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독점 콘텐츠와 구독경제로 때아닌 특수를 맞았다.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국내 OTT는 통신사와 가입자간 결합상품 제휴, 포털 멤버십과 자사의 구독권을 제휴하는 등 다량의 구독자 수를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국내외 OTT가 서로 각자의 이점을 살린 마케팅으로 공격적인 콘텐츠 공급에 들어가자 시장 전체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콘텐츠 경쟁은 과열됐고 구독경제는 유지가 어려워졌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공룡 기업도 구독자 수 및 매출 감소에 직면하고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위기설에 시달린다. 제휴 마케팅은 일시적으로 구독자를 확충하는 데는 성공적이지만 구독 해지 여부가 OTT 자체의 매력도가 아닌 외부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미봉책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현재 OTT는 구독자 수에만 매달리지 않거나 외부 제휴사와 무관하게 구독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강구한다. 그중 하나가 광고요금제다. 플랫폼의 구독료는 낮추되 가입자가 콘텐츠 재생 전후 또는 중간에 삽입된 광고를 의무적으로 보게 만드는 전략이다. 기존 구독 기반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SVOD)의 포맷에 광고 기반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AVOD)를 추가한 셈이다. 넷플릭스는 2022년 11월부터 광고요금제를 상품에 포함했다. 이어 디즈니+가 광고요금제를 출시했고(국내엔 아직 도입하지 않았다.-편집자), 티빙이 지난 2월15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 OTT 중 최초로 ‘광고형 스탠다드’ 상품을 3월4일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맥스, 파라마운트+, 피콕 등 해외 OTT는 플랫폼 출범 초기부터 광고요금제를 운영해왔다. 계정 공유 금지 역시 위와 같은 선상에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11월 같은 가구 내에 거주할 경우 계정 공유가 가능하지만, 같은 가구에 속하지 않는 사람과는 가입 계정의 공유가 불가하다는 방침을 공지한 후 단속에 나서고 있다. 이어 디즈니+도 동일 가구 이외의 계정 공유를 단속한다는 가이드라인을 한 차례 발표했으나 현재 실질적인 단속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새로운 소비층을 흡수하기 위해 드라마 및 예능에 치중됐던 콘텐츠 라이브러리도 확장을 꾀하고 있다. 국내 OTT는 현재 중계권 확보에 집중 중이다. 쿠팡플레이는 2022년 7월 K리그와 토트넘 홋스퍼 FC의 친선 경기를 독점 생중계하며 축구 리그 중계에 나섰다. 국내 선수들이 출전하는 스포츠 경기라면 TV 생방송의 무료 중계로 볼 수 있다는 국내 시청자의 통념이 깨진 것이다. 한편 올해 1월 한국야구위원회는 뉴미디어 중계권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CJ ENM을 선정했다. 티빙은 이를 통해 2026년까지 KBO 리그 생중계권과 VOD 스트리밍 권리 등을 소유하게 된다. 이미 해외에선 Apple TV+가 2032년까지 미국 메이저리그사커의 중계권을 선점한 선례가 있다. 중계권은 스포츠에 국한하지 않는다. 넷플릭스는 올해부터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 지표인 미국배우조합상(Screen Actors Guild Awards)을 독점 생중계한다.
이들의 정책은 실효성을 갖는가?
국내외 OTT들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시행하는 여러 정책들은 당장엔 성과를 거둔 듯 보인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수익보고서를 통해 미국에서 광고요금제를 사용하는 구독자가 월 최소 8.5달러의 가치를 냈고, 광고요금제의 월간 활성 이용자수는 15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관한 국내 업계의 인식은 아직 미온적이다. 투자배급사 출신 제작사 대표 A씨는 “광고 시장 전체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줄어드는 OTT의 가입자 수를 광고로 메꾸는 것이 현실적으로 타산이 맞을지 의문이 든다. 차라리 구독료 자체가 소비자의 눈높이로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OTT의 광고 운영 능력이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광고를 기반으로 한 OTT가 향후 얼마만큼 실효성을 거둘지도 미지수다. 여러 IP를 해외 OTT에 남품한 경력이 있는 제작사 B씨는 “넷플릭스는 성과 보고만 할 뿐 광고요금제의 이용자수와 이것이 가져다주는 실익간의 상관성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아마 자사의 광고를 계속해 붙이는 식으로 운영하지 않을까”라며 어두운 예측을 내비쳤다. 위 정책이 미디어 업계 전체의 공생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 광고요금제와 중계권 문제는 레거시 미디어와 OTT 플랫폼간의 양극화를 키울 우려가 있다. 전술한 대로 레거시 미디어의 수익 기반은 여전히 (상업)광고다. 또한 레거시 미디어의 생중계 방송 전후에 붙는 광고가 수익의 주 원천이다. 이는 레거시 미디어의 최후 수입원마저도 OTT가 독점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계정 공유 금지 또한 시행 이후 가입자 수의 증대를 가져왔다. 넷플릭스에 의하면 해당 정책을 한국보다 이르게 미국과 유럽에서 시행한 결과, 가입자 수 상승률이 2020년 팬데믹 초기 스코어 다음으로 최고치를 달성했다고 한다. 콘텐츠 제작을 겸하는 매니지먼트 대표 C씨는 “유튜브 프리미엄 요금제를 사용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유튜브 이용률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해당 플랫폼을 선호하는 집단이라면 새로 생긴 제한이 부담되더라도 기회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것이라 전망한다. 소비자들이 OTT 계정을 공유해 사용하던 가장 큰 원인은 구독료에 대한 경제적 부담 때문이다. 가입자들이 느끼는 경제적, 심적 부담감 모두를 차단해 수익을 올릴 때 돌아설 소비자의 마음과 재구독을 감행할 소비자의 마음 중 어느 쪽이 수익에 더 큰 영향을 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2년 1월 발표한 ‘디지털 전환시대 콘텐츠 이용 트렌드 연구’에 따르면 전국 15~59살의 디지털 콘텐츠 이용자 3천명 중 87.2%는 유료 OTT 계정을 집단 구독한다고 응답했고, OTT 이용의 가장 불편한 점으로 구독료에 따른 경제적 부담(42.5%)을 꼽았다. 대표 A씨는 “소비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책의 지속성을 염려한다. “구독료는 낮추되 계정 공유를 금지한다든가 요금제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의 양을 조정한다든가 하는 식의 단계 조정 없이 무작정 계정 공유를 금지하고 광고, 비광고 모델을 이분화하는 게 소비자에게 소구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포화상태의 산업에서 OTT 업계는 여러 사업 방향을 모색했지만, 결국 이 정책들의 귀결점이 이전 모델인 구독료 위주로 돌아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OTT가 다각화 중인 모델의 다수는 여전히 구독료, 광고료 등의 수익 기반이다.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 역시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국내 OTT 회사 마케팅 책임 경력이 있는 D씨는 “IP에 대한 부가 사업 성공 경험이 없는 OTT들이 SVOD만으로는 매출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수익 방어를 위해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다”라며 “이들이 매출원에 대한 뾰족한 레퍼런스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제작사 부대표 E씨 또한 “OTT의 중심은 콘텐츠다. 하여 지금의 정책들이 일시적인 수익 증대를 가져올 순 있어도 소비자의 구독률이나 기업 이미지 제고엔 실효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망한다. 이들이 수익률 이상으로 다각화할 모델은 결국 양질의 자체 콘텐츠이지 않을까. 플랫폼이 제작하고 수급하는 콘텐츠의 퀄리티 확보가 일정 수준을 맞추지 못한 채 가격 논의만 무한정 이어간다면 구독경제의 기반 또한 흔들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