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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스크린쿼터 축소에 방침에 대한 영화진흥위원회의 입장
2006-02-08

김동원(다큐멘터리 감독)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에 대한 영화진흥위원회의 우려 표명

1월 26일, 우리 정부는 그 동안 한국영화 성장의 지렛대 역할을 해온 스크린쿼터를 큰 폭으로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는 일정한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두 가지 정책적 요소가 작용했다고 봅니다. 바로, 정부가 영화의 내용을 좌우하는 ‘표현의 자유’를 확실히 보장했고, 스크린쿼터제를 통해 유통부문의 합리적 산업환경을 확보할 수 있게 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중요한 기반을 흔들고 있으니 어찌 우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현재 스크린쿼터 축소는 우리 내부의 필요와 동의에 의해서 검토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더 정확히 말하면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 자본의 필요와 일방적인 요구에 떠밀려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스크린쿼터에 대한 축소 요구를 본격화하던 1990년대 중후반, 할리우드 메이저의 이해를 대변하는 미국영화협회(MPA)의 가치판단은 스크린쿼터제가 “한국 영화산업 발전의 걸림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스크린 수가 줄어들고 관객 동원력이 떨어지는 것이 바로 스크린쿼터라는 과보호 장치 때문이니, 경쟁환경을 조성해서 영화산업을 활성화시키도록 자신들이 돕겠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주장에 적지 않은 국내인들이 동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 채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이제 경쟁력을 갖췄으니 스크린쿼터를 줄이자고 말하고 있고 또 적지 않은 국내인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으니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크린쿼터제가 영화 다양성 확보의 걸림돌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 스태프들의 처우개선을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판단과 주장은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습니다. 주류영화가 취약해지면 산업구조 안에서 비주류영화에 대한 자생적인 보호기제가 작동하기 어렵고 공공적 지원정책도 실행되기 어렵습니다. 주류영화가 취약해지면 영화 노동자들도 경제활동 주체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개인의 자발성과 헌신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비직업(아마추어)적인 예술가로만 존재할 것입니다. 만약 한국영화산업의 양적 성장이 없었다면 다양성이나 노동조건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활발하게 일어나기 어려웠을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현재의 스크린쿼터제가 흥행영화 또는 주류영화에 더 많은 일차적 이득을 안겨준다 치더라도, 스크린쿼터는 영화의 다양성 확보와 스태프 처우개선을 위한 기초 안전판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한국영화산업의 명확한 진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스크린쿼터를 축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전제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처음엔 점진적인 방식의 스크린쿼터 완전 철폐를 요구했던 MPA와 미국 정부가 태도를 바꿔 73일로 축소를 요구했다는 것은 다양한 경로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이런 태도변화는 미국 정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그랬듯이 한미FTA에서도 ‘문화적 예외’를 인정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1940년대부터 국제사회에서 일관되게 유지되어온 ‘문화적 예외’를 협상의 상대가 인정하는 가운데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 정부가 73일로 축소 발표한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물론, 한미FTA는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병존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협상과정에서 그런 점들이 제대로 검토될 것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왜 스크린쿼터에 대해서는 그런 검토와 대미 협상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입니까!

MPA가 스스로 밝힌 스크린쿼터 축소 요구의 표면적인 이유는 단순합니다. 전세계 시장을 겨냥해서 대규모 제작비를 들여 만드는 이른바 메이저 블록버스터(흥행대작)의 흥행실적을 현재보다 더 높이기 위해서 더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고, 영화산업구조 안에서 더 나은 협상조건을 확보하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한국영화계가 두 눈 똑바로 뜨고 MPA와 협의하고 협상해야 할 일입니다. 스크린쿼터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했고, 그 공정한 경쟁 환경 속에서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가 경쟁하면서 한국의 영화산업, 나아가 세계의 영화산업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줬다는 점을 상대방에게 설득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가 한국영화계의 정당한 주장보다 MPA와 미국무역대표부의 강압적이고도 일방적인 주장을 더 존중한다는 비판을, 정부 협상 책임자들은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개방 이전에는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파급효과는 적었던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사례와 현재의 스크린쿼터 축소 사안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영어권 관객수와 경제력(문화소비)을 핵심 경쟁요소로 활용하는 할리우드영화의 ‘규모의 경제’의 힘은 일본 대중문화의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더구나 1월말에 발표하고 7월에 당장 시행한다는 아주 신속한 축소계획과는 확연히 다른 ‘준비된 개방’이자 점진적인 개방이었다는 점을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우리는 “스크린쿼터 축소 조치 없이 한미FTA 협상개시 없다”는 논리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한미FTA 협상기간 동안 스크린쿼터에 대해서 다른 분야와 동등한 점검 기회를 갖자고 요청 드립니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의견을 묵살하기 위해 협상을 앞두고 ‘신속한 결단’을 내리는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는 우리가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스크린쿼터의 힘을 대체할만한 유력하고도 효과적인 영화진흥 정책 수단을 저희 위원들은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정부로부터 영화진흥정책의 입안과 실행을 일정하게 위임받은 우리 영화진흥위원회 위원들은 정부, 국회, 영화계 등이 포함된 내부 논의를 다시금 요청하며, 현재의 일방적인 대미협상 태도를 재점검 할 것을 촉구합니다.

2006년 2월 8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일동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일동 김동원(다큐멘터리 감독), 김영재(애니메이션 제작자), 심재명(영화제작자), 안정숙(영화전문기자), 원용진(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현승(영화감독), 임호천(공인회계사), 장미희(명지전문대 교수, 연기자), 정남헌(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