이 출시되자 당연히 모으기 시작했고, 순서대로 꽂으면 책등에 죽 이어지는 그림을 보며 뿌듯해했다. 야광 드래곤볼 7성구나 드래곤볼 프리즘 카드를 모으는 것은 당연지사. 또한 드래곤볼 일러스트가 그려진 달력이 매년 출시됐었는데, 그 달력으로 교과서의 겉표지를 만드는 것이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하는 연중행사였다.

중학교 시절의 엄태화 감독이 그린 그림.

원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채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도 이즈음이었다. 포스터물감으로 <드래곤볼>을 수없이 따라 그렸다. 친구들의 칭찬을 듣는 게 좋았고 그리는 실력도 늘어갔다. 이후 어영부영 미대 입시를 치르게 됐는데, 칼같이 명암이 나뉘는 <드래곤볼>의 스타일과 그 당시 한국의 미대 입시 실기시험 스타일(모티브)이 상당히 비슷했다. <드래곤볼>을 따라 그렸던 게 큰 도움이 됐고 합격까지 하게 됐다. 미대에서 처음 영화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어쩌다 보니 영화감독이 됐다. 어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어가면서 소년 시절에 각인됐던 흥분과 매료는 점차 사라져갔다. 하지만 나의 창작물들을 돌아보면 어린 시절 심어진 씨앗들이 각기 다른 줄기로 뻗어나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중 <드래곤볼>과 <닥터 슬럼프>는 큰 지분을 차지한다. 도리야마 아키라에게 상상력을 배웠다. 크게 빚지고 있다.

엄태화 감독이 소장 중인 <드래곤볼> 굿즈들.

엄태화 감독이 소장 중인 <드래곤볼> 굿즈들.

<드래곤볼>은 모든 경계를 허문다. 생과 사, 우주와 지구, 현생과 이생, 강자와 약자 등. 주인공이 강해지면 늘 더 강한 적이 나타났고, 주인공은 그 시련으로 더 강해진다. 도리야마 아키라는 서사구조와 설정에 갇히기보단 상상력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았다. 흘러가는 대로 이야기를 놔두면서 작품이 스스로 유기체가 되는 것에 두근거림을 느꼈다고 한다. 물론 독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도 있었을 테고, 다 잘되고 나서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했기에 거대하고 무한한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드래곤볼>은 그 방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엄태화 감독이 소장 중인 <드래곤볼> 굿즈들.

드래건을 좋아하던 그답게 청룡의 해에 이 세계를 떠났다. 이 세상도 마치 그의 세계관 중 일부인 것 같다. 전세계의 <드래곤볼> 팬들이라면 모두 그렇겠지만 드래곤볼을 모아 그를 살려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가 염라대왕을 만난 후, 길고 긴 뱀의 길을 지나 계왕을 만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평생 정말 열심히 살았어. 모처럼 얻은 휴식이군…”이라고 하며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볼 도리야마 아키라 선생을 추모한다.

연상호 감독

10살 된 딸이 <드래곤볼>을 10번 넘게 보고 있다. <닥터 슬럼프>도 5번은 본 것 같다. 나온 지 몇십년이 지난 작품인데도 너무 재밌게 보더라. ‘시대를 타지 않는구나. 명작은 명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나도 최근에 다시 <드래곤볼>을 보고 있다. 딸이 더 어릴 땐 직접 읽어주기도 했는데 몇몇 장면에선 괜히 내가 울컥하게 되더라. 예를 들면 프리더와의 대결에서 크리링이 산산조각 나고 손오공이 각성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몇번을 봐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드래곤볼>을 단순한 액션 만화로 보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이야기의 짜임새 역시 어마어마한 작품이다. ‘프리저 편’에선 크리링, 오반, 사이어인, 프리저팀 등이 여러 갈래로 찢어져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구인들은 기를 느끼고 프리저 진영은 스카우터를 쓴다. 각기 다른 게임의 규칙을 가지고 드래곤볼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이루는 모양새인데 그 속의 구도와 장면들이 일품이다. 이런 구조에 영감을 받으려고 지금도 계속 <드래곤볼>을 꺼내 보고 있다. 사실 창작자라면 <드래곤볼> 같은 작품 하나 낸 것만으로도 할 일은 다 한 거다.

우리 세대에 <드래곤볼>을 따라 그리지 않은 애들이 있었을까. 도리야마 아키라는 스크린톤을 거의 쓰지 않고 펜선으로만 작업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렇게 그린 지면 만화에서의 액션 연출은 지금도 관련 학부에서 연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는 장면이 있다면 칸을 세로로 길게 배치하고 인물이 정확히 떨어지는 느낌을 구성한다. 영화로 치면 이미지 라인이 굉장히 뚜렷한 셈이다. 대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기보단 액션의 방향성을 더 신경 쓰기도 해서 만화책인데도 영상을 보는 느낌을 준다.

얼마 전 <드래곤볼>의 편집자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드래곤볼>과 <기동전사 건담>이 어떻게 일본 잡지만화 시장의 황금기를 열었는지, 그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 들었다. 그렇게 <드래곤볼>은 만화 시장뿐 아니라 영화감독이나 영상 일을 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베르세르크>의 미우라 겐타로 작가도 그렇고 도리야마 아키라 작가까지…. 내 시대의 작가들이 이렇게 이르게 떠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한준희 감독

‘시간과 공간의 방‘, ’초사이언‘, ’에네르기파’, ‘기 모으기’. 도리야마 아키라가 <드래곤볼>에 남긴 설정들은 하나의 고유명사가 됐다. 그의 화풍을 좇는 후배들은 왕도물의 대명사가 됐다. 나는 <드래곤볼>이 완결됐을 때 실의에 빠졌던 어린아이 중 한명이었고, 밤새 <드래곤 퀘스트>를 플레이하며 엄마에게 등짝을 맞던 중학생이었다. 그의 만화와 그의 게임이 너무너무 재밌었으니까. 일면식도 없는 외국 팬이지만, 그럼에도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 “덕분에 제 소년 시절이 풍요로웠고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될 수 있었습니다. 토리야마 작가님, 영면하시길.”

이종범 만화가

인류학 수업 때 들었던 한 부족의 장례문화가 생각난다. 고인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생전의 고인에 관한 기억들을 모두 공유하고 나누며 떠들다가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을 때 비로소 장례식이 끝난다는. 그 기억들 중에는 좋은 이야기와 서운했던 기억들, 감사했던 일들도 모두 포함된다. 도리야마 아키라 선생의 작품들에 관해 주변의 만화가들이 올리고 있는 글들은 마치 그 부족의 장례식을 연상케 한다. 독창적인 만화 기호를 창안해낸 장인. 자기 반복적인 파워인플레이션 구조를 만들어낸 장본인. 끝없이 흘러나오는 새로운 세계. 불필요한 신체 노출과 관음적 연출에 대한 서운함. 천재적인 디자이너. 한 세대 전체의 배경에 언제나 존재했던 그의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이 장례식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저의 시작 역시 당신 작품의 한 페이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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