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 눈에 띄는 작품은 2013년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대상작이자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한리티판 감독의 <잃어버린 사진>이다. 대량 학살이 자행되고 집단강제 노동이 행해졌던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 치하의 고통스러운 민중의 삶을 현재로 소환해낸 작업이다. 안토니 첸 감독의<일로 일로>도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주목받았다. 싱가포르의 평범한 가정인 림의 집에 필리핀에서 일자리를 찾아 싱가포르로 온 가사도우미가 등장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에 몰아닥친 경제 위기가 어떤 식으로림의 가정에 경제적, 심리적 압박을 불러일으키고 외국인여성 노동자를 냉담한 현실로 밀어붙이는지를 가족드라마의 전개 속에서 담담히 그렸다.
개막작<마이다스 하우스> 역시 인도네시아 현대사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역사 전공자인 주인공 마이다는 교육의 혜택을 받지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폐가를 개조해 학교를 만들 생각이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은 낡은 건물을 허문 뒤 쇼핑몰을 지어 떼돈을벌려는 건물주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는다. 마이다가 자본가로부터 학교와 자신의 소신을 지켜낼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건 개발논리 앞에 놓인 인도네시아가 풀어야 할 과제처럼 보인다.
각국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한 작품들과는 또 다른 독특한장르물들도 소개된다. 라오스 최초의 공포영화 <찬탈리>는 라오스인들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잡은 불교 신당을 배경으로 산 자와죽은 자 사이의 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주인공 소녀는 죽은 엄마가 저승에서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믿고 엄마의 마지막 말을 듣기 위해 위험천만한 일까지 감수하려 든다. 한편 말레이시아영화<KL 좀비>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좀비들로부터 말레이시아를 구하겠다고 마음먹는 주인공을 내세워 좀비물과 종말론을 기묘하게 조합해냈다. 재미난 이력을 가진 감독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베트남영화 <일대고수>의 더스틴응유엔 감독은 이번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외적의 침입에 맞서는 무술 고수이자 황야를 달리는 라이더다오라는 남자로 등장해 카리스마넘치는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 이미 미국 TV시리즈 <심해잠수정>,로완우즈 감독의 <리틀피쉬>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활동해왔고무에타이, 태권도, 에스크리마 등에도 능하다. 미얀마영화 <캬얀뷰티>의 아웅 코 랏 감독은 1970년대 미얀마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록밴드 ‘더 브러더스’의 멤버로 알려져 있다. <캬얀뷰티>는 그의 장편 데뷔작으로 목과 팔다리에 링을 끼운 채 살아가는 미얀마 소수민족 카얀족의 소녀들이 수공예품을 팔러 도심으로 나가 겪는 우여곡절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