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로알드 달의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발표된 이래 지난 60년간 아이들의 가슴속에 천국은 초콜릿 폭포가 흐르는 달콤한 낙원의 형상이었다. 그 동산에는 진 와일더나 조니 뎁의 얼굴을 한 마법사 윌리 웡카가 살고 있었다. 이제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티모테 샬라메의 얼굴이 아이들의 상상 속에 추가되지 않을까. 지금의 <웡카>를 만든 전작들의 이모저모를 훑다보면 새로운 윌리 웡카의 등장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진 와일더와 조니 뎁
소설 속 윌리 웡카는 검은 톱해트, 자주색 연미복, 금색 지팡이 차림에 염소 수염을 한 장난기 많은 괴짜다. 원작의 묘사와 유사한 쪽은 진 와일더다. 소설 속 웡카가 토끼 춤을 추며 등장한 것처럼, 진 와일더는 첫 등장부터 다리를 절다가 공중제비를 돌고 다시 멀쩡하게 걷는 장난을 친다.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이 아이디어는 그가 배역을 수락하기 위해 내건 조건이었다고 한다.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은 찰리(피터 오스트럼)의 서사에 집중하면서 소설에서 웡카가 보여준 친절함이나 초콜릿을 향한 열정은 다소 생략됐다. 오히려 친절과 열정은 티모테 샬라메가 연기한 젊은 날의 웡카에서 찾을 수 있다. 대신 수수께끼 같은 면모가 부각됐는데 진 와일더는 의상의 첫 스케치를 받고 디자이너에게 “더 기이하고 신비롭길 바란다”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진 와일더의 웡카가 여전히 영미권에서 ‘거들먹대는 웡카’(Condescending Wonka)라는 밈으로 소비되는 점은 그만의 해석 때문일 것이다.
부스스한 머리로 익살스러운 면모를 강조한 와일더의 웡카와 달리 중단발의 창백한 조니 뎁의 웡카는 강박과 트라우마로 가득한 괴짜다. 준비한 큐시트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가족이란 단어에 구역질을 일으키며 아이들의 인사도 무시하는 모습은 미처 덜 자란 어른 같다는 인상을 준다. 조니 뎁은 “어릴 적 보았던 미스터 로저스, 캡틴 캥거루처럼 선한 인물도 집에서만큼은 웃지 못할 것 같았다. 그들의 웃음이 마스크 같았다”()라며 내면에 대한 호기심이 캐릭터의 해석에 영감을 주었다고 밝혔다.
로알드 달의 흔적
폴 킹 감독의 <웡카>는 로알드 달의 원작을 각색해 고유의 각본으로 만든 프리퀄 작품이다. 독특한 창의력으로 써내려간 새로운 이야기가 눈길을 끌겠지만 영화 군데군데 남아 있는 로알드 달을 향한 헌사를 발견하는 것 역시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특히 <웡카>에 등장하는 크고 작은 빌런 캐릭터는 로알드 달의 다른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여러 인터뷰에서 폴 킹 감독은 스릴러 단편인 <하숙집 여주인>과 큰 사랑을 받는 <멋진 여우씨>의 흥미로운 ‘달적인 인물’들을 차용했다고 언급했다. 로알드 달의 팬이라면 이 대목도 눈여겨볼 만하다.
움파룸파를 향한 갑론을박
움파룸파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컬트적 인기를 지닌 캐릭터다. 가무를 즐기며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웡카 공장의 새로운 일꾼인 움파룸파들은 아이들이 욕심 탓에 수난을 겪을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해 잘못을 지적하는 노래를 부른다. 특히 원작에서는 익살과 잔인함의 경계를 넘나드는 노래로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를 증폭한다. 1964년 출간된 초판에서는 움파룸파족이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으로 묘사됐지만, 재판에서는 흰 피부에 황금빛 머리를 하고 룸파랜드에서 산다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이는 움파룸파를 둘러싼 인류학적 논란 때문이었다. 움파룸파족의 환경에 대한 묘사, 생체 실험을 연상하는 불합리한 처우 등도 인종차별적 이데올로기라는 비판의 중심에 올랐다.비판을 의식하듯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의 멜 스튜어트 감독은 움파룸파를 주황색 얼굴과 초록 머리를 지닌 소인으로 연출했다. 영화에 출연했던 10명의 소인 중 하나였던 러스티 고프가 <가디언>과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움파룸파 역을 맡은 배우들의 국적이 워낙 다양해 감독이 요청 사항을 전달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팀 버튼의 작품에는 총 165명의 움파룸파가 등장하는데, 이는 케냐 출신 배우 딥 로이가 한 장면에 수백번의 동작을 반복해 CG로 합친 1인165역 연기다. 아이들이 탈락할 때마다 움파룸파들은 맘보부터 록까지 다양한 장르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데, 딥 로이는 홀로 춤, 노래, 악기 등 다양한 시도를 단시간 안에 소화하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한편 <웡카>에서는 180cm가 넘는 휴 그랜트가 71년작을 연상하는 분장을 하고 유일한 움파룸파로 등장한다.
초콜릿 천국 혹은 지옥
<웡카>는 감독이 겪은 창작의 무게감이 고스란히 녹아든 영화가 될 전망이다. 폴 킹 감독은 <피플 매거진>과 인터뷰에서 “쇼콜라티에로서 웡카의 삶을 정확히 그려내기 위해 실제로 많은 초콜릿이 필요했다”고 이야기하며 “제작진이 얼마나 많은 초콜릿을 소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촬영하면서 50파운드(23kg)가량 살이 찐 것 같다”는 비하인드를 털어놓았다. 동시에 함께 촬영한 티모테 샬라메는 왜 살이 찌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하지만 주연배우인 샬라메 역시 촬영 당시 너무 많은 초콜릿을 섭취한 탓에 위경련이 왔다고 한다. 제작진도 배우도 한마음 한뜻으로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했단 증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