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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인가?, 소설가 김중혁이 본 <플랜 75>
김중혁(작가) 2024-02-09

(※영화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통계는 숫자일 뿐이지만, 그 속에서 마음을 읽을 때가 있다. 마음이 들여다보여서 가장 놀랐던 통계는 노인들의 자살 성공률이다. 2006년 질병관리본부의 조사에 의하면 65살 이상 노인의 자살 성공률은 31.8%다. 다른 연령대는 8% 정도니까 네배 높은 것이다. 우발적이지 않고, 충동적이지 않고, 죽으려고 굳게 결심을 했다는 게 숫자로 보인다. 자살에 실패했을 경우 어떤 참혹한 미래가 자신에게 닥칠지 알기 때문에 더욱 결연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31.8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슬퍼 보였는지 모른다. 오래된 통계이지만 그사이 노인들의 자살 성공률이 낮아졌을 것 같지는 않다.

찬반 토론을 넘어서

노인들의 자살 성공률을 보고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의 한 문장도 떠올랐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소설에는 암 치료를 받고 있는 밀리선트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자신의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된다고 생각한다. 창피해한다.

“의존, 무력감, 고립, 두려움… 그게 다 아주 무섭고 창피해요. 통증이 있으면 자신을 겁내게 돼요. 그 완전한 이질감이 정말 끔찍해요.”

밀리선트는 수면제를 먹고 자살했다. 어떤 사람들은 대학살을 피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쪽을 선택한다.

나이가 들면 의존, 무력감, 고립에 맞서 싸워야 한다. 전투라고 생각하며 싸우는데, 문득 이것은 일방적인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이길 수는 없다. 시간은 무자비하게 노인의 몸과 마음을 공격하고, 궁지로 몰아붙인다. 노인은 물러설 곳이 없다. 과거는 영겁처럼 길게 느껴지고, 자신의 미래는 몹시 짧아서 훤히 내다보인다. 사회에서의 쓸모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고, 평생 해왔던 일의 가치도 소용없게 느껴진다. 어느덧 덧없는 시간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되고, 시간은 화가 난 얼굴로 우리를 무시한다. 그야말로 대학살이다.

하야카와 지에 감독의 <플랜 75>는 이런 질문 으로 시작한 것 같다. ‘만약 사회에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면 미래를 위해서 사라져주는 게 좋은가?’ 영화의 시작은 노인 혐오 범죄의 끔찍한 현장이다. 아름다운 피아노 소나타를 틀어놓고 청년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넘쳐나는 노인이 나라 재정을 압박하고 그 피해는 전부 청년이 받는다. 노인들도 더는 사회에 폐 끼치기 싫을 것이다. 옛날부터 우리 일본인은 국가를 위해 죽는 걸 긍지로 여겨왔다. 나의 용기 있는 행동을 계기로 진솔하게 논의하고 이 나라의 미래가 밝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청년은 휠체어 탄 노인을 죽인 직후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살한 청년 같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인지 ‘플랜 75’라는 이름의 정책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 75살 이상 노인에게 국가가 죽음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준비금 10만엔을 주고 개인별 맞춤 상담 서비스, 장례 지원 절차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죽고 싶은 노인은 국가가 죽여준다는 것인데, 가장 무서운 건 정책명이다. ‘플랜’이란 앞으로 실천할 내용을 조목조목 나열한다는 뜻인데, 75는 제거할 대상의 이름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데드라인’ (deadline)을 현실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죽음에 대한 어떤 애도도 없다.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영화 속에서 플랜 75를 놓고 찬반 토론을 벌이려는 생각이 없다. 격렬하게 반대하는 시민도, 소리 높여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정치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노인을 편하게 죽여주겠다는 국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며, 오로지 가면을 쓴 공무원의 안내와 라디오의 뉴스 소리로만 존재한다. 영화는 네명의 시선으로 펼쳐지는데 네 사람 모두 저항하지 않는다. 혼자 살아갈 길이 막막한 ‘미치’는 플랜 75 신청서를 작성하고, 국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플랜 75 담당 직원 ‘히로무’는 묵묵히 노인들을 죽음의 길로 인도하고, 콜센터 직원 ‘요코’는 유언장을 대리 작성하듯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플랜 75 이용자의 유품을 정리하는 이주 노동자 ‘마리아’는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덕분에 아픈 아이의 병원비를 납부할 수 있게 됐다.

