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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사 명장면으로 다시 보는 SF계의 걸작 <매트릭스>

1999년 세기말, <매트릭스>의 등장은 대중 상업영화의 지평을 과감히 열어젖힌 하나의 사건이었다. 당시 형제 감독으로 불리던 워쇼스키 자매는 센세이션이라 말할 법한 갖은 시도를 <매트릭스>에 응집했다. 영화 속에 제시된 다양한 철학적 주제는 영화 밖으로 사유가 이어지는 인식의 확장을 이끌었고, 전례 없는 카메라 퍼포먼스와 독창적인 액션 연출은 오직 <매트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의 볼거리였다.

지난 9월 25일, <매트릭스> 트릴로지의 첫 번째 시리즈가 극장가를 다시 방문했다. 이번 재개봉은 4DX 상영까지 이뤄지며, 오감으로 느끼는 생생한 가상현실의 세계로 관객들을 이끌고 있다. 결코 만만하지 않은 주제들을 함축하면서도 대중성까지 놓치지 않은 <매트릭스>. 거듭 볼수록 흥미로운 <매트릭스>를 명대사로 풀어봤다.

※ 영화 <매트릭스>의 도입부터 결말까지 이어지는 주요 대사를 모은 글입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독자에게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당신 부하들은 벌써 죽었소.

Your men are already dead.

인류를 매트릭스로부터 구원할 사명을 띤 이들 중 하나.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는 어둠 속에서 작업에 열중이다. 그녀를 추적하는 스미스 요원(휴고 위빙)은 건물 밖을 포위하고 있는 경찰에게 따끔한 말을 놓는다. "그냥 지키기만 하랬잖소." 자존심이 상한 경찰은 그깟 계집애 하나 때문에 호들갑을 떤다고 여기며 "두 팀을 보냈으니 곧 잡아 올 거요!"라고 공언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스미스 요원의 싸늘한 대답. "아니, 당신 부하들은 벌써 죽었소." 이미 트리니티는 세 명의 남자 경찰을 화려한 싸움 기술로 단숨에 제압한 뒤다.

나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으니까요.

I don't like the idea that I'am not in control of my life.

첫 대면을 하게 된 네오(키아누 리브스)에게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는 운명을 믿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네오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만일 운명이란 것이 있다면 내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으니까. 이 대사가 중요한 건, 모피어스와 그의 동료들이 이 세계에 반발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A.I.에 점령당한 인류에게 빼앗긴 삶의 통제권을 돌려주기 위해서 이토록 위험한 싸움에 뛰어들었다.

매트릭스는 어디에나 있어.

The Matrix is everywhere.

도통 알 수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모피어스는 슬슬 본론에 진입한다. 매트릭스를 현실이라 철석같이 믿어온 인간에게 '매트릭스는 가짜야'라는 진실을 말로 설명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매트릭스는 방 안에도, 창밖에도, TV 안에도 있고, 출근할 때, 교회에 갈 때, 세금을 낼 때도 느낄 수 있다. 모피어스는 나중에 이런 말도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모습은 이른바 '잉여 자기 이미지(residual self-image)'에 불과하다고. 잉여 자기 이미지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모습대로 디지털화된 모습을 말한다.

파란약을 먹으면 여기서 끝난다. 침대에서 깨어나 네가 믿고 싶은 걸 믿게 돼. 빨간약을 먹으면 이상한 나라에 남아 끝까지 가게 된다.

You take the blue pill, the story ends. You wake up in your bed and believe whatever you want to believe. You take the red pill, you stay in wonderland and I show you how deep the rabbit hole goes.

그 유명한 빨간약과 파란약의 명제가 나왔다. 진실을 볼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그만 둘 것인가. 빨간약은 진실을 제공할 것이고, 파란약은 거짓된 삶이라도 진짜처럼 누릴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현명한 선택인지는 영화를 끝까지 다 본 사람에게조차 어려운 문제다. 매트릭스의 진실은 알면 고통스럽고 모르면 편안한 진실이니까. 선택의 옳고 그름은 없다. 다만 빨간약을 먹는 사람과, 파란약을 먹는 두 부류의 사람 만이 있을 뿐이다.

진짜가 뭔데? 정의를 어떻게 내려?

What is real? How do you define 'REAL'?

빨간약을 먹게 된 네오는 매트릭스의 진실을 차츰 알아 간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받아들이기는 더 힘들다. 이렇게 내 손에 똑똑히 느껴지는 낡은 가죽 소파의 감촉이 다 가짜라고? 하물며 매 순간 혀와 코로 느껴온 맛과 냄새는 셀 수조차 없는데! 하지만 모피어스의 대답은 냉혹하다. 과연 진짜를 정의할 수 있느냐고. 영화의 초반부, 미스터 앤더슨으로 살아가던 네오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라는 책을 펼친 적이 있다. 워쇼스키 감독이 심어놓은 이스터에그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짜(복사물)가 진짜(원본)를 대신하고 있다'는 철학자 보드리야르의 개념을 슬쩍 제시한 대목이었다.

네가 공기를 마신다고 생각해?

You think you're breathing air?

