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웨이브과 티빙의 모회사 SK스퀘어와 CJ ENM는 웨이브·티빙 합병 관련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뒤 본계약 협상을 진행 중이다. 웨이브와 티빙 모두 매해 적자가 누적되고 있던 상황에서 이들의 합병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그리 평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실사를 거친 후 올해 초 본계약을 맺는 것이 당초 목표였지만 현재 합병 비율 등 양사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구체적인 논의에 이르기까지는 좀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웨이브의 주요 주주인 지상파 3사(KBS, SBS, MBC)의 거취에 따라 지상파 콘텐츠 제공 계약 유지 여부도 달라질 수 있다. 토종 OTT가 힘을 합친다면 넷플릭스 독주에 맞설 수 있는 혹은 굳건한 2등 자리를 노릴 수 있는 대항마가 될 수 있다던 낙관론도 당분간 불투명해졌다. 넷플릭스 코리아와 2016년 1월 함께 서비스를 시작했던 왓챠는 경영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여러 차례 매각설에 휘말렸다. 서울대, 포항공대, 카이스트 출신의 엔지니어가 모인 벤처기업에서 출발한 왓챠는 스타트업이라는 기업의 특성상 새로운 실험을 많이 했는데 이러한 전략이 콘텐츠 업계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에는 충돌하는 지점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많은 소문 중 LG유플러스의 왓챠 인수는 실제 성사 가능성이 있는 ‘썰’이었다. LG유플러스와 왓챠는 2022년 7월부터 10개월가량 투자 협의를 진행해 실제 매각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바 있다. 존폐 위기에 놓인 왓챠는 건별 결제를 강화하고 성인영화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새로운 승부수를 뒀다.
한편 한국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지향하는 쿠팡플레이는 1년에 2~4편 정도를 선보이며 확실하게 될 작품에만 투자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쿠팡플레이의 월간 활성 이용자수(MAU)는 778만명으로 국내 OTT 중 최고 수치를 기록했지만 와우회원을 제외한 유료 가입자 수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의 구독자 수는 2억6천만명, 디즈니+는 1억5천만명 정도다. 전세계에서 구독료를 받아 이를 콘텐츠에 투자하는 글로벌 기업을 MAU가 많아야 500만~800만명대인 국내 OTT 플랫폼이 상대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싸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국내외에서 성공한 드라마를 제작한 A씨는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구독 서비스 모델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한계를 짚었다. “OTT 플랫폼 사업은 유지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다. 넷플릭스, 디즈니+의 시스템만 따라갔다가는 국내 OTT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SK텔레콤 같은 거대 통신사의 지원을 받거나 네이버와의 제휴를 통한 초반 가입자를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들이 유료 가입자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꽤 소요되고 매년 적자는 늘어나고 있다.
콘텐츠 흥행이 잘돼도 지금의 수익모델로는 돈을 벌기 어렵다. OTT 플랫폼에서 수년간 몸담았던 B씨는 “최근 국내에서 성공했다고 평가받고 해외 판매도 잘됐다고 평가받는 어떤 오리지널 드라마의 리쿱율(제작비 회수율)이 60%였다”는 다소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콘텐츠 과잉 공급 상태에서는 실제 구매액이 그리 높아질 수 없기 때문에 제작비 회수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거대 스튜디오가 자사의 콘텐츠를 10~100개씩 묶어 OTT에 패키지로 판매하는 경향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구독료가 계속 뛰면서 소위 ‘메뚜기’처럼 플랫폼을 옮겨 다니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엔데믹 이후 다른 여가 생활을 즐길 여유가 생겼다는 점 또한 기업의 유지비용을 상승시킨다. “구독자 한명을 플랫폼에 머물게 하는 데 드는 비용이 예전에 비해 3~4배 올랐다. 지금 국내 OTT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다.”(B씨)
국내시장에서 먼저 자리 잡은 후 해외로 진출해 글로벌 OTT로 성장한다는 이상적인 루트도 실현되기 어렵다. 성장 기반을 다지기까지 모기업이 시장의 불확실성과 적자를 감수하고 투자를 이어나갈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A씨는 “아시아 시장을 먼저 포섭한다는 전략도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넷플릭스는 영어 서비스지만 국내 OTT는 한국어 기반이지 않나. 문맹률이 높아서 반드시 더빙이 필요한 국가들도 있다. 자막과 더빙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 것이다.”(A씨)
하지만 국내 OTT가 가진 강점이 있다면 바로 한국 콘텐츠 그 자체다. 영화와 드라마를 두루 만든 제작자 C씨는 “요즘엔 넷플릭스 콘텐츠보다 그들이 기존 TV드라마를 구입해서 공급하는 콘텐츠가 더 인기가 많다”는 점을 짚었다. “만약 스튜디오드래곤이 넷플릭스 공급을 중단하고 티빙에 콘텐츠를 독점 공급한다면 넷플릭스의 아시아 입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넷플릭스보다 좋은 IP를 많이 갖고 있는 플랫폼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이합집산을 통해 회사 규모와 라이브러리를 키우고 해외 진출에 성공할 때까지 투자할 모회사가 있다는, 무엇보다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넷플릭스가 아닌 국내 OTT를 택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다. 제작자 겸 배우 매니지먼트사 대표 C씨는 “국내 OTT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넷플릭스보다 훨씬 메리트 있는 제안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IP를 공동 소유한다거나 수익을 공유하는 딜을 던져야 김은숙 작가 같은 스타를 데려올 수 있지 않겠나. 넷플릭스와 경쟁하려면 그들이 지닌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예컨대 생산자와 플랫폼이 상생할 수 있는 계약 방식이 있어야 한다.” 지금으로선 스튜디오드래곤, SLL에서 이른바 흥행을 기대하는 대작은 제작비 회수를 위해 티빙보다는 넷플릭스를 택할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또한 기업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글로벌 OTT와는 다른 수익모델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리가 있다. 다양한 성공작을 내놓은 드라마 제작자 D씨는 “중국 시장이 다시 열려야 한국 콘텐츠 업계가 산다”는 점을 강조했고, 최근 여러 OTT 플랫폼에서 드라마를 선보인 제작자 E씨는 “제작사가 IP를 확보하고 해외 세일즈 창구를 다양하게 하는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는 웨이브나 티빙에, 일본에서는 일본 내 OTT에, 싱가포르에서는 싱가포르 내 OTT에서 동시에 오픈하는 것이다. 넷플릭스 독과점에 대항하려면 각 국가의 플랫폼이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결국 각자의 니즈가 달라 실제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시도들을 해나가야 한다.” <기생충>부터 <오징어 게임>까지, 한국영화와 드라마는 할리우드를 벤치마킹하기보다는 한국 창작자들이 제일 잘 아는 소재에 힘을 쏟았을 때 세계시장에서 인정받았다. 국내 OTT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넷플릭스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아니라 넷플릭스가 하지 못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나가는 것이다. 존폐 자체를 우려하는 국내 OTT가 살아남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철저한 자기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