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불은 꺼졌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한국영화 위기론과 함께 불거진 제작자들과 매니지먼트 사이의 갈등이 일단 봉합됐다. 하지만 한국영화의 두 세력 사이의 갈등이 재연될 여지는 남아있어 불안감은 여전하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6월28일 서울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몇년 동안 매니지먼트 사들이 스타 캐스팅을 앞세워 공동제작, 지분요구 등 무리한 요구를 해왔고, 이에 따라 제작비가 급격하게 상승했으며, 이는 결국 수익률 저하를 불러와 전체 산업에 적지않은 부담이 됐다고 비판했다. 강우석 감독, 싸이더스픽쳐스 차승재 대표, MK픽쳐스 이은 대표, 신씨네 신철 대표 등은 “매니지먼트사가 기획 과정에서 아무런 기여 없이 공동제작을 요구하거나 흥행 보너스가 아닌 제작사 지분을 요구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며 “스타 캐스팅을 조건으로 한 부당한 요구에 앞으로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제협은 이날 “제작사가 캐스팅을 위해 공동제작, 제작지분을 매니지먼트 사 쪽에 제의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회원사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한편 이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도 내놓았다. “제작자나 투자자가 연기자, 스태프와 계약을 맺을 때 반영할 수 있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서 제작자 표준제작규약을 만든다는 것이 첫번째 방안. 마술피리 대표인 오기민 정책위원장은 “제작 부분별로 적정 예산을 계산해 연말까지 표준제작규약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고비용 구조를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협은 현 스타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연기학교를 설립하겠다는 뜻도 내놓았다. 몇몇 스타에 의존하고 있는 현 상황을 넘어서기 위한 연기학교는 이창동 감독이 교장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제협이 먼저 화살을 날렸지만, 예상됐던 매니지먼트 쪽과의 충돌은 다행히 없었다. 매니지먼트협회 준비위원회는 같은 날 정면 대응 보다는 대화를 통해 풀어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제협의 입장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서울 강남에서 모임을 가진 매니지먼트 쪽은 “제작자들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며, 결의문과 관련한 일부에 대해서는 향후 발전적인 형태로 수용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매니지먼트협회 준비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정훈탁 싸이더스 HQ 대표는 “고칠 건 고치고, 바꿀건 바꾸고,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때가 아닌가”라며 제협 쪽과 앞으로 충분한 대화를 나누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제협과 매니지먼트협회 쪽은 빠른 시일 안에 자리를 마련해 그동안의 앙금을 풀고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한 실천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하지만, 제작자들과 매니지먼트 간의 갈등이 큰 불로 번지지 않았다는 점에 안도하면서도 영화인들은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강우석 감독이 제협 임시총회를 앞둔 6월23일 일간지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매니지먼트 사들의 횡포를 비난하면서 최민식, 송강호 등 두 스타급 배우의 실명을 거론했고, 이날 강 감독의 발언이 그대로 <조선일보>에 실리게 되면서 촉발된 갈등이 앞으로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6월29일, 실명이 거론된 최민식, 송강호 씨 등은 기자회견을 통해 강 감독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최민식 씨는 문제의 기사 내용은 사실과 다를 뿐더러, “강우석 감독의 발언이 영화계 공동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발언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들은 “강우석 감독이 개인적으로 사과의 뜻을 밝혀왔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언론 등을 통한 공식적인 사과”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강우석 감독은 이에 대한 대책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강우석-최민식, 송강호 사이의 ‘개인적’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작자 대 매니지먼트-배우의 ‘집단적’ 대결이 다시 불거질 수도 있는 탓에 제협과 매니지먼트 양쪽 모두는 강우석 감독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