모피어스와 네오의 가상 대련. 쿵후와 취권 등 각종 동양 무술의 향연이 벌어지는 대련 신은 짜릿한 흥분을 안긴다. 정신없는 대결 속에서도 모피어스의 촌철살인은 이어진다. 트레이닝 프로그램으로 단 몇 초 만에 무술의 기술을 익힌 네오. 하지만 도저히 모피어스를 이길 수가 없다. 이때, 모피어스는 "내가 근육 때문에 날렵하고 힘이 세다고 생각하나?"라며 묻는다. 그의 말은 이곳이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라는 사실을 재차 복기시킨다. 다시 말해 내 육체의 한계는 내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것. 지금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착각을 버린다면, 초당 수백 번의 주먹을 날릴 수도 있다.

모르는 게 약이다.

Ignorance is bliss.

누군가에겐 모르는 것이 약일 수 있다. 설령 진실을 알아버렸다고 해서 스테이크의 풍미를 쉽게 잊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모피어스의 동료 사이퍼(조 판토리아노)는 매트릭스의 달콤한 삶을 다시 욕망한다. 그는 스미스 요원을 만나 자신이 깨달은 바에 대해 얘기한다.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나의 디지털 이미지에 불과한 스테이크를 썰어 입안에 넣으면, 매트릭스가 내 머릿속에 육고기의 질감과 풍미를 입력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는 진실을 잊길 원한다. 어쩌면 그 편이 더 괜찮은 삶인지도 모른다.

숟가락은 없어요.

There is no spoon.

네오는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The One)가 될 운명일까? 모피어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지만, 네오 자신이 스스로 믿게 되길 바라며 예언자 오라클(글로리아 포스터)에게 그를 데려간다. 오라클을 만나러 간 그곳에서, 네오는 숟가락을 자유자재로 구부리는 아이를 만난다. 아이는 네오에게 숟가락을 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대신에 인식해야 할 것은 진실이라고. 그 진실은 바로 '숟가락이 없다'는 단순하고도 까다로운 진실이다.

꽃병은 신경 쓰지마.

Don't worry about the vase.

인정 많고 푸근한 인상의 오라클은 여유롭게 쿠키를 굽고 있다. 너무도 평범한 모습의 그녀에게서 예측하기 힘든 비범함이 '꽃병' 하나로 증명된다. 쿠키 요리에 여념이 없는 오라클은 네오에게 뜬금없이 '꽃병을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한다. 말을 끝내기 무섭게 네오의 팔에 걸린 꽃병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놀라운 예언 능력을 가진 오라클의 말을 우리는 이제부터 단 한 마디도 흘려들을 수 없게 된다.

그를 살릴 수 있다고 믿어.

I believe I can bring him back.

네오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모피어스는 스미스 요원의 포로가 됐다. 이때 네오는 모피어스를 구하러 가겠다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결단을 내린다. 오라클의 예언 덕인지, 네오의 운명인지. 그건 닭과 달걀의 문제처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네오는 자신의 숙명을 이해하게 된다. 네오는 자신이 그(The One)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피어스를 구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느끼고 동료들에게 설명한다. 이유는 없다. 단지 느낄 뿐이다. 스스로가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말한 오라클의 예언대로.

너희는 포유류가 아니었어.

I realized that you're not actually mammals.

스미스 요원은 모피어스에게서 유일하게 남은 인간의 도시 '시온'의 코드를 얻으려 한다. 시온 파괴만 성공하고 나면 매트릭스의 백신 격인 스미스 요원도 자유를 찾을 수 있다. 그는 모피어스에게 인간이라는 종의 역겨움에 대해 늘어놓는다. "너희 종족을 분류하다가 깨달은 사실이 있어. 너희는 포유류가 아니었어.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들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데, 인간들은 안 그래. 한 지역에서 번식을 하고 모든 자연 자원을 소모해 버리지. (중략) 인간이란 존재는 질병이야. 너희는 역병이고, 우리가 치료제다." 스미스의 장광설에는 오늘날의 인류조차 피할 수 없는 따끔한 질문이 담겨 있다.

잘 가라, 앤더슨. / 내 이름은 네오다.

Good bye, Mr. Anderson. / My name is Neo.

빨간약을 먹은 이후로 네오는 매트릭스에서 사용하던 이름 '앤더슨'을 들을 일이 없었다. 하지만 스미스 요원은 줄곧 그를 '미스터 앤더슨'으로 또박또박 불러왔다. 매트릭스 세계를 추종하는 스미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그'(One)의 철자를 재조합해 만든 이름이기도 한 '네오'(Neo)를 부정하는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스미스와 네오가 벌인 격렬한 결투의 말미. 스미스는 작별 인사를 건네지만 네오는 자신의 존재를 확신한 듯이 말한다. "내 이름은 네오다."

너는 변화가 두려운 거야.

You're afraid of change.

<매트릭스> 1편의 라스트 신은 매트릭스의 가짜 삶을 사는 인류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문이다. 동시에 네오가 앤더슨이던 시절에, 그들의 부름을 받았던 모니터의 앞자리에 똑같이 관객들을 앉힌다. 그런 다음엔 변화를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기꺼이 빨간약을 먹겠느냐고 묻는다. <매트릭스>의 엔딩 크레딧이 걷히고 나면 관객들에게는 어떤 질문이 남는다. 내가 살아 숨 쉬는 이 세계는 매트릭스가 아니란 걸 어떻게 증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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