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OTT 시장의 적신호엔 OTT 드라마의 제작비 상승이 일조하고 있다. 최근에 제작비 급증의 원인으로 스타 배우들의 출연료가 화두에 오르기도 했지만, 출연료 문제만이 원인은 아니다. 대형 영화 제작사 출신으로 얼마 전 OTT 드라마를 흥행시킨 제작자 A씨의 말처럼 “많은 제작자와 관객이 원하는 스타 배우의 수요가 높아지는 건 경제 논리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에 가깝다. 표면적인 출연료 이슈에 몰두하기보다는 출연료와 제작비 상승의 복합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누가 이득을 보고 있는지, 이로써 현재의 OTT 시장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질문하는 일이 필요하겠다.
출연료 상승 이슈를 보면 배우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사들이 많은 수익을 챙겨갈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보통 매니지먼트사는 배우 출연료의 20%에서 경영 비용을 제외한 수입을 거둔다. “배우 출연료가 회당 1억~2억원 올라간다 해도 회사 수익이 급증할 순 없다”라는 게 매니지먼트사 대표 B씨의 설명이다. 16~20부작을 오갔던 예전의 TV드라마와 달리 최근 OTT 드라마는 6~10부작으로 제작된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B씨는 “개런티 이슈가 화두에 오르면 특정 스타 감독과 배우가 언론에 거론되더라. 우리가 우리의 개런티를 높인 것도 어느 정도 맞지만, 실질적으로 개런티가 높아진 데엔 넷플릭스의 영향이 크다”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히트작을 성공시킨 드라마 제작사 대표 C씨도 “넷플릭스가 돈을 얼마 주냐에 따라 배우 출연료도 정해지는 것”이라면서 “넷플릭스가 이 돈 주고 저 배우 안 쓴다고 하면 배우들은 갈 데가 없어지는 정도”라고 설명하며 의견을 더했다. 배우들의 몸값과 제작비가 오르고 콘텐츠 공급이 과잉되는 등 시장이 과열하면서 결국 모든 주판알을 미 본사의 자본력을 갖춘 넷플릭스가 튕기게 됐다는 논지다. 배우들은 이미 받아본 출연료를 낮출 이유가 없기에 계속 넷플릭스를 원하게 됐다. “지금의 출연료 수준을 받으려면 할리우드를 가야 하는 데 할리우드가 이 정도 개런티로 한국 배우를 섭외할 이유는 없고 중국 시장은 한한령으로 막힌 상황”(제작자 C씨)이었기에 배우들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넷플릭스 작품에 대한 경쟁이 심해지고 시장이 어려워지자 “일부 톱배우를 제외한 배우들은 어느 플랫폼이든 출연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는 게 천만영화 제작자 D씨의 이야기다.
칼은 넷플릭스가 쥐고 있다
콘텐츠 제작자들도 넷플릭스의 문을 열렬히 두드리고 있다. “넷플릭스의 한해 슬롯(방영 편수)은 15개 내외인데 거기 들어가려는 작품은 2천개 넘게 쌓여 있다.”(제작자 A씨) 넷플릭스는 “일반적으로 총제작비 5% 내외(작품마다 상이)의 프로덕션 피(fee)만을 제작사에 지급”(창업 투자사 출신의 제작자 E씨)하며 다소 소극적으로 수익을 분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러나 최근 제작사들 사이엔 “이 5% 내외의 고정수익이라도 명확히 챙기길 바라는”(제작자 A씨)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극장가 불황에서 몇백억원짜리 텐트폴 영화를 만들었다가 큰 손해를 보는 것보다 낫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디즈니+ 등의 다른 OTT도 프로덕션 피와 같은 수수료 기준의 수익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큰 총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는 넷플릭스를 우선 선택하는 일이 당연시되면서 넷플릭스 독주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국내 OTT사의 주요 인사였던 G씨는 “국내 OTT 월간 활성화 이용자 수의 높은 수준이 400만~500만명인 상황”에서 “넷플릭스 외 OTT가 플랫폼을 유지하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기엔 내수시장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설명하며 넷플릭스 독점 시장의 이유를 덧붙였다.
