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주 감독의 9년만의 신작 <서복>이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극장과 OTT 플랫폼에서 동시 공개됐다.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박보검)과 그를 둘러싼 마지막 임무를 맡게 된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의 특별한 동행을 다룬 <서복>을 본 씨네21 기자들의 첫 반응을 모아봤다. <서복>은 4월 15일(목) 극장 개봉과 동시에 티빙(TVING)에서 저녁 9시부터 공개된다.
김성훈 기자
인간의 일그러진 욕망(<불신지옥>)과 첫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실존에 대한 고민(<건축학개론>)을 다뤘었던 이용주 감독이 SF 장르를 연출한다고 했을 때 낯설면서도 어떤 기대감이 있었다. 그 기대감이라면 장르 구조 안에서 인간(혹은 로봇)이 어떤 사건을 거치면서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깨달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낼 것이라는 거였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조직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과 복제인간 서복(박보검)의 동행은 서로의 존재를 알아가는 과정인 동시에 자신의 삶을 마주하는 여정이다.인간처럼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사고하고, 피아를 구분할 줄 아는 등 서복의 인간적인 면모가 서사가 전개될수록 드러나는 과정은 흥미롭다. 처음에는 서복을 ‘복제’인간으로 인식하다가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가면서 공감대를 가지는 기헌의 변화도 비슷한 맥락에서 흥미롭다.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복제인간과 그런 그를 인간으로서 공감하는 동행자의 여정은 SF물의 단골 주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설정을 설명하는 이야기의 초반부는 다소 지루하고 늘어져 무척 아쉽다.
배동미 기자
그동안 수많은 SF영화들이 서복의 조상과 같은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의 데이빗, <블레이드 러너>의 로이 등은 안드로이드라는 차이가 있지만, 뛰어난 신체적인 능력을 지녔기에 두려움을 일으키는 존재인 동시에 숭고한 캐릭터들이었다. 이들은 인간의 통제를 받으며 살기 때문에 보통의 삶을 흉내내려다가 때론 인간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벌이기도 한다. 그래서 데이빗은, 로이는 매혹적인 동시에 혐오스러웠다. 요컨대 <서복>과 같은 장르의 영화에서는 이질적인 존재가 만들어내는 언캐니가 핵심적이다.반면 서복은 한없이 무해하다. 초자연적인 능력을 쓰지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서복의 선한 목적과 결과는 대체로 일치할 따름이다. 서복은 아름답게 돌을 쌓아 올리거나 새떼를 조종해 기헌을 위로하고, 바람을 일으켜 나뭇잎을 신비롭게 움직인다. 혹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총알을 막아내는 정도다. 새하얀 옷을 입고 자못 성스러워 보이는 서복은 매력적인 외모를 갖췄지만, 그다지 두렵지 않은 캐릭터로 머물면서 영화 자체를 밋밋하게 만든다. 공유, 조우진 등 많은 배우가 열연하지만 긴장감이 떨어지는 이유다.
이주현 기자
<불신지옥>과 <건축학개론>에는 예민한 감성과 스타일이 있었다. 관객과 밀당하는 영화의 리듬이나 장르의 클리셰를 활용하고 변주하는 재주도 좋았다. 무엇보다 두 영화에선 감독의 과감함이 엿보였다. 이용주 감독이 9년만에 선보이는 <서복>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조금은 무뎌 진 감성과 스타일, 평균적이고 안전한 선택들로 쌓아 올린 결과물로 보인다. 공유와 박보검이라는 두명의 스타가 영화에 시선을 붙들어 매게 하지만, <불신지옥>의 심은경이나 <건축학개론>의 조정석같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캐릭터(혹은 배우)의 발견은 없다. 캐릭터로서 서복은 매력적이지만 그렇다고 서복이나 기헌에게 쉬 몰입하게 되진 않는다. 전직 정보국 요원인 기헌이 너무 순진하게 그려진 것은 아닌가 싶고, 영화도 기헌처럼 지나치게 순진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