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marnattens leede/ Smiles of a Summer Night
1955년, 출연 군나르 비외른스트란드, 에바 달벡
지나치게 침울했고 또 지나치게 예민했던 베리만은 어려서부터 유머 감각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사실 이건 아득한 절망의 끝까지 다가가는 그의 많은 영화들을 보고 나면, 굳이 그 자신의 술회를 직접 듣지 않더라도 손쉽게 유추해낼 수 있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쾌활함의 기질이라곤 전혀 없었을 듯한 그 베리만이 어울리지 않게도 코미디영화를 만들 때도 있었다. 50년대 초·중반, 자신의 말에 따르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그는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일련의 영화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한여름밤의 미소>는 베리만의 그런 가벼운 초기 영화들 가운데에서 단연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이다.
중년의 변호사인 프레드릭은 자기 아들 연배의 젊고 사랑스런 안을 새 아내로 맞아들였으나, 그녀와는 아직도 ‘플라토닉’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조언을 구하러 옛 연인이자 매력적인 여배우인 데지레를 찾아간 프레드릭. 때마침 데지레의 현재 애인이라는 말콤 백작이 나타나면서 착종된 애욕의 관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누군가는 사랑은 다시 태어나는 삶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넌더리나는 일이라고 한다. 사실이 어찌됐든 <한여름밤의 미소>는 정말이지 사랑이란 단어가 ‘남용’되는 그런 영화다.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은 대개가 사랑에 들떠 있느라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알지 못하고 또 보지 못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그들의 모자람을 호되게 질책하기보다는 교교한 달빛으로 품어준다. 마치 젊은 연인들, 막무가내로 바보인 자들, 그리고 외로운 사람들을 향해 차례로 미소를 지어주는 여름밤처럼.
사랑으로 그 공기를 가득 메운 로맨틱코미디 <한여름밤의 미소>는 작품 내적으로는 베리만 자신보다는 의외로 에른스트 루비치의 세계에 좀더 가까이 있는 듯 보이는 영화다. 그러면서도 베리만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이것은 본격적인 베리만적 세계로 이어지는 가교에 해당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거둔 (특히 상업적인) 성공 덕에 베리만은 자신이 꼭 만들고픈 <제7의 봉인>을 촬영할 기회를 어렵게나마 얻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