단편에서 장편으로

<플랜 75>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제작을 맡은 옴니버스영화 <10년> 속의 단편으로 출발했다. 단편에서는 오히려 여러 의견이 등장한다. 플랜 75 가입 신청서를 받는 공무원의 장모는 75살이 넘은 치매 환자다. 연명치료가 금지된 사회이며, 치매 환자 80%가 플랜 75를 선택한다는 정보도 알려준다. 공무원의 아내는 임신한 상태고, 곧 태어날 아기도 걱정되고, 다시 복직도 해야 하고, 치매 상태의 엄마가 다른 사람과 얽혀서 사고라도 나게 된다면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아내가 엄마를 포기하려 하자 남편이 “진심이냐?”고 묻는다. 아내는 대답한다. “당신은 남들한테 권유하고 있는 주제에.” 미래를 위해 과거를 포기하고 싶은 아내의 마음도, 남들에겐 죽음을 권해도 우리 가족은 지키고 싶은 남편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오래 사는 건 수치스럽다”며 플랜 75로 죽는 날이 길일이라서 좋다는 남자도 등장한다. 플랜 75 상담소에다 날계란을 던지는 멍한 눈빛의 청년도 등장한다. (장편에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하지만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가 전투를 벌이고 있다. 미래가 중요해서 과거를 지우려는 사람과 과거를 잊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장편으로 넘어오면 하야카와 지에 감독의 태도는 단호하다. ‘이것은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호텔에서 수건을 정리하던 미치가 불현듯 카메라를 응시한다. ‘당신들이 말하는 넘쳐나는 노인이 바로 나인가?’라고 묻는 것 같다. 콜센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중간에 그만두려는 사람이 많으니, 삶에 미련을 가지지 않도록 잘 유도해야 한다”며 매뉴얼을 설명하는 관리자의 말을 듣던 요코도 갑자기 카메라를 응시한다. ‘이게 맞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 히로무는 옆자리에 앉은 삼촌의 시신을 오랫동안 응시한다. 유품 정리를 하던 마리아는 창문을 열고 초록을 응시한다. ‘대학살의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가?’ 감독은 직설적으로 묻고 있다.

개인이 아닌 정책을 가운데 두고

영화 전체를 죽음을 맞이하는 미치의 이야기로 만들었다면 관객들이 감정이입하기가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이야기의 주체를 네명으로 분산한 것은 영화 <플랜 75>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플랜 75라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한가운데 플랜 75라는 대학살의 주체가 놓여 있고, 혹은 보이지 않는 정치인들이 숨어 있고, 플랜 75에 속절없이 당하고야 마는 네명의 인간이 등장한다.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들의 중요한 특징으로 말한 것처럼 인물들은 ‘각자의 알맞은 위치를 받아들이’(take one’ s proper station)고,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아주 작은 저항들이 일어나긴 한다. 미치는 죽음보다는 삶을 선택한 후 태양 앞으로 걸어나가고, 히로무는 삼촌의 시신을 유기하고, 마리아는 그 일을 돕고, 요코는 플랜 75 가입자에게 사적인 전화를 걸어 죽음을 말리려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이것뿐일까?

정치인들은 앞으로도 미래를 담보 삼아 자신들의 힘을 키워나가려 할 테니 플랜 75 같은 정책이 완전 허황된 일은 아닐 것 같다. 이주노동자를, 계약직 노동자를, 외국인을, 장애인을, 노인을, 성소수자를, 아이들을, 동물을, 식물을 모두 제거하려는 플랜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배제와 차별과 축출로 표를 얻는 정치인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정책에 지지를 표시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계속 되묻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이것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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