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머릿속에 그렸던 이미지가 커다란 스크린에 투사될 때 마약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 중독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요."
봉준호 감독은 2일 전주 영화의 거리에서 열린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 기자회견에서 영화를 만드는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어릴 때 집에 환등기가 있어 슬라이드 필름을 이용해 벽에서 사진을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이미지가 커다란 스크린이나 벽에 투사되는 것 자체가 황홀하게 느껴졌습니다. 극장에 처음 갔더니 심지어 투사된 이미지가 움직이고 소리도 나오더라고요. 너무 황홀해 매료됐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상상한 이미지가 투사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고 원초적인 욕구가 있어서 계속 이 일을 하게 됐습니다."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설국열차'라는 영화 시나리오를 한창 쓰고 있는 봉 감독은 시나리오 쓰기에 대한 생각도 풀어놨다.
"저는 제 영화 4편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인데 너무 힘듭니다. 시나리오를 완성했을 때는 기쁘지만 탈진할 때도 있습니다. 대신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미지와 사운드를 생각하는데, 머릿속에서 사실상 영화를 한번 찍어본 것과 같이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하나의 상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누군가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봉 감독은 인터넷에서 파일을 내려받아 영화를 보는 요즘의 세태에 대해 걱정스런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요즘 영화가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다. 컴퓨터 하드디스크 한 곳에 저장됐다가 지워지는 파일 쪼가리 같은 느낌을 받는다"면서 "대부분 젊은이는 큰 화면에 프로젝션된 이미지에 대한 흥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작은 모니터나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화 자체가 가진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흥분은 무엇일까, 그런 것을 다시 살려낼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영화가 지금보다 존중받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봉 감독은 1일 영화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인 '마스터클래스'에서 '플란더스의 개'(2000),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등 4편의 영화를 편집해 상영하고 오프닝과 클로징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4편의 오프닝과 엔딩을 틀고 그것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면서 "나도 몰랐던 나의 습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스터가 아닌데 마스터클래스를 하려니 쑥스러웠지만, 영광스런 자리였다"면서 "연극배우들은 영화와 달리 직접 관객의 눈을 마주하고 에너지를 얻는다고 하는데 나도 그런 기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견장에는 마스터클래스를 여는 또 한 명의 감독인 포르투갈의 페드로 코스타 감독도 함께했다.
코스타 감독은 "3년 전에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그램으로 전주에 왔고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면서 "전주영화제는 놀라운 프로그램이 많이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실험적인 영화가 매진되는 게 너무 놀랍다"고 평했다.
kimy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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