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올해만 벌써 세 번째 영화다.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한일 합작 영화 '보트'에 이어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의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국가대표'까지.
지난해에도 그 해 최고 히트작 '추격자'와 함께 '비스티 보이즈', '멋진 하루'에 연이어 얼굴을 내밀었다.
'욕심쟁이(?)' 배우 하정우에게 그 이유를 묻지 않고 넘어갈 도리는 없었다.
"충분히 쉬고 있어요. 여유도 있고요. 아직 어려서 그런지 마냥 재미있어요. 억지로 쉬면 그게 더 몸에 안 좋을 것 같아요."
차기작인 '티파니에서 아침을' 촬영이 진행 중이지만, 짬을 내 기자시사회와 일반시사회, VIP시사회, 뒤풀이까지 한꺼번에 마치고 난 다음 날인 23일, 조금씩 나아지던 감기 몸살이 도져 목소리는 메마르고 갈라졌다.
"올해 개봉하긴 했지만 '보트'랑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작년에 찍은 거잖아요. 열심히 미리 해 놓은 숙제 같은 거죠. 촬영 끝나고 충분히 쉬었어요. 오히려 지루하던걸요."
'국가대표' 촬영이 끝난 지 3개월이나 지났는데도 그의 말투에는 아직 영화 속 입양아 출신 국가대표 '차헌태'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박또박한 발음과 아주 살짝 배어 있는 외국어 억양, 그리고 예의를 갖추려는 태도까지도.
"그러고 보니 차헌태가 실제 저랑 제일 비슷한 것 같기도 해요. 말수도 별로 없고."
영화의 규모와 장르,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 왔지만, 그는 실제 자신과 같은 캐릭터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배역을 어떻게 소화하느냐는 질문에 "그럼 한 번 말씀 드려 볼까요?"라고 시작한 말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시나리오를 받으면 우선 인물에 대한 감독의 생각부터 들어요. 그 인물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모티브가 된 실재 인물에 대한 얘기까지 묻고 듣죠. 그다음엔 제가 주변에서 실제 만난 사람 중 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공통점을 뽑아 이미지를 만들어가요. 잡지나 사진들을 뒤져서 직접 스크랩북도 만들고, 비슷한 인물이 나왔던 영화나 만화, 소설도 다 찾아보고요. 그리고 그 인물의 히스토리를 쭉 만드는 거죠."
이렇게 만들어낸 인물을 가지고 다시 감독과 상의하고, 의상팀이나 분장팀에게도 자신의 의견을 전달한다. 영화 전체 흐름을 고려해 장면마다 어떤 감정이나 특징을 살려야 할지, 혹은 어떤 장면에서 자신을 죽이고 상대 배우를 살려야 할지 결정하는 일까지 크랭크인 전에 모두 끝낸다고 한다.
"그러고 나면 실제 현장에서는 할 일이 없어요. 그날의 기분이나 날씨, 상대 배우와의 조화를 생각해 조금씩 변형하면 되죠. 그래서 현장에서는 제가 하는 일 없고 심심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편집까지 고려해 새로운 장면이 들어갈 것 같다거나, 이 장면은 잘릴 것 같다 싶으면 한 번 더 찍자고 제안한다니, '욕심 많은 완벽주의자'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물론 스스로 완벽하게 캐릭터를 구축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는 '타협'이 있다.
"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하는 장면에서 친엄마가 전해 준 설탕 뿌린 토마토와 사진첩을 보면서 저는 울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감독님은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고 하셨고요. 그래서 결국 절충한 것이 '촉촉이 젖은 눈망울'이 된 거죠."
평창의 황량한 공사판에 몰아 닥친 영하 24도의 추위에서 "이런 게 칼바람이구나" 느끼며, 120m 높이의 출발대에 앉아 정신이 몽롱해져 "정말 무서웠다"고 말하면서도 하정우는 '국가대표'가 자신에게 감정의 울림이 있는 소중한 작품으로 남았다고 말한다.
차차기작도 이미 결정됐다.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과 김윤석이 함께하는 '황해'(가제)에서 배역을 맡아 다음 달에는 연변 사투리 수업에 들어간다. 배우 하정우의 욕심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eoyy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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