한국에서만 OTT의 수익 분배 구조가 불합리하다는 것이 제작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B씨는 “미국 OTT의 제작사 할당 요율은 20% 가까이 되고, 크리에이터나 쇼러너가 흥행 인센티브로 누리는 이익이 크다”라고 말하며 “반면에 한국은 넷플릭스와 방송국 등에서 수익의 대부분을 챙기면서 제작사, 매니지먼트, 창작자들과 상생 구조를 만들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제작자 D씨는 오리지널 콘텐츠뿐 아니라 OTT가 방영권을 구매한 작품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수익을 챙겨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방영권을 편당 8천만원 수준에서 구매한 후 동남아시아 시장 등에서 엄청난 이득을 보더라도 제작사와 창작자에 특별한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방영 플랫폼과 제작사측의 수익 분배 문제는 기존 지상파 드라마 시장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오랜 경력의 드라마 제작자 H씨는 “지상파 중 KBS만 미니시리즈 기준 7%, 주말드라마 기준 20% 수준을 돌파했을 때 회당 1천만원씩을 더 주는 시청률 개런티를 줬을 뿐”이라며 “다른 방송국이나 최근 OTT는 여전히 창작자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라고 지적했다. “경상비를 내기도 어려운 실정임에도 중소 제작사들은 크레딧 하나라도 남기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콘텐츠를 만든다”라는 게 B씨의 설명이다.
넷플릭스가 기본적으로 미국의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기반으로 뿌리 내렸기에 생긴 괴리들도 있다. 미국은 리미티드 시리즈가 아니라 시즌제 드라마에 익숙하고 시즌제를 더 선호한다. <워킹데드>처럼 드라마 IP를 브랜드화해서 장기적인 수익과 제작비를 창출하는 구조를 만들면 창작자와 제작자가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의 공동작가 체제와 달리 작가 개인의 창작에 기대는 경향이 강해 시즌제 드라마를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관련된 산업 체계나 수익 분배 구조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유연한 체제 전환도 어렵다. 배우들의 출연료 책정 문제도 있다. 미국과 중국 등은 월(month) 기준으로 출연료를 책정하지만, 한국은 예전부터 회당 출연료 제도를 택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OTT 드라마의 제작비나 출연료 수준에 비한 콘텐츠 흥행의 기준을 제대로 계산하기가 난감한 것이다. “구조적으로 OTT와 창작자 사이의 방향성에 충돌”(제작자 A)이 생기고 차후 한국 OTT 시장의 불안정성이 늘어나는 이유다. 천만영화를 만들고 OTT에도 몸담은 제작자 F씨에 의하면 “원래 가성비 콘텐츠를 만드는 시장으로 출발”했던 한국 넷플릭스 시장의 헤게모니가 “튀르키예나 태국 등 한국보다 인건비와 제작비가 싼 국가”로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업계 종사자들은 넷플릭스 독점 체제나 제작비, 출연료 급등으로 인한 시장 불안정에 대한 해결책을 마땅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 체제의 난점을 언급하면서도 ‘넷플릭스도 시장 논리에 따라 마땅한 장사를 하는 것뿐이니 비판만 할 순 없다’라는 의견이 대세이기도 했다. “극단적으로는 이러다가 시장이 한번 망해야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제작자 F씨의 말이 사실상의 유일한 방향성이었다. “업계 종사자들이 살을 깎는 개혁을 통해 배우 출연료나 제작비 등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내수시장 규모에 맞는 적절한 해결책은 찾기 어려울 것”이란 의미다. 실제로 OTT 호황기에 비해서 “드라마 제작 편수는 3분의 1 수준”(제작자 A씨)으로 줄었다. 그렇지만 넷플릭스의 바늘구멍을 뚫기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기현상은 유지되고 있다. 이대로 한국 OTT 드라마 업계의 제작비와 출연료 거품이 펑 터진 후 시장이 대폭 위축될지, 혹은 예상 밖의 혁신적인 활로가 나타나 한국 OTT 업계의 미래를 살릴지를